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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훈 Dec 31. 2021

바이든의 연방법관 지명

'워싱턴의 왕' 조 맨친 상원의원이 결국 조 바이든 정부의 야심찬 개혁안 'Build Back Better' 반대를 선언했다. 선택지는 '맨친이 허락하는 BBB'로 축소하든지 아니면 이걸 내걸고 내년 중간선거에 승부를 보든지 둘 밖에 없는데, 정권의 대표업적으로 시도한 것이 이 꼴이 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중간선거에서 작살날 가능성이 높아서... 조 바이든은 조 맨친 때문에 우울한 연말을 보내게 되었다.


안 좋은 소식은 뒤로 하고, 바이든 정부가 눈에 띄지 않는 사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칠 업적을 쌓은 것이 있으니, 집권 첫 해에 연방법관을 40명이나 임명한 것이다(항소법원 11명, 지방법원 29명). 트럼프(18명), 오바마(12명)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이고, 막강했던 레이건 정부의 기록과 동률이다.


케이건처럼 법관 경험 없이 대법관으로 직행한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 연방대법관의 전직은 연방항소법원 판사, 연방항소법원 판사의 전직은 연방지방법원 판사다. 게다가 연방법관은 종신직이다. 그러니까 이건 향후 민주당 인재 풀을 넓히고 민주당 정부가 시행하는 정책의 안정성을 높이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트럼프는 많은 부분에서 공화당 주류와 달랐지만, 공화당 주류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한 것이 바로 연방법관 지명이다. 트럼프/미치 매코널은 4년간 무려 연방법관 226명을 임명했다(대법관 3, 항소법원 54, 지방법원 174명, 합계가 안 맞는 이유는 항소법원에 갔다 대법관으로 올라간 배럿 같은 사례 때문). 오바마가 8년 동안 320명을 임명한 것과 비교하면 대단한 기록이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한때 연방항소법원에 공석이 남아 있지 않을 정도였다.


첫 해 40명이라는 결과도 그렇지만, 임명 과정에서 바이든/척 슈머가 공화당의 전략을 그대로 상대방에게 되돌려 주었다는 것도 주목할 만 하다. 후보자를 찔끔찔금 몇 명씩 지명하는 것이 아니라 수십명을 한꺼번에 올려 의회가 청문절차에 투입할 시간과 여력을 줄이고, 야당이 뭐라 하든 패스트트랙에 태워 인준을 강행했다. 'blue slip'이라 해서 어느 주를 관할하는 연방법관 청문에서 해당 주 상원의원의 의견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사실상 거부권을 주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것도 깔아뭉갰다. 옳든 그르든, 좋든 싫든, 지금은 협치의 시대가 아니다.


물론 갈길이 아직 멀다. 항소법원은 결원을 거의 채웠고, 대법관의 경우 바이든에게 찬스가 생길지는 브라이어의 사임 여부 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우연에 달려 있다. 이런저런 사정을 고려해도 트럼프/매코널이 연방법원에 남긴 영향을 넘어서기는 어렵지 싶다.


연방대법원이나 항소법원은 대놓고 정치 투쟁의 장이 되어 버렸고 미국의 법관 임명은 진영 간의 싸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바이든이 임명한 연방법관 40명 중 30명이 여성이다. 다들 탑티어 로스쿨 나와 탁월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다. 단지 그들이 살아온 길, 지향하는 가치가 공화당 사람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뿐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다는 얘기, 나는 동의 안 한다. 연방법관 임명에 관하여는 민주당이 옳다. 까놓고 얘기해서 최근 연방대법관만 보더라도 (로버츠, 고서치 정도 빼면) 그저그런 사람을 임명하는 것은 늘 공화당 쪽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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