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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 내리는 봄날 Aug 13. 2021

죽음에 관하여

과학적인 죽음과 삶에 관하여

 우리는 죽음에 관해서 절대 닥치지 않을 어떤 무언가로도 여기는 동시에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되는 절대적인 무언가로도 여긴다.


 사람들은 흔히 죽음에 관해서 극단적인 반응을 보이곤 한다. 죽음에 대해서 한없이 너그럽게 생각하는 동시에 죽음에 관해서 한없이 공포스럽게도 생각한다. 죽음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머나먼 이야기로 비추어지기도 하며 그러는 동시에 죽음은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만나야 할 존재로 비추어지기도 한다. 죽음의 이런 특징이 사람들의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온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죽음은 무엇인가?


죽음은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살아 있는 유기체를 유지하는 모든 생물학적 기능의 중지이다.


 과학에서 의미하는 죽음은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 죽음은 단어의 의미대로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생명체의 정의나 생물, 무생물 등에 관한 서술은 https://brunch.co.kr/@haestle1/15에서 서술하고 있으니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넘어가겠다.

 그렇다면, 삶은 무엇인가? 삶은 살고 있는 것을 의미하며 때로는 생명이나 목숨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삶이 끝나는 것을 우리는 죽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즉, 과학적으로 죽음은 살아 있는 유기체를 유지하고 있던 여러 가지 기능들이 중지하여 해당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아주 단순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에 해당한다.


 죽음에 관한 의미를 보다 더 현실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를 철학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죽음과 삶은 함께 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삶에 관한 철학적인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삶의 의미는 삶이나 전반적인 실존의 목적과 의의를 다루는 철학적 의제를 구성한다.

 

 즉, 삶의 의미, 삶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우리의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세상 만물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에 관한 질문이 함께 따라오게 된다. 하지만, 이런 여러 어려운 질문들은 죽음에 관해서 다루는 이 글에서 다루기에는 너무 깊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볍게만 다루고자 한다.

 삶의 의미는 철학을 넘어 과학과 종교에서도 깊게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삶의 의미는 봉사일 수도 있고 자연 탐구일 수도 있으며 그저 행복한 추억을 쌓는 어떤 여정으로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왜 삶의 의미는 죽음에 있어서 중요할까?


삶의 의미가 멈추고 더 이상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순간을 죽음이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죽음이 찾아오면 봉사도 할 수 없고 자연에 대한 탐구도 지속할 수 없으며 더 이상 행복한 추억을 쌓을 수도 없고 누군가와 논쟁을 이어갈 수도 없다. 사람들이 오랜 기간 삶을 이어오면서 쌓아오고 일부는 잃어버런 여러 삶의 의미가 죽음으로 인해서 멈추기 때문이다. 즉,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라는 거대한 무언가를 죽음은 통제로 앗아간다. 이런 죽음의 특징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죽음을 공포스러운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단순히 공포스러운 대상을 넘어서서 죽음 공포증이라고 불리는 타나토포비아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죽은 것에 대해 공포를 느끼는 네크로포비아와는 엄연히 다른 공포증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각해지면 일종의 정신장애로서 타나토포비아로 진단되는 것이다. 죽은 것이 아닌 죽는 것에 공포를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죽음의 특징은 때론 사람들이 죽음을 떠올리지 않고 마치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인간은 자신이 해결할 수 없고 너무나 커다란 문제를 맞이하게 되면 이를 회피하고 옆으로 치워두려고 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이로 인해서 죽음은 공포스럽고 언젠가 만나는 존재인 동시에 만나지 않을 것 같으며 굳이 생각하지 않고 싶은 존재가 되게 된다.


죽음은 두려운 존재이고 삶의 의미가 멈추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일은 공포스러운 일이기에 사람들은 죽음을 회피하거나 죽음을 최악보다는 나은 일로 해석하고자 노력한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서술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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