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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민혜 Aug 29. 2021

시작은 이러하다

말하자면, 일종의 프롤로그

예상치도 못했던 코로나의 장기화에 우리의 삶은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버렸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일상의 변화'일 것이다.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주어지는 제약, 그것은 일종의 '자유'에 대한 침범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가 이 시대에 '자유'를 논하게 될 줄 이야. 그러나 그 자유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생명과 지구인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기꺼이' 제약되어지고 있다. 


뭐, 이런 류의 심각하고 난해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그 어느 곳도 자유롭게 갈 수 없다는 것. 보고, 듣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할 시기에 심지어 집 앞 놀이터조차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는 모습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어린이집은 한 주 걸러 한 주 무기한 휴원에 들어가고, 신청하고 나서 일주일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폐강되어 버리는 문화센터 강좌, 각종 체험센터들 조차도 전부 인원 제한이 걸려있어 예약을 하는 것 자체가 하늘의 별따기다. 집 밖을 나설 때면 마치 옷을 입고 양말을 신는 것처럼 당연스레 마스크부터 챙겨 쓰는 모습조차 안쓰럽다.  




그리고 또 하나, 아주 중요한 것.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자유. 바로 '여행'이다. 


나는,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는 함께 꽤 많은 곳을 여행했다. 물론, 남편을 만나기 전 좀 더 젊은 20대에 친구들과 했던 여행들도 있지만 대부분 여행에 대한 추억은 남편과 함께 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임신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키우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의 여행은 당연히 올 스톱될 수밖에 없었는데, 아이들이 좀 자라면 이제 넷이서 함께 다니자고 했던 계획이 이렇게 무기한 미뤄지게 될 줄은 당연히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여행이 '고프다'. 


세상에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겠는가. 프로페셔널한 여행작가들부터 개인적인 여행 후기를 각종 sns와 블로그를 통해 공유하는 일반인들 까지, 온오프라인에서 여행에 대한 정보와 사진들은 차고도 넘친다. 지구를 몇 바퀴나 돌았다는 사람들도 있고, 횡단, 종단, 육로, 수로, 걸어서 등등 그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그들에 비하면 나의 여행 이력은 짐을 싸서 현관문을 나서기 위해 문고리를 잡은 정도랄까. 한 마디로 아주 소박하고, 별거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대단한 여행가의 대단한 미지의 세계 탐험보다 내 여행은 특별하다. 누군가의 여행이 아니라 바로 '나'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힘들었던 임신 기간과 절망적이었던 육아 기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이 바로 그 얼마 안 되는 '여행 추억'들이었다. 


여행에 대한 기억은 플래시가 터지듯이, 별안간, 느닷없이, 앞 뒤도 없이 갑자기 훅 떠오른다. 아이 목욕을 시키고 나서 머리를 말려주다가, 샤워를 하려고 뜨거운 물을 트는 순간, 밥을 먹으려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다가, 운전 중에 잠깐 신호를 기다리다가, 그리고 자려고 누웠을 때. 시간과 순서에 관계없이 특정 장소와 장면이 그렇게 느닷없이 떠오른다. 그것은 꽤 매혹적인 경험이다. 나는 그러한 감정을 상당히 즐긴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매력이다. 살면서 두고두고 평생을, 그렇게 여행에 대한 추억과 장면들은 불쑥, 예고도 없이 떠오르며 지루한 삶에 작은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다.  


여행은 물론 불편하기도, 번거롭기도, 귀찮기도 한 일이다. 비용과 시간도 많이 든다. 그러나 여행은 그러한 과정보다 떠나기 전 준비할 때 느끼는 설렘과 긴장, 그리고 다녀와서 평생 이런 식으로 떠오르는 찰나의 기억들 때문에 떠나는 것이다. 여행은 이토록 단조로운 삶을 참 부요케 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어차피 한 동안 여행은 감히 떠날 엄두도 낼 수 없는 마당에 내 지난 여행 이야기들이나 좀 꺼내어 볼까 한다. 생각해 보니 사진은 많이 찍었어도 정작 글로 남긴 것은 없다. 요즘 직접 여행을 못 가는 대신 유투브에서도 화면을 보며 간접 여행하는 방식이 나름 유행인 모양이다. 


그런데 앞 서 말했듯이, 나의 여행이란 것이 그다지 대단하지가 못 해서 생각보다 밑천이 금방 드러나버려 얼마 못 가고 끝나버릴 수도 있다.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사실은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시간과 순서, 장소에 관계없이, 국내 여행과 국외 여행이 이리저리 섞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여행 다녀본 곳이라 봐야 손가락 몇 개 꼽으면 끝나버릴 만큼 소박하지만 그때 그곳에서 내가 기억하는 감정, 냄새, 소리, 촉감에 대한 기록은 몇 날 며칠을 꼬박 앉아 써 내려가도 끝나지 않을 만큼 풍부하다. 





허리가 아파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누운 자리에서 계속 꼼지락대다가 불현듯 머리에 떠오른 한 장면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푸드코트였다. 왜 갑자기 허리가 아파 고생스러운 이 순간에 불현듯 떠오른 것이 그 푸드코트였을까. 그것도 박물관에서 보았던 어떤 근사한 작품도 아니고, 먹을 것도 없던 실망스러운 푸드코트. 남편은 밖으로 나가 좀 더 그럴듯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고 싶어 했고, 배가 고프면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나는 당장이라도 그곳에서 허기를 채우고 싶었다. 그때 내 앞에 뾰로통하게 앉아 잔뜩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 여행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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