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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ger Ly Mar 30. 2023

[손님] 황석영,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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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 그려진 사실들은 '우리 내부에서 저질러진 일'이었으므로... (p261)



1.

[손님], 초대받지 않은 자. 


중세시대 조선의 민중들이 천연두(서병)를 '손님', '마마'로 불렀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작가 황석영은 서양에서 들어온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손님'이라고 부른다.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를 "식민지와 분단을 거쳐오는 동안에 우리가 자생적인 근대화를 이루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지니게 된 모더니티"(261)라 말하며,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는 이 두 개의 관념 (손님)을 '개화'의 방식으로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우리'가 그들의 충돌의 주체가 되어 희생되었음을 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 두 가지 사상을 서양의 '병' (illness, sickness)이라고 보는 작가는 서양 근대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만, 그의 비판은 거기서 더 나아가 '손님'을 받아들이는 주체였던 '우리'의 태도를 겨냥한다. 두 사상의 갈등 속에서 '우리'가 희생된 이유는 근대화나 미국 (외부)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손님'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우리 내부에서 저질러진" (261) '신천 학살'이라는 역사적 비극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또한, 우리의 잘못으로 우리에게 남은, 그리고 서로에게 남긴, 아직도 아물지 않은 그 벌겋게 벌어져 있는 상처를 우리 모두가 반드시 직면해야만 그에 대한 치유와 화해에 대해 논의해 볼 수 있기에, 작가는 그 논의 방안의 하나로 이 소설을 제시하며, 스스로 기꺼이 무당이 되어 이 소설을 마당 삼아 서로의 화해를 도모하는 굿, 즉 해원 (한을 풀고 서로 화해하는) 의식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Massacre in Korea (Pablo Picasso, 1951) 



"미국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끼리 그랬는데, 특히 기독교인들이 그렇게 했다는 거죠.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아, 이건 우리끼리 한 짓이로구나. [...] 같이 어울려서 밥 먹고 경조사에 같이 슬퍼하고 기뻐하던 그러던 사람들이 그 50일의 짧은 기간에 서로 악귀처럼 변해서 죽인 거죠" (황석영, KBS 인터뷰 중). 


2. 

황석영의 2001년 소설 [손님]은 1950년 6.25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해 10월에 황해도 신천군에서 50여일 동안 주민 35,000여 명이 학살되는 참극을 다룬 소설이다.  


이야기는 어릴 적 월남 후 미국으로 이민 간 개신교 목사 류요섭이 이산가족 상봉 사업에 참가하여 고향 황해도를 방문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류요섭의 북한 방문은, 그가 6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그로부터 20년 후라고 하니 80년대에 이루어진 것 같다). 류요섭이 황해도로 떠나기 전, 교회 장로로 활동하던 그의 형 류요한이 갑작스럽게 죽는데, 류요섭이 미국 뉴저지에서 엘에이, 베이징을 거쳐 평양으로 가는 동안 형의 혼이 수시로 나타나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류요섭이 황해도 신천을 방문하여 살아있는 가족 친척과 상봉하면서부터는 형이 잔인하게 죽였던, 한때는 가족처럼 지냈던 아저씨들의 혼들도 나타나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류요섭과 독자들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점차 알아간다. 참혹했던 과거의 그날들에 대해서, 혼 각각의 목소리로 전달되어지는 그날의 끔찍한 광경과 실상에 대해서.


살아있을 적 형제가족들처럼 지내던 자들이 이제는 죽은 자들이 되어 살아있는 류요섭 앞으로 모여 그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쏟아내는 장면은, 무당이 굿을 하는 북적북적한 마당보다 명절날 오랜만에 만난 가족 친척들이 모두 한 방에 둘러앉아 낮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곳에서, 그러니까 죽은 자들이 더 이상 증오심과 두려움에 떨며 삶과 죽음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그곳에서 서로의 이야기들이 나누니 그제야 진실과 진심이 소리 내며 나왔을 것이다.


