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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팽나무 Oct 23. 2020

뿌리의 전언

신문연재1

                                       

 상처에 약을 발라 줄 수도, 붕대로 감아줄 수도 없다. 억센 짓밟힘에 무방비로 놓여있는 상처 앞에 쪼그려 앉는다. 앙상한 뼈마디 같은 뿌리는 사방으로 뻗쳐있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킨 뿌리들, 자신의 몸이 상처투성이인데도 나무는 의연하다. 땅속 깊이 안전하게 뻗어 내린 뿌리가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일까. 같은 나무에서 났는데도 처지가 다른 뿌리의 운명이라니, 유독 껍질이 짓이겨진 부분을 살며시 만져본다. 거칠지만 따뜻한 뿌리의 속살이 느껴진다. 밟힘에 이골이 난 듯 초연하기까지 하다.


 처음부터 나무뿌리가 맨몸으로 세상과 맞선 건 아닐 터, 안전하게 자리를 잡은 나무는 키를 키우고 사방으로 뿌리를 내렸으리라. 그런데 나무의 욕심이 컸던 것일까. 그만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오솔길까지 넘보고 말았다. 길 쪽으로 방향을 튼 뿌리는 온전할 리가 없다. 사람들의 발자국은 점점 오솔길의 경계를 벗어나 뿌리 위로 길을 내버렸다. 흙이 벗겨지자 앙상한 모습을 드러낸 뿌리는 생존을 위해 점점 강해졌을 것이고 밟혀도 살아남는 법을 배웠을지 모른다. 남몰래 흘린 눈물이 굳어 두껍고 질긴 껍질을 만들었을까. 온전치 못한데도 나무를 반듯하게 세우려고 애쓰는 뿌리를 보며 삶에 대해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내 삶도 중심에서 밀려나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지 못한 채 흔들리면서 세상과 부딪혔다. 좌절과 고통이 짓밟고 간 뒤 생긴 상처는 딱지가 앉고 도지기를 반복했다. 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맞닥뜨려야 하는 고난 앞에 웅크리기도 하고 맞서기도 했다. 등에 진 짐은 점점 무거워졌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순간도 수시로 찾아왔다. 하지만 고난은 생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가. 넘어지면서 다시 일어서는 법을 배웠다.


 나무를 가만히 안자 푸른 기운이 전해져 온다. 포기하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뿌리에 건넨 말이 되돌아와 가만가만 내 등을 다독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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