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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엔카페인 Jun 10. 2023

실수가 4번 반복되면 그건 실수가 아닌 본모습

[2023 WBC] 감상평


WBC가 끝난지 어느덧 3달이 넘은 시점입니다. KBO리그는 대부분의 팀들이 50게임 이상을 소화했습니다. 블로그에 올릴 때 브런치에 같이 올렸어야 했는데 작성자 본인의 게으름을 탓해주시길 바랍니다. 이 글의 시점은 한국이 1라운드 탈락한 3월 중순으로 해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만 아시안게임이 9월에 남아있는 시점에서 제가 사랑한 한국 야구가 제발 좋은 성과가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바라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했고, 화났고, 속상했고, 무기력과 체념이 몰려온다. 이딴 경기력을 위해 낯선 타지에서, 새벽 4시에 깨가며 경기를 왜 봤을까란 현타도 온다. 물론 나는 이딴 경기를 보고도 지독 하디 지독한 야구빠라 한국에 돌아가면 또 야구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이번 대회에 크게 실망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야구장에 찾을까는 의문이다. 신규 유입을 노리겠다던 선수들의 다짐은 오히려 사람들을 축구로 돌려보내는 결과를 낳았다. 2013, 2017, 2023 WBC 1라운드 탈락.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까지 합하면 총 4번의 실패, 실수, 참사가 있었다. 


첫 번째는 실수, 두 번째는 불운이라고 쳐도 세 번째부턴 실력이고 본모습이다. 그런데 네 번째?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냥 이게 우리의 모습인 거다.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명대사처럼 우리는 야구를 못한다. 못해도 정말 드럽게 못한다.


0. 야구는 공평하다. 그래서 당연한 결과가 없다.


야구는 공평하다. 아무리 경기가 길어져도 - 콜드게임은 생각하지 말자- 각 팀에게 최소 8번의 공격 기회가 주어진다. 1등도 승률이 6할이며 꼴찌도 승률이 3 할이다. 정리하면 1등도 10번 중에 3,4번은 질 수 있다는 이야기고, 꼴찌도 10번 중에 3,4번은 이길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WBC는 유난히 예측하기 어려운 결과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A조에선 쿠바, 이탈리아, 네덜란드, 파나마, 대만이 물고 물리는 결과 끝에 모두 2승 2패라서 실점률을 따져 1,2위가 결정됐다. C조에선 콜롬비아가 멕시코를 꺾은 뒤, 멕시코가 우승후보 미국을 11-5로 이겼다.(이 결과로 인해 멕시코가 C조 1위, 미국이 C조 2위로 진출했다. WBC를 주최하는 MLB 측에선 생각하지 않았던 변수였다.) 베네수엘라는 우승후보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를 연달아 꺾었다. D조에서 베네수엘라가 선전하며 선수단 연봉 약 8400억 가량 최강 라인업이라고 자랑하던 도미니카는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알듯이 B조의 결과도 심상치 않았다. 바로 이 경기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2690&ref=A

홈런 3방 맞은 WBC 대표팀, 호주에 패배…1라운드 탈락 위기


        


한국이 2라운드에 올라가기 위해선 지면 안되는 경기였다. 한일전은 이기는 게 쉽지 않은 경기였고 그렇기 때문에 호주전에서 8강에 올라가기 위해선 필승을 해야 했다. 그러나 투수진의 부진과 외야로 타구가 빠르고 크게 뻗어나가는 도쿄돔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8-7로 졌다. 이변이라면 이변이었고 실력이라면 실력이었다. 김원중, 양현종의 실투들은 호주 타자들의 어퍼스윙에 여지없이 뻗어나갔다. 자멸하는 호주 투수들을 상대로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했다. 이날 한국 타자들은 5회까지 안타 하나도 제대로 때리지 못하며 졸전을 펼쳤다. 그렇게 졌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한일전을 제외해도 호주전의 경기력도 좋다고 할 순 없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야구는 공평하게 좀 더 좋은 실력을 보여준 호주가 승리를 했고, 2라운드 진출을 했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308_0002218604&cID=10502&pID=10500

이강철 감독 "호주전, 여유있게 이겨야 한일전 올인"[2023 WBC]



그런 의미에서 참 안타깝고 허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호주는 만만하고 여유 있게 잡을 상대가 아니었다. 참고로 나는 저런 식의 발언을 자주 접하는 kt 팬이다. 이강철 감독의 문제점은 하단에 이어 서술하려 한다.


