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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도 위로도 될 수 없음을

우린 서로에게

by 작가 전우형

시푸르다는 말이 어울리는 하늘이었다. 하늘은 내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이토록 깊고 투명한 하늘이라면 누군가를 보내기에도 좋을 거라고. 그림자가 아직 길어 걷기엔 쌀쌀한 오전이었다. 흰 억새풀들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흔들리는 걸 본다. 거리거리 흩어진 낙엽들. 아스라이 흩어지는 기차소리. 마음의 철길을 걷는다. 끝없이 멀어지기만 하는 길을. 어느 소실점이었던가, 살아간다는 것은. 살다, 와 가다를 두고 고민하도록 만들어진 그 단어는. 고민이야말로 삶이 굴러가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이라고 이야기하는 듯이. 언덕 위에서 빨간 줄무늬 옷을 입은 강아지 한 마리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는 몸을 움직인다. 손을 쓰듯 몸을 쓴다. 그러다 보면 얼어있던 냇물에 균열이 조금씩 생기고 졸졸졸 그 작은 틈으로 생각의 길이 열린다. 곰탕을 끓일 때 부옇게 뜬 거품을 걷어내듯 정제되지 않은 생각들을 걸러낸다. 그 속에 든 낱알의 감정들을 손으로 길어 올린다. 물기를 걷어내고 나면 보이는 콩알 같은 감정들. 하나씩 세어 보다 보면 어느새 물든 입술. 일상의 메마른 언어가. 내 마음의 절반을 먹어치웠음을 알게 된다. 걸을 때에만 할 수 있었던 말들, 볼 수 있었던 하늘, 부대끼는 나무살의 음색과, 그리고 터벅터벅 내딛던 아이의 걸음소리. 그러나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던 나의 발걸음, 나의 흔적. 말없이 뒤따라오던 나의 그림자. 해를 찾아 걷던 가을날의 빛바랜 거리. 삶에서 아름다움보다는 쓸쓸함을 먼저 찾아내는 나처럼 말없이 걷기만 하던 아이. 바람이 차다며 목도리를 둘러주던 엄마의 따스함과, 이제 부르르 떨며 하얗게 뜬 손등을 매만지던 까슬까슬한 촉감. 우린 서로에게 위로도 상처도 될 수 없음을, 가을길은 내게 속삭여준다. 잔잔한 바람과 해가 비치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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