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무기력한 요즘. 저는 이 무기력증을 그림과 글에 기대서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림을 보러 미술관과 갤러리에 가고, 글을 읽으러 서점에 가요. 전자책을 통해서 글을 읽기도 하지만, 저는 서점에서 느낄 수 있는 종이책들이 더 좋아서 종종 서점에 가곤 한답니다.
요즘은 기술이 발전해서 책도 인터넷으로 손쉽게 볼 수 있는데, 왜 서점에 가냐구요? 두가지 이유 때문이에요.
하나. 서점에는 제가 좋아하는 종이책들이 있어요.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전자책들을 쉽게 볼 수 있죠. 저도 영어 책은 Kindle, 한국 책은 Crema를 이용해서도 읽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전자책과 달리 종이책이 주는 매력이 저는 참 좋아요. 종이책은 저로 하여금 제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서 책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거든요.
저는 단순히 책에 쓰여진 글씨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책장의 촉감을 손 끝에서 느끼고, 그 책장 위에 연필로 줄을 긋고 제 생각을 적으며 그 사각거리는 연필과 종이의 만남의 소리를 듣고, 책장을 넘기는 소리를 듣고, 또한 책에서 나는 그 고유의 향기를 맡아요. 이 모든 감각을 이용해서 독서를 할 때 저는 독서를 온전히 하는듯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종이책이 참 좋아요.
둘. 서점에는 (특히 독립서점에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 뿐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인터넷 온라인 서점에는 보통 각 분야별로 유명한 책들을 추천해주죠. 고객평점이 높은 책이거나 유명한 기관에서 추천해준 책들이 추천되어요. 하지만 그렇게 남들이 정해둔 순위에 있는 유명작품들만을 읽다보면 남들이 정해둔대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혹시 해보셨어요?
물론 온라인에서 접근 가능한 책의 종류는 훨씬 많고 본인이 의지만 있다면 다양한 책들을 구매해서 볼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하지만 추천 알고리즘에 의해서 우리는 보통 매출순위가 높은 책이나 유명기관에서 추천한 책들에 많이 노출되게 되고, 해당 책들을 구매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고, 비슷한 책들을 읽은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획일화 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지게 되요.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 가면 유명한 작가의 책들 뿐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작가들의 책들을 만나 볼 수 있는 기회가 좀 더 많아져요. 서점에서는 온라인에 비해서 좀 더 쉽게 다양한 책들의 제목이나 표지를 보고 흥미를 갖고 새로운 작가의 책들을 발견하게 될 확률이 높거든요. 서점이라는 공간이 주는 매력인거죠.
특히 로컬서점에 가면 해당 로컬 작가가 쓴 책을 만나 볼 수도 있고, 서점의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유명기관이 추천해준 것이 아니라 서점의 직원의 손글씨로 추천사가 들어가 있는 책들이 저는그렇게 매력적이더라구요.
우리는 각자 다른 사람이어서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책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단순히 남들이 순위를 정해둔 유명한 책들만을 찾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우리가 직접 우리에게 맞는 책을 찾아 나서는 모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점만큼 좋은 공간이 없지요. 저는 서점에 가서 새로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을 발견할 때마다 보물찾기를 하는듯한 기분이 들어서 너무 재밌어요. 지금 나에게 맞는 책을 발견하는 그 모험. 생각만해도 신나지 않아요?
나에게 꼭 맞는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 제가 정말 좋아하는 뉴욕의 서점 두군데를 소개시켜드리려고 해요.
첫번째로 소개드릴 곳은 Westsider Books라는 중고서점이에요. 이곳은 중고책을 파는 서점인데요, 들어서는 순간 마법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규모가 큰 서점은 아니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서점이어서 처음 이곳에 갔을 때 두세시간이 훌쩍 지나더라구요. 코로나로 인해서 마스크를 쓰고 갔는데도, 그 마스크 안으로도 느껴지는 책향기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설레었어요.
