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에세이
어제 죽은 이의 묘비는 따뜻할까. 갓 떨어진 낙엽을 손으로 비벼 으스러트리며 스러지기 직전의 온기 같은 것을 느껴보려 한다. 그런 것이 있다면, 살아가던 생명이 다할 때 그동안 응축되어 온 어떤 것들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죽은 직후일 거라고 막연히 상상해보곤 한다. 어떤 이의 일생을 결정짓는 것이 살아온 시간 동안 쌓아온 어떤 것들이라면 죽은 후의 온기도 그 시간에 비례할 테지만 삶이 일정 시간 누적된 후에는 자연스레 발화되는 질량에 의지해 남은 시간을 살아갈 테니, 죽음이란 결국 사는 동안 축적한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모두 소진한 다음에 찾아오는 벨소리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죽은 후의 온기란 탄산이 모두 새어나간 사이다의 뚜껑을 돌렸을 때 픽 하고 새어 나오는 가스처럼 흔적은 있으되 소용없는 것일지도 모르고 이제 더는 남은 숨이 없다는, 그러므로 더는 무언가를 나눌 수도, 전해줄 수도 없다는 미적지근한 메시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제 어떤 공간의 마지막을 고할 때 거기 남았을 흔적들, 이를테면 벽지 한쪽에 묻은 손자국이나 색색으로 끄적인 암호나 이름 같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벽을 허물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라질 어떤 흔적들이 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 안에 움틀 때의 기적과 그곳을 벗어날 때의 고통, 두려움, 새로움, 기쁨, 초라함과 절망 같은 것들이 공간에는 존재한다. 우편물이 주소를 찾아가는 것처럼 자리를 잃었을 기억들이 자신의 모처를 찾아가는 것. 어떤 시간이 공간에 머물며 태어난 조각들이 그곳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각자의 살길을 따라 떠돌다가 문득 나의 행복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궁금해졌을 때 비로소 공간을 만지며, 찾고 냄새 맡으며 마침내 도착하는 곳. 엄마의 자궁과 같은 곳. 죽음의 온기는 그런 것들을 떠올릴 마지막 순간을 가늠하고 상상할 때의 열감일 것이다. 이제 돌이킬 수 없을 때 서로가 서로의 세상에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시간과 서로가 서로의 세상에 들어서게 된 후의 시간을 비교해 보는 고요함과 공허함. 기꺼이 자신을 내어줄 수 있었던 용기, 그리고 후회. 사랑과 관계에 대한 수많은 의문들. 다시 태어났다고 느꼈던 순간과 갑작스럽게 상실되어 가던 무게감. 나는 무엇인지 묻던 불안의 공터. 그곳을 휩쓸고 지나가던, 비질하듯 쓸리던 추억과 낙엽들. 이제 떨어질 것을 알기에 더욱 피몰린 손을 놓지 못하던 황홀한 가을. 잊지 못할 11월. 위로가 상처로 느껴질 만큼 살갗이 아리던, 그래서 몸과 마음이 통각으로만 이루어진 것 같았던 시간. 죽음. 말소. 기억. 이름. 당신을 그리던 투명한 하늘. 흔적이 남지 않기에 부를 수 있었던 언어. 나뭇가지처럼 세워져 있던 손끝의 떨림.
이제 손끝에 남아 바스러지는 낙엽 가루를 본다. 거기서 느껴지는 희미한 온기가 나의 것인지 상대의 것인지 알 수 없다. 햇살이 쏟아지는 나무 의자에 가서 앉는다. 헤아릴 수 없이 먼 곳에서 온 따스함이 아주아주 많은 것들을 잃은 채로 그곳에 도달해 있다. 이 따스함은 무엇을 바라고 길고 냉혹한 우주를 건너 이곳까지 왔을까. 너는 어떤 길을 걸어 내게 왔을까. 돌아간다는 말을 차분히 생각해 본다. 보내준다는 말을 그 위에 엎는다. 이별이란, 그러니까 죽음이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 있던 곳으로 보내주는 것. 우리가 따로 걷던 길 위에 함께 걸어온 길을 가만히 겹쳐 본다. 길은 선명해지고 그 순간들이, 발걸음 하나하나가 얼마나 밝고 따뜻했는지. 새삼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곳에 도달해 서로의 세상에 걸터앉게 되었는지. 의지하고 기대며 어려운 순간들을 견뎌왔는지. 그리하여 혼자서는 올 수 없었던 이곳에 서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제부터의 시간은 상실이 아니라 전송, 이라는 것을. 아주 오래도록, 떠나는 너의 뒷모습을 차분히 바라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