1. 말로는 야구 부흥, 실제는 준비 소홀. 자신이 없으면 입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https://m.news.nate.com/view/20221209n01008

월드컵에 감동한 이정후 "야구 대표팀 이미지, 플레이로 바꾸겠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oid=410&aid=0000925282

결국 투수 놀음? “많이 올라왔다” 레전드 코치들의 호평

https://www.yna.co.kr/view/AKR20230311002800007?input=1195m

[WBC] 대표팀은 왜 지구 반대편서 전지 훈련했나…투수진 난조의 시작

기대했던 사람을 머쓱하게 만드는 상황과 말들이 있다. 앞에서는 큰소리 뻥뻥 쳐놓고 막상 까보니 별거 없는 경우다. 이번 WBC가 딱 그런 모양새다. 최고의 준비를 부탁해 미국 전지훈련을 준비했고, 최고급 호텔도 마련했으며 선수 구성도 데이터를 기반으로, 신구 조화를 열심히 고려해 뽑았다. 메이저리그 최고 2루수인 토미 에드먼도 열심히 설득하여 데려왔다. 그러나 결과는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다.


준비 부족이 최악의 문제다. 호주전, 일본전 패배 후 애리조나 캠프에서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는 기사가 속출했다. 앞선 2경기 전에선 접할 수 없었던 기사였다. 오히려 자신 있다. 컨디션 좋다.라는 이야기가 도배했다. 다른 조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무난한 B조(일본, 한국, 호주, 중국, 체코) 였기 때문에 1라운드는 뚫고 8강부터 노린다는 여론이 줄을 이었다. 결과는? 8강 자리는 만만하다는 호주에게 줬다. 자신 있다던 투수진은 자신감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최악의 투구를 이어갔다. 준비됐다던 대표팀은 기본적인 플레이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 자신이 없으면 입을 열면 안 됐다.


심각한 문제는 투수진 난조였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무려 15명의 투수를 선발했다. 이 중 컨디션이 좋지 않아 경기에 제대로 나올 수 없는 선수는 5명이 넘는다.(고우석, 소형준, 구창모, 정우영, 이의리, 양현종, 김윤식 등) 나오는 선수도 장타를 계속해서 맞는다. 체코전을 치르기 전 평균자책점은 무려 11.12였다. 호주, 일본전을 치르며 2경기 21실점을 한 결과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데, 특히 단기전은 더욱 투수가 중요함에도 투수가 망가지니 손을 쓸 수 없었다. 준비되지 않은 투수는 나오지 못하고 준비된 투수는 갈려나간다. 


투수진도 좋지 않은데 갈리는 투수만 계속 갈린다. 3번에 후술하겠으나 이강철 감독의 스타일은 "자신이 정해둔 투수를 열심히 갈아대는 스타일"이다. 2019년부터 2021년 KT 우승까지 주권이 그랬으며 2022년에도 김민수가 그랬다.


대표팀에선 김원중, 원태인, 정철원이 이강철 감독의 눈에 든 듯하다. 컨디션이 좋은 투수가 없다고 이들의 개근을 핑계 대나, 확연한 구위 저하에도 이들을 계속해서 기용하는 건 이강철 감독의 오판이 맞다. 오히려 도쿄올림픽 때 자신 있는 공을 뿌렸던 이의리 등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이강철 감독은 김원중을 택했다. 남들은 투수 엔트리를 전부 쓰기 바쁜데 우리는 제한된 투수진에서 열심히 쥐어짜야 했다. 여러모로 최악의 투수 운영 및 상처뿐인 대표팀이다.


2 한국식 야구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외국 스타일을 수용해야 한다.


글을 일시저장 해놓고 프랑스 현생을 살고 온 뒤 야구계에선 여러 가지 이야기가 나왔다. 나무배트 대신 알루미늄 배트를 써야 한다든지(이에 대한 반론 기사도 등장했다), 외국인 선수를 더 늘려야 한다든지(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논리이긴 하다. 결국 외국인에만 의존하는 KBL과 다를 게 없어진다. 모든 구단이 외국인에게만 의존하는 선발 로테이션이 이를 증명한다.) 등등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장기적인 처방책은 현재의 아마 야구, 유스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현재 아마 야구는 당장의 진학, 프로 진출을 위해 "맞추기에 급급한 스윙"이 이어지고 있다.


