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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Nov 07. 2023

초르수 시장에서 유아차 수리하기

타슈켄트에서 유아차 수리가 가능할까

호스텔로 돌아가는 길, 나는 초르수 시장에서 철물점 같이 생긴 가게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그나마 우즈베키스탄이 키르기스스탄보다는 발달해 보였기 때문에, 키르기스스탄에 넘어가기 전에 반드시 고장 난 유아차를 수리해야 했다. 철물점을 보자 또다시 아이비에커가 떠올랐다. '돌아오기만 해, 내가 다 알아서 할게'라는 문자로 든든한 척은 혼자 다했으면서, 정작 만나니 흑심만 품었지 고장 난 유아차 지붕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역시 믿을 건 나 자신 밖에는 없다고 다시 한번 깨달은 나로서는, 초르수 시장의 철물점 같은 가게는 꼭 잡아야 할 기회처럼 보였다.  간판에는 키릴문자로 ремонт обуви(구두수리)라고 써져 있었는데, 가게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사물스티커를 봐서는 구두는 물론이고, 옷, 가방, 전자제품, 카메라까지 오만가지를 다 수리하는 가게가 분명했다. 풍채가 좋은 백발의 노인이 가게 안에서 구두를 매만지고 있었다. 가게 안은 수리를 기다리는 고물들로 혼잡했다. 선풍기부터 냉장고까지, 딱 보기에도 오래되어 보이는 물건들이 규칙 없이 흩어져있었다.

구두수리 가게



 가게 앞에 우두커니 선 나는 유아차의 손잡이를 매만지며 한참을 고민했다. 우즈벡 유심도 없어서 구글번역기도 쓸 수 없는데 무슨 수로 저 아저씨에게 유아차 수리 되냐고 물어본담? 우즈베키스탄 유심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수박을 사겠다는 일념하에 이미 주원이 손잡고 저 멀리 가버렸다. 내가 도태되든 말든 절대 뒤돌아보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가게 앞에 서있어도 백발의 노인은 얼마나 수리에 집중했는지 절대 나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뒤에서 우두커니 있는 나에게 야구모자를 쓴 남자가 말을 걸었다. 얼씨구나 하고 내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자, 자신은 종업원이 아니고 저 백발노인이 고치고 있는 신발의 주인이며 수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가게로 들어가 백발노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발 노인은 가게 밖으로 나오더니 이리저리 유아차를 보고는 고칠 수 있겠다고 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맥가이버! 우즈베키스탄의 영웅! 당신은 진정한 기술인! 내 마음속에 기쁨이 가득 찼다. 백발노인은 여러 제품을 수리하다 보니 제품에 대한 분석력이 뛰어났다. 유아차를 밀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육아인들도 남의 유아차는 한눈에 분석이 안 된다. 버튼을 누른 채로 앞으로 제친다던지, 발로 누르면서 동시에 버튼을 누른다든지, 혹은 버튼이 디자인 안에 교묘하게 숨어있다던지, 여러 이유로 남의 유아차를 접거나 해체하거나 는 일은 어렵다. 백화점이나 문화센터에서 유아차를 빌려주는 경우에도, 많은 사람들이 유아차 빌리는 곳에서 기본적인 사용법을 교육받고 유아차를 수령할 정도다. 그런데 이 백발노인이 나도 모르는 버튼을 눌러 연결고리를 빼냈다. 그는 연결고리와 지붕 부분의 상호관계를 순식간에 분석한 후, 부러진 부분을 들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서 10분 동안 자신이 가진 도구들로 유아차 지붕 연결고리의 절단 부분을 메우는 데 성공했다. 기술장인에 대한 신뢰가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가게 주인과 영어 잘 하는 가게 손님이 나의 유아차를 함께 고쳐주었다.


 수리비는 20000숨이었다.(한화 약 2000원 정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돈을 내고, 우리를 도와준 기술장인과 영어를 할 수 있는 남자에게 엄지를 쳐들으며 '약시! 약시! 라흐맛(good good thanks)'을 연발하고 초르수를 빠져나왔다. 내가 오든 말든 앞만 보고 갔던 엄마는 이미 초르수시장 초입에서 럭비공의 3배 사이즈는 되는 듯한 듸냐(멜론)를 산채로 내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듸냐가 무거워서 손으로 들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게 철물점의 백발기술장인을 칭찬하고는, 듸냐를 유아차에 싣고 호스텔로 향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수리기술의 결과는 1주도 가지 않았다. 키르기스스탄에 넘어가던 날, 그 접합부위는 다시 뚝 부러지고 말았다. 접합부위에 얼마나 검은색 본드를 발라놨는지, 검은 본드가 가루가 되어 으스러져 버렸다. 유아차 접합부위에 살이 닿으면, 말라버린 검은 본드가 가루가 되어 살에 달라붙였다. 어쩌면 유아차를 고치겠다는 건 나의 과도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귀국할 때까지 나는 고장난 유아차에 대한 미련을 아예 버렸다.


** 고장난 유아차는 한국에 귀국 후 친정부모님이 유아차 본사에 가서 뚝딱 하고 고쳐오셨습니다. 역시 본사 말고는 고칠 곳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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