북한 정권의 토지개혁이 본격화되면서 개신교도들과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계급과 이념의 갈등으로 충돌이 일어났다. (대대로 많은 토지를 물려받은 지주들 대부분은 개신교도들이었는데, 토지분배는 봉건제를 끝내며 계급의 전복을 일으켰고 그때문에 농촌에는 끔찍한 변화가 찾아왔다. 일꾼으로 살던 자들이 하루아침에 당원이 되어 지주로 모셨던 자들의 가족을 무참히 짓밟고 토지를 몰수해 가는 장면이나, 하나님을 믿는다는 자들이 그 복수의 일환으로 한때 가족처럼 지냈던 머슴 아저씨들의 코를 꿰어 가축처럼 끌고 가는 장면이나, 아기, 어린아이들, 임산부 할 것 없이 모두 방공호에 밀어 넣고 기름을 부어 불질러 죽이는 장면은, 그들 모두가 악마가 씐 게 아니라면 과연 무엇일지 의문하게 했다. 


그들 모두의 삶을 파괴한 것은 바로 가족처럼 지내던 황해도 신천 사람들 자신들이었다는 사실은 맞지만서도, 그들이 모두 악마처럼 변했던 것은, 단순히 그들의 편향적이고 이분법적 사고 때문만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원인인, 외부 즉, 손님 (근대화)가 찾아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다. 아니, 어쩌면 그들이 그러한 사고를 하고 판단을 하게 된 원인을 근대화 자체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밀고 들어오는 근대화의 물결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게 자신과 함께 나고 자랐던 고향 사람들을 처참히 죽이게 되는, 양심도 사라지고 이성도 잃은 그 못나고 추잡한 인간의 모습이 바로, 마른 한국 땅에 내리쳐진 근대화라는 날벼락이 낳은 인간의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무속이 굉장히 합리적입니다. 우리 무속은 기억의 끝까지 가요. 기억하라는 거지. 죽은 놈까지도 불러내죠" (황석영, KBS 인터뷰 중).


3.

굿/해원의식

지노귀굿은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전국적인 형식의 넋굿"으로, 이 작품은 황해도 진지노귀굿 열두마당을 기본 열개로 하여 씌어졌다고 한다. 소설은 열두 마당, 다시 말해 열두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설 자체가 원한 맺힌 자들의 한을 푸는 마당이라는 공간의 역할을, 그들을 한데 모아 그들의 말, 행동, 생각을 글로 옮김으로써 더 이상의 한 맺힘이 없도록 해원의식을 펼치는 소설가가 무당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소설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통해 현재를 과거와 연결하고, 또 과거의 한들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현실과 환영의 경계를 허물어, 각각 서로 다른 체험과 복잡한 생각들을 한데 모아 화해를 도모하는 새로운 서사의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과거로의 이동, 과거의 현재화, 환상과 현실의 뒤섞인 상태 등은 소설의 독특한 시간적 구조와 환상적 리얼리즘의 세계를 보여준다.   

화해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지만, 망자를 저승으로 천도하는 넋굿을 펼치는 무당처럼, 작가는 "아직도 한반도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흔과 냉전의 유령들을 이 한판 굿으로 잠재우고 화해와 상생의 새 세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썼을 것이다. 




4.

황석영의 글을 처음 읽었다. 문장이 참 매끄럽다. 막히는 곳, 불편한 곳 하나 없이 기가 막힐 정도로 매끄럽게 읽힌다. 문장의 세세한 표현보다 전체 서사에 작가의 철학과 체험, 그리고 그의 인생관이 총체적으로 녹아들어있어, 읽는 내내 한국문학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전혀 낯설지 않음을 확인했다. 헤밍웨이와 쿳시의 소설을 읽을 때처럼, 황석영의 소설 또한 전율을 일으킨다. "반 고흐의 그림이 감동을 주는 것은 자기 인생을 투여했기 때문"이라고 작가가 어디선가 말한 적이 있는데, 내가 보기에 작가의 글도 딱 그렇다. 





황석영.


1943년 만주 출생.

1962년 사상계 "입석부근"으로 신인 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1989년 [무기의 그늘]로 제4회 만해문학상 수상.

2018년 제5회 심훈문학대상 수상.

2018년 [해질 무렵]으로 프랑스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수상. 


작품:

1971 [객지]

1972 [아우를 위하여]

1985 [무기의 그늘]

1974-1984 [장길산]

2000 [오래된 정원]

2000 [삼포 가는 길]

2001 [몰개월의 새]

2001 [손님]

2001 [모랫말 아이들]

2007 [심청, 연꽃의 길]

2007 [바리데기]

2008 [개밥바라기별]

2010 [강남몽]

2011 [낯익은 세상]

2012 [여울물 소리]

2015 [해질 무렵]

2020 [철도원 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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