양산형 좌타자가 리그에 쏟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톡 맞추고 뛰는 타자가 많아지니 투수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투수 역시 흔히 말하는 '뻥튀기'가 심하다. 스트라이크존은 프로와는 비교가 안되게 넓다. 심각하게 넓다. JTBC 예능프로그램 '최강 야구'를 통해서도 보였지만 프로 선수들이 "이게 스트라이크라고?" 하면서 당황하는 장면이 심상치 않게 나온다. 실제 아마 야구 대회를 보면 이보다 더 심각한 공도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된 S 존이 아니니 투수는 아웃카운트를 잡기 쉬워진다. 가뜩이나 아마 야구 스피드건은 3~4km/h 뻥튀기 되는 경우도 많은데 제구까지 뻥튀기 되니 별 볼일 없는 투수도 지역 & 전국구 유망주라고 포장돼 프로 구단들의 눈길을 끈다.


타자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쁜 공이라도 일단 맞추고 생각하게 된다. 자기 스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맞추고 뛴다. 이러니 거포 유망주는 싹이 마른다.  결국 장기적으로 서로에게 좋을 거 하나 없는 플레이들이 이어진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뜯어고쳐야 한다. 


외국인 심판을 들여오든, 외국에서 진지하게 시범 중인 로봇 심판을 프로 2군 및 아마 야구에 먼저 시범 운영하는 등 제대로 된 S 존 설정, 스피드건  도입이 우선이다. 


종종 "투지 넘치는 고등학생들을 대표팀에 내보내라"라는 분들이 있는데 제발 아마 야구 9이닝 경기부터 챙겨보고 아마 야구부터 뜯어고칠 생각해 주시길 바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이야기가 있듯, 아마 야구가 기반이 돼야 대표팀이든 프로든 뭐든 있다 생각한다.


당장의 성과가 너무나도 중요한 나를 포함한 슈퍼 코리안들을 위해 단기적인 처방으론 외국인 감독, 코치, 트레이닝 스타일을 '거부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3000구 투구가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투수 혹사의 여지가 있으나 제구가 잡히지 않던 양현종이 선동열 감독 지시 하 캠프에서 3000구 투구 후 KBO를 주름잡는 투수가 된 건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다. 올해 최충연도 3000구 투구를 시작했다. (그가 음주운전 전과자라는 건 잠깐 넣어두자) 그의 성과가 어떨진 모르나 3000구 투구가 다시 캠프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눈여겨볼 거리라고 생각한다. 3000구 투구는 일본에서 가져온 훈련법이다.


https://www.mk.co.kr/news/sports/10677260

최충연 3000구 훈련이 처참하게 무너진 한국 야구에 던진 메시지



kt위즈 고영표는 비시즌 드라이브 라인이라는 훈련법을 개인적으로 도입했다. 고영표는 군 복무 전 4~5점대 평범한 선발투수였으나 군 복무 중 ~ 군 복무 이후 드라이브 라인을 자체적으로 도입, 훈련해 구종가치 1위의 체인지업을 만들고 대표팀을 2번 승선하는 투수가 됐다. 드라이브 라인은 미국에서 유행하는 훈련법이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210110700007

"바워도 하잖아요" kt 고영표의 MLB 훈련법 탐구생활

어떤 방법이 더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야구는 논문이 넘쳐흐를 정도로 과학적인 스포츠로 변하고 있고 일본, 미국이 더 뛰어나고 우수한 훈련법으로 더 좋은 인재를 키워내고 있는 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원래도 신체적인 툴이 더 뛰어난데 더 과학적으로 효율적인 훈련하는 미국 / 고강도의 훈련으로 접근해 동양인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본  두 나라의 훈련법을 '한국식으로 변환해서', '한국 스타일답게' 따위 필요 없이 그냥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


이를 제대로 잘 이해하고 있는 외국인 감독, 코치의 영입은 당연히 필요하다. 가뜩이나 요새 한국 코치 수급난이라는데 외국인 코치 정말 많이 들여와서 제대로 된 훈련이 필요하다. 외국인 감독을 두고 있는 한화, 롯데의 시도가 성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영부영 우리끼리 대충대충 봐주면서 프로야구하니까 대표팀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 피치클락, 시프트 금지 등 MLB의 규정도 그냥 군말말고 최대한 빨리 따르는 게 필요하다.


