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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연 Sep 13. 2022

산책자 L의 일기

마포대교를 건너며,

I.

도시의 언어유희

나는 종종 마포대교를 산책한다. 여의도의 빌딩 숲에 다가갔다 몸을 휙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개를 들어 휘휘 저으면 공덕까지 쭉 이어지는 마포대로 양 옆으로 늘어선 빌딩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많은 빌딩 중 '한신 빌딩'이라는 곳이 있는데, 밤에는 건물 좌측 상단에 있는 ‘한신’이라는 글자에 푸른색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그런데 한동안은 ‘ㅎ’의 불이 나가 있었다. 지금은 불이 다시 들어오지만, 불이 나가 있었던 그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나만의 언어유희를 즐겼다. 바로 ‘ㅎ’ 자리에 다른 자음을 넣어보면서 말이 되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나온 조합은 '간신, 난신, 단신, 만신, 반신, 산신, 안신, 탄신, 한신'이다. 혹시 내가 빼먹은 게 있다면 알려주시라.

이때 이후로 나는 빌딩의 간판이나 네온사인을 허투루 지나치지 못하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멀쩡한 병원협회가 밤이 되면 ‘병 협회’가 되는 모순을 그냥 방치해도 괜찮단 말인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II. 

주(住)와 주(蛛)

마포대교 난간에는 거미가 엄청 많이 산다. 저 거미들도 우리가 한강뷰 아파트에 살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서로 치열하게 영역 다툼을 했을까? 월세와 전세 매물을 찾아 서울 곳곳을 전전하는 우리들보다 저 거미들의 처지가 낫다는 씁쓸한 생각도 해본다. 이곳저곳을 자유로이 누비며 원하는 곳에 아름답고 효율적이며 친환경적인 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며 살아간다. 왠지 영화 <소공녀> 속 당차고 사랑스러운 미소가 떠오르는 저녁이다.


III. 

밤이면 마포대교 옆을 수놓는 가로등은 낮에는 새들의 쉼터가 된다. 왠지 가로등의 모양새가 새와 닮았다는 생각도 든다. 작은 머리와 긴 목, 그리고 아래를 굽어보는 시선까지.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해본다. 가로등 옆이나 위에 달려 있는 감시카메라를 새 모양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푸코가 이야기한 판옵티콘의 자연친화적 버전이랄까. 공권력 미화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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