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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n 10. 2023

처음이라 넘넘 설레요

<라라의 창작민화 1> 선녀탕의 댄싱퀸


인생에는 저마다의 즐거움이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움과 벗과 군자로서의 기쁨을 논하였고, 상촌 신흠 선생은 독서와 친구와 경치의 즐거움을 말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노는 재미에 탐닉했다. 그것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여서 삶의 의미를 온통 즐거움에서 찾곤 하였다. 그러나 물레방아처럼 쉬지 않는 즐거움은 없다. 삶이란 인간의 가슴에서 매 순간 솟아나는 모든 감정을 다 수용해야 통과되는 터널이다. 이제는 다양한 감정을 모두 끌어안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다.   


그럼에도 삶은 즐거운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심각해진 인생길에 즐거움이 찾아오면 맨발로 달려가 맞이한다. 어떤 감정보다도 반갑기 그지없 때문이다. 예전에는 즐거움에 집착하여 그 끝에 따라붙는 권태의 나락을 벗어나려 몸부림쳤다면, 이제 집착은 사라지고 그냥 즐거움이 자연스레 나를 통과하도록 허용한다. 오면 기쁘게 맞이하고, 가면 "고마워, 잘 가."라는 인사를 보낼 줄 아는 지혜가 생긴 것이다. 제주 자연의 아낌없는 사랑이 이런 여유를 선물했다.


제주三樂


그렇다면 제주에서 누리는 즐거움엔 어떤 것들이 있을까?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며 수많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열손가락으로도 다 꼽지 못할 즐거움 중에서 골라골라 '제주'을 추려보았다. 첫째는 뭐니 뭐니 해도 여름날 새벽의 황우지 선녀탕에서 즐기는 물놀이가 아닐까 싶다. 둘째는 숲에서 만나는 모든 생명과 하나 되는 호젓한 산책 시간이다. 그리고 셋째는 틈틈이 예술에 심취하는 몰입의 순간으로 요약할 수 있다. 친구들과는 선녀탕과 숲길에서 함께 즐거움을 나눈다.


나는 요즘 창작민화를 시작하면서 제주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다. 그 풍경 속에서 마주한 열정과 기쁨, 고독과 환희를 그리고 싶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역시나 선녀탕이다. 사실 중급반 과정을 거의 마무리할 무렵 창작으로 진로를 결정할 때부터 그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스케치를 시작한 지 여러 달이 되었다. 조금씩 수정을 해가며 도안을 완성하였을 때설렘뿌듯함을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다만 이 그림은 아직 나의 우물을 발견하기 전에 완성된 도안이라, 아쉬운 점이 있다. 내 그림의 오브제인 의자와 나비가 빠져 있 것이다. 나의 민화 선생님은 그림이 단순한 삽화 수준에 머무르지 않게 하기 위하여 채찍을 가하셨다. 덕분에 사유 깊어져서 나의 우물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진즉에 스케치 도안을 끝낸 <선녀탕의 댄싱퀸>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거기에는 즐거움을 뛰어넘는 생의 환희가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부득불 이것을 첫 창작으로 완성하고 싶었다.


선녀탕 그림에는 의자와 나비 대신에 인어와 미역이 등장한다. 인어는 선녀탕을 즐기는 나를 의인화한 것이고, 미역은 선녀탕에서 물살의 박자에 맞춰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댄싱퀸이다. 나는 제주의 여름을 손꼽아 기다린다. 물론 습기와의 전쟁을 치러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더위가 와랑와랑 하는 여름날의 황우지 선녀탕이 있기 때문이다. 올레길 7코스 외돌개 구간에 황우지라는 해안이 있다. 절벽으로 깎아지른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용암으로 둘러싸인 천연 풀장이 나타난다. 문섬이 바라보이는 절경을 간직하는 곳이다.


이른 새벽마다 동네 언니와 동생을 픽업해서 선녀탕으로 달린다. 관광객이 몰리기 전에 우리만의 선녀탕을 즐기는 비법이다. 노란 줄무늬 돔과 돌돔, 놀래미와 파란 물고기들, 멸치 떼와 문어까지 놀러 나오는 선녀탕은 스노클링의 최적지이다. 나는 물고기들과 한바탕 물놀이를 마치고 나면, 온몸을 흔들어대는 바다의 댄싱 퀸 미역과 함께 춤을 춘다. 여름의 끝자락이면 몸엔 어느새 비늘이 돋고, 나는 한 마리 인어가 된다.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내 여름날의 행복이다.      


<선녀탕의 댄싱퀸>의 창작 과정




민화를 그리는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스케치를 고, 순지에 붓으로 본을 뜨고, 아교포수를 하고, 고화 처리를 끝낸 다음에야 채색의 진도를 나갈 수 있다. 그냥 도화지에 본을 뜨고 바로 색을 입히는 서양화에 비해 시간과 정성이 곱절 이상으로 들어간다. 채색도 기본색을 입히고, 바림으로 색을 중첩해 나가며 끝없이 다듬는다.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데까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에서 반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나는 이런 속도가 좋다. 그렇다고 마냥 게으름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어느덧 느림에 익숙해진 나는 쉬엄쉬엄 진도를 나간다. 작품에 몰두하다 보면 옛날처럼 자주 자연을 쏘다니지는 못하지만, 삶의 만족도는 더 높아졌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몰입의 기쁨을 순간순간 느끼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를 스케치 도안으로 만들어내고, 색을 하나씩 창조해 낼 때마다 찾아오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첫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많이 설레고 행복했다.

   

나의 첫 번째 창작민화, <선녀탕의 댄싱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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