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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기엄금 Nov 12. 2023

여보, 미안해.

구겨진 셔츠

며칠 전 아침, 여느 때처럼 급히 출근을 하려는데 아내가 잠도 덜 깬 채로 내가 입으려는 셔츠가 구겨졌다며 스팀다리미를 꺼내고 있었다.  당장 출발하지 않으면 지각할 게 뻔할 뿐만 아니라 만삭의 아내가 나 때문에 고생하는 게 싫어서 몇 번이나 한사코 거절했지만, 아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셔츠가 너무 구겨졌다며 계속해서 다림질을 하려는 아내와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만 하지 말라고, 지금 가야 한다고 언성을 높이게 되었다.

"여보, 그만 좀 해. 왜 말을 안 들어.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하지마!!!"

아내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하필이면 그날은 아내가 친정부모님과 출산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나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고생하는 게 싫다고, 부모님과 즐겁게 여행 가는 날에 속상하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내를 안아주고 바쁘게 집을 나왔다.


퇴근 후, 아침에 화를 낸 게 마음에 걸려 찜찜한 채로 집에 왔는데, 내 눈에 들어온 건 깔끔하게 다려진 몇 장의 셔츠. 아내는 자기가 없는 동안에도 깔끔하게 입으라고 메모를 남겨놓았다. 한 참이나 아무 말도 없이 그 셔츠를 보고 서있었다. 마음이 짠했다. 그리고 이렇게 착한 사람에게 화를 낸 스스로가 미웠다.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누구 하나 잘못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부딪힐 일이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내 평생 함께 할 사람이 내 아내라서 너무 다행이고, 감사하다.


아내는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고 가장 밑바닥이던 시절부터 변함없이 곁을 지켜줬다. 그때 다짐했다.

'내가 나중에 밥벌이하고 내 앞가림하게 되면 살면서 다른 건 몰라도 이 사람에게는 잘해줘야겠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지만 살다 보니 항상 마음처럼 되는 건 아닌 법. 그렇지만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 마음 잊지 않고 그때 그 약속 지키려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자고 오늘도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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