3타자 룰 때문에 투수교체 벅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미 3타자 룰은 MLB에서 시행된지 몇 년 된 룰이다(3타자룰 도입 당시에도 선수들과 감독들 의견으로 잡음은 좀 있었지만 지금은 팀들도 그냥 따른다) 아마 2026 WBC에선 피치클락이 도입돼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다. WBC는 MLB 규정을 따른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런거 우리 리그에서 안하는데요라고 땡깡 피워봤자 소용 없다.


3. 감독도, 선수도, 단기전에 적합한 사람이 선발돼야 한다.

(부제: 불펜 쓸놈쓸, 되도 않는 작전 스몰볼, 이게 이강철 스타일입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6230&ref=A

 [현장영상] 이강철 감독, 투수 혹사 논란에 “한국시리즈 투수 몇 명 쓰는지 알아보시라”

진짜 보고 나서 어이가 없어서.. 저런 분이 어떻게 우리 팀 우승을,.

아 그때 우승도 쿠에바스 타이브레이커 신들린 투구+힘 빠진 두산 없었으면 진짜 개고생 할 뻔했다.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01&aid=0012859296

 '우승까지 1승' 이강철 kt 감독 "정석대로 간다…더 긴장돼"(종합)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076&aid=0003804237

[KT우승]시즌과 PS는 180도 달랐다. 두 얼굴의 이강철이 만든 퍼펙트 우승. KBO 전설이 되다

한국시리즈 엔트리는 총 30명. KT는 투수 13명, 포수 3명, 야수 14명으로 구성했다. 그런데 3차전까지 뛴 선수는 총 18명 뿐이었다. 투수는 윌리엄 쿠에바스, 소형준, 오드리사머 데스파이네 등 선발 3명에 고영표 조현우 김재윤 등 불펜 3명만 나왔다. 타자들도 주전 9명에 김민혁 송민섭 신본기 등 대주자, 대수비 요원 3명만 뛰었다. 3경기 내내 12명의 선수들은 벤치에서 동료들의 플레이에 응원만 했다.
이 감독은 "선수 때도 큰 경기서는 (투수가) 7명으로 끝나기도 했다"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예전 해태 시절에도 김응용 감독님이 잘던진 투수들만 던지게 하셨다"라고 했다. 이어 "자주 나가면 긴장감이 사라진다. 그런 상황에서 새 선수를 넣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이강철 감독의 단기전 운용은 경직 그 자체다. 한 시즌을 치르는 데는 훌륭할 수도 있는 감독이다. 선발 잘 만들고, 중간중간 땜빵 잘 메꾸고 관리 적당히 시키고, 시즌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달에는 꽤나 열심히 달린다.


근데 정말 단기전은 아니다. 본인 스스로부터가 이미 단기전 운용에 적합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모두가 kt의 2021 우승만 기억하지만 2020년 2등이나 해놓고 두산에게 포스트시즌 업셋을 당한 기억은 언급하지 않는다. 그때도 비슷했다. 믿는 선수만 계속 믿다가 믿는 선수들이 삽질해서 두산에게 업셋 줬다. 약간 호주전처럼 당한 느낌.


그러다 보니 이번 엔트리에서도 박해민, 김혜성, 최지훈은 중국전에서나 겨우 나왔다 - 박해민은 중국전에서 엄청나게 좋은 활약을 했다. 개인적으로 1번이든 9번이든 박해민은 선발 라인업에 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 투수진도 나오던 선수만 계속 나오고 못 나오는 선수는 반짝 나오고 사라졌다. 가뜩이나 투수 교체 타이밍도 이상했는데 엉뚱한 투수가 나와서 경기를 터트리고 그 이후로 보이지 못했다.


게다가 수비 강화를 이야기하며 그렇게 쓸모 있어 보이는 수비 강화도 딱히 하지 않는다. kt에서도 외야 대수비&대주자 역할로 매 시즌 100경기 넘게 출장하고 있는 송민섭 자리가 있는데, 이번 WBC에선 박해민이 그 역할이었다. 1루 수비가 중요한 자리이긴 하나... 굳이 전문 1루수 박병호/강백호가 잘 있는 와중에 버릇처럼 8회만 되면 1루수 박해민이 나왔다. 정말 굳이? 싶은 수비 강화가 계속됐다.


