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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ra 유현정 Jul 14. 2023

친구라는 인생의 숲

<라라의 창작민화 2> 참꽃 피는 머체왓 숲길


친구란 무엇일까.

여러 날 친구라는 화두에 들곤 하였다. 최근 마음을 다치는 일이 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 친구는 영원한 친구'라는 생각을 하고 살아왔다. 특히 학창 시절이나 젊을 때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은 함께 보낸 시간만큼 소중하게 생각해 왔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감싸며 모른 척 지나가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얼굴을 드러내고 만다. 오랫동안 쌓여 온 서운함은 관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임계치에 다다르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친구란 숲 속에 있는 길이다
자주 찾아가지 않으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이다. 불행히도 나에겐 절대 스스로 찾아오지 않는 친구1이 있다. 어떻게 그런 친구와 30년이란 세월을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요즘 새삼 그 긴 세월을 되짚어보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친구1은 내가 늘 먼저 찾아가던 습성 때문에 그렇게 길들여진 것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방적인 관계는 얼마나 피곤하고 허망한가. 다행히 우리 둘 사이에는 완충 역할을 해 온 또 다른 친구2가 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우리가 연명을 해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셋의 조합을 무척 좋아했다. 셋이 만나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완전체가 된 느낌이 들었고, 이야기가 심도 있고 풍성하게 뻗어나다. 우리는 젊은 날 직장에서 만인생의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셋이 어찌나 똘똘 뭉쳐 다녔는지, 인근의 직장까지 소문이 날 정도였다. 나는 내가 먼저 숲 속의 길을 찾아가는 것을 즐겁게 생각했다. 친구 사이에서 좀 더 적극적인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 만나면 그만한 즐거움을 보상해 주는 친구들이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연락을 하고, 약속이 잡히면 앞뒤 재지 않고 룰루랄라 달려가곤 했던 것이다.


우리 관계에 단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었다면, 함께 하는 시간을 좀 더 밀도 있게 갖고 싶었다. 그러기에 여행만 한 것은 없다고 생각해서 봄부터 제주 여행을 기획했다.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3월의 벚꽃놀이가 무산되었기에, 6월에 다시 수국 구경을 제안하였다. 나와 친구2는 집안의 행사도 다 미루고 일정을 비워둔 채, 이제나 저제나 친구1과의 날이 잡히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친구1은 이번에도 우리의 숲을 찾아올 생각이 없었다. 그 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 날, 그녀의 무심함은 가까스로 버티던 우정의 둑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말았다. 과연 우리는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친구2가 친구1  친구3과 함께 제주로 놀러 왔. 원래 친구3은 따로 제주 방문할 예정이었는데, 친구2와 잘 아는 사이인지라 내가 급히 꾸린 여행팀이다. 친구3은 전에도 혼자서 제주에 놀러 온 적이 있는데, 최근 불치병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연락을 하게 되었다. 친구3은 걱정했던 것보다 의연했다. 병의 진행을 늦추기 위해 하루 2만 보를 걸으며 건강을 관리하고 있었고, 틈나는 대로 여행도 다니고 있었다. 언제 떠나게 될지 모르는 세상과의 인연을 열심히 조율하고 있었다.


친구2는 나처럼 수국을 좋아했다. 이번 여행은 어쩌면 그녀를 생각하고 계획된 여행이었다. 미술을 전공하고 한때 민화를 그려서 현대민화 공모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적 있는데, 파리에 3달간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상으로 받았을 때는 어찌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파리를 다녀와서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나는 민화라는 것을 난생처음 만났다. 그 후 나도 민화를 그리게 되면서 친구2와는 좀 더 각별한 인연을 갖게 되었다.


친구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가만 보아하니 슬픔보다는 기쁨을 나누기가 더 어려운 듯다. 기쁨에는 시기와 질투의 감정이 끼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도 기뻐한다"는 속담이 있다. 친구가 잘 되는 것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준다는 말이다. 나와 너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슬픔보다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더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자주 연락하고, 어떤 상황이든 응원해 준다면 그가 진정한 친구다.


우리는 제주에서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만큼 더 친밀해졌다. 나의 민화도 친구2의 귀한 사사를 받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창작민화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잠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기에, 그녀의 깜짝 지도는 깜한 밤길에 만난 등불처럼 반갑고 고마웠다. 그녀이제 건강 때문에 아쉽게도 절필을 했지만, 내가 민화를 시작하고자 용기가 필요했을 때 적극적으로 응원하였고, 지금도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오래 지낼수록 맑고 진실한 영혼의 향기가 전해지는 나의 소중한 친구다.


두 번째 민화의 창작 과정


서울에서의 친구가 주로 또래 집단에 머물렀다면, 제주에서 친구의 폭은 획기적으로 확장되었다. 위로는 띠동갑, 아래로는 스무 살 가까이 아우르곤 하였다. 남녀를 불문하고 올레 아카데미에서 만난 다양한 연령의 친구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제주와 올레길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 마음만 열면 단 하나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뜨겁게 마음을 나눌 수 있음을 배웠다. 애정이 지나쳐서 다정도 병이 되곤 하였지만, 도시에서 지친 나의 삶은 크게 활력을 얻었다.


실험예술과의 인연은 좀 더 특별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그토록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것은 대학 때 연극반을 만난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한국실험예술 대표 김백기 감독의 순수한 열정에 깊이 감동하였다. 우리는 거의 만나자마자 절친이 되었다. 덕분에 매주 멈추지 않고 서빳에서 올리던 실험예술 공연과 해마다 제주에서 열리던 세계실험예술축제를 만나 나는 다시 젊어졌다. 그들을 홍보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고, 곁에서 그들을 도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실험예술은 그렇게  내 삶 깊숙이 침투했고, 나의 제주 삶은 6월의 수국처럼 활짝 피어났다.


일상을 함께 나누는 친구도 중요하다. 함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산책을 하고, 신나게 물놀이 즐기고, 맛있는 밥을 찾아가 먹는 사이만큼 소중한 친구도 없다. 친구를 사귀는 데 있어서 마음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인연이 다가왔을 때 마음을 활짝 열고 내 안으로 받아들인다면, 에고의 경계는 사라지고 우리는 하나가 된다. 제주에서 새로이 만난 친구, 자유로운 영혼의 제주옥과 서귀포의 언니와 동생,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하며 만난 쥬니와 로사는 내 제주 인생의 숲을 무성하고도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인생의 숲을 거닐듯이 제주의 숲을 걷는다. 5월의 머체왓은 아름다. 참꽃이 서중천을 따라 길게 분포다. 꽃은 진달래와 철쭉을 닮았지만 잎이 세 개씩 모여 나기 때문에, 삼다도를 의미하는 제주도의 도화가 되었다. 어느 날 서귀포 친구들과 참꽃을 찾아가며 숲길을 걷다가 조랑말(제주마) 두 마리를 만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책을 하다가 사진을 찍는 소리에 뒤돌아보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모습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숲의 요정은 혼자 놀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고, 내 그림의 오브제인 의자와 나비 등장한다.


그림을 감상하는 누구든 자신이 가꾼 인생의 숲에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기를 권유해 .


두 번째 창작민화, <참꽃 피는 머체왓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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