중고책방이기 때문에 책들이 대형서점만큼은 잘 정리되어 있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 서투름이 주는 설레임과 매력이 저에게는 참 크게 다가오더라구요. 완벽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그 서투르고 투박한 느낌이 전 좋아요. 왜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어설프게 온맘 다해 쓴 연애편지 같은 느낌이랄까. 사람의 마음이 진실되게 느껴지는, 사람냄새가 나는 그런 느낌.
손글씨로 쓴 책분류 표시들, 그리고 각 책들의 추천서. 그리고 책장 사이에 있는 귀여운 고양이까지. 이보다 완벽할 수 있을까요. 중고책들의 만들어내는 이 포근한 느낌은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에서 느끼기 힘들죠.
이층으로 올라가면 희귀본들을 모아둔 섹션도 있어요.
제가 이 서점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사람냄새가 물씬 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곳에서는 제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책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해요. 온라인에서 보면 어떤 책들이 각 분야별로 베스트셀러인지 알기는 쉽죠. 유명한 책들은 쉽게 찾아서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궁금한 것은 그렇게 유명한 책들이 아니라, 빛을 받지 못하고 어딘가에 숨어 있는 책들이거든요. 유명한 책들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에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좋은 책들을 발견하고 싶어요. 제 사고를 단순히 유명한 책들, 대중적인 책들에 의해서만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작가들이 쓴 책들을 읽음으로 더욱 유연하게 확장시키고 싶어요.
바로 이 서점에서는 그런 보물찾기를 할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몇시간이곤 책을 보면서 새로운 책을 발견하는 그 희열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요.
두번째로 소개드리고 싶은 서점은 Printed Matter 라는 독립서점이에요. 이곳은 예술단체나 예술가들의 독립출판물을 출판하고 배포하는 출판 중심의 예술대안 공간이에요. 굉장히 창의적이고 다양한 종류의 출판물들이 있어서 책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려주는 곳이랍니다.
이곳에 가면 정말 다양한 형태의 책을 만나볼 수 있어요. 책은 네모낳다고만 생각하셨다면 이곳에 꼭 가보세요. 책이 얼마나 창의적일 수 있는지를 느낄 수 있어요. 마치 어렸을때 종합장에 서툴게 그림을 그려서 만들었던 그림책 같은 느낌이랄까요. 작가의 개성과 숨결이 잘 느껴지는 공간이에요. 획일화되지 않은 책의 포맷이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이런 다양한 형태의 책들과 만남으로, 획일화되었던 사고가 말랑말랑해지는 기분이거든요.
저는 개인적으로 Athena Tacha라는 작가의 출판물이 마음에 들어서 사왔답니다. 어떻게 보면 무슨 종이 팜플랫 같아 보이지요? 하지만 책이에요!
이 책을 펴보면 이렇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책의 포맷이 아니죠? 이렇게 새로운 형태에 글을 담았다는 것이 정말 창의적인 것 같아요. 이런 창의성을 현대의 디지털 기기인 전자책 리더기에서는 절대 구현해 낼 수 없겠죠. 그래서 더욱이 이러한 창의적인 형태의 책들이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구요.
여러분도 가끔씩은 종이책의 매력을 느끼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정의한 추천도서가 아닌 나에게 꼭 맞는 나만의 종이책을 찾기 위해 서점에 방문해보시는거 어떠세요? 서점에서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책 속에서의 지혜 그 이상의 감동을 느끼실 수 있을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글을 마치며, 제가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사랑하는 서점을 살짝 보여드릴게요. 어디인지 맞추실 수 있으려나요? 이곳은 가난한 작가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따스히 공간을 만들어주고, 작가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랍니다.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제가 사랑하는 음악과 책이 함께 있어서 좋아요. 언젠가는 이러한 따뜻한 서점의 주인이 되어서 작가들, 그리고 독자들에게 따스한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이 제 꿈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