자기 눈에 든 선수만 편애하는 것도 심각하다. 실제 KT의 상황을 사례로 든다.


주권은 2019년 71경기 75이닝, 2020년 77경기 70이닝, 2021년 62경기 49이닝을 던졌다. 

김민수는 2022 시즌 중간 계투로만 나와 전체 경기의 절반이 넘는 76경기에 등판해 80⅔이닝을 던졌다. 불펜 투수 중 경기 수는 2위, 이닝은 1위였다. 

(출처: 스탯티즈, 조선일보)


경기에 나가는 선수야 감독한테 "저 못 던지겠습니다"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나... 당연히 나가겠다고 하고 영광이라고 하고 던진다. 그걸 관리해 주는 게 감독의 역할인데 자기 눈에 든 선수는 갈려나가든 터져나가든 무조건 쓴다. 이번 WBC에선 김원중, 원태인(+넓게 쳐주면 정철원,박세웅까지)이 그 역할이었다고 확신한다.


모두가 지적하듯 감독 탓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일본전을 거하게 터트린 김윤식을 이야기해 보자

김윤식은 야구 기사를 조금만 읽거나 LG 유튜브를 보면 마운드에서 생각이 많고 내성적인 선수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강남은 김윤식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김윤식의 제구 불안에 대해서는 “윤식이는 생각 많은 편으로 1구 1구마다 변화가 많다. 오늘은 평소보다 팔각도 올라가 있는 것 같아 그런 부분을 얘기해 줬다"라고 말했다. "


김윤식은 KBO 리그 1군 무대가 편해지는 데 무려 3년이 걸린 선수다. 그런 선수가 대표팀, 그것도 한일전에서 자기가 무너지면 끝나는 상황에 올라왔으니 멘탈이 잡힐 리 없다. 차라리 구속이라도 100마일(160km/h) 씩 꽂아서 타자들 헛스윙이라도 유도하면 모를까 김윤식은 140km/h 초반에 체인지업으로 카운트를 잡는 투수다. 그런 선수가 제구가 엉망진창이니 투구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냥 편한 말로 마운드에서 잔뜩 쫀 거다.


당연히 긴장이 되는 상황이고, 내가 그 상황이었어도 엄청나게 긴장했을 거다. 그러나 이제 대표팀 선발 기준에 멘탈이 고려돼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김광현이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던 이유는 좋은 투구도 있지만 "칠 테면 쳐 봐라"라는 깡도 분명히 존재했다.


자신감은 자기 실력에서부터 비롯되긴 하지만 깡 대 깡으로 붙는 대표팀 자리에서 처음부터 쫄고 들어가고 지고 들어갈 이유는 없다. 그리고 굳이 억지로 대표팀에서 다리를 후들거리는 선수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 줄 이유도 없다. 자연스럽게 평가전 등 대표팀 스펙을 자주 쌓을 수 있는 자리가 많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로 이어질 수 있다. 대신 이거도 매번 나오는 선수만 나오는 게 아니라 정말 하나의 '평가전'이 돼야 한다. 누가 국가대표 자리에 어울리는지, 어울리지 않는지를 시험하는 자리가 많아져야 하고, 그래야 진짜 칼을 갈아야 하는 자리에서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산산이 부서지는 눈부신 우리의 날들이 다시는 오지 못할 어둠으로 가네” 안예은의 홍연이라는 노래의 가사 중 일부다. 한국 야구의 눈부신 날들은 점차 어둠 속으로 흐려지고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들은 2023 WBC를 끝으로 국가대표를 대부분 은퇴했다. 한국 야구의 현재는 밑바닥이다. 과거에 취해 신세한탄만 하면 그냥 그렇게 밑에 계속 있는 것이다. 사실 WBC에서 3연속 1라운드 탈락한 이상 다음 WBC엔 쿠바, 미국, 도미니카, 푸에르토리코 등 강팀들과 섞여서 조 편성을 받아도 할 말 없는 위치이긴 하다. 다만, 그래도 어떻게 우리나라 야구가 발전해 나갈지는 앞으로 3년 동안 충분히 고민해 볼 문제고 늦지 않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물론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나 같은 일개 대학생 나부랭이가 아니라 노오오옾으신 분들이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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