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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은정 Jun 16. 2020

브랜드는 나의 페르소나

아이돌 팬덤에서 브랜드 팬덤을 배우다

유사연애. 연예인을 이성의 대상으로 좋아한다는 뜻이다. 머글(특정 연예인을 좋아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가장 많이 오해하는 지점이 여기다. 현실 연애를 못해본 사람들이 연예인을 대상으로 가상 연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팬도 있다.


그런데, 만일 팬클럽에 ‘유사연애’를 암시하는 글이 올라온다면? 어김없이 집단 공격을 당한다. 유사연애는 팬덤에게 금기다. 팬들이 극혐하는 단어가 유사연애다.


유사연애가 팬심의 전부가 아니라는 반증은, 여자 연예인의 팬덤이 대부분 여성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성팬은 남성팬보다 훨씬 더 적극적이다. 남성팬에 비해 쉽게 마음을 바꾸지도 않는다. 팬덤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것은 여성팬의 숫자다.


‘여자친구’의 제작자 쏘스뮤직의 소성진대표는 ‘여자친구는 섹시 콘셉트로 영원히 가지 않을 거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친구의 대표곡 ‘시간을 달려서’ 중 ‘시간을 달려서 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거친 세상 속에서 손을 잡아줄게’ 이 부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성들이 굉장히 좋아할 수밖에 없는 애니메이션 같은 느낌이 있지 않나요? 아내한테 들려줬더니 뭔가 울컥한다고 하면서 울더라구요. 직원들이 여성 팬덤을 만들어야 한다고, 결국 여성들이 좋아하지 않으면 길게 봤을 때 대중적으로는 알려져도 팬은 못 모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성 팬들을 많이 얻고 싶었기 때문에 ‘시간을 달려서’로 꼭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과거 많은 여자 아이돌들이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하고 귀여운 컨셉으로 데뷔했었다. 이런 그룹 중 성공 케이스를 찾기는 쉽지 않다.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청순함은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남성이 바라는 이상적 여성상이다. 제작자인 남성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컨셉이다. 밀레니엄 세대 여성들이 제일 거부감을 느끼는 여성상이다. 이런 여자 아이돌들이 팬덤을 모으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노골적으로 섹시함을 내세우는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다. 대부분 망돌(망한 아이돌)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면, 여성 팬덤이 큰 여자 아이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걸크러시로 대표되는 당당함, 주체적인 태도다. 여자 아이돌이라고 퍼포먼스가 소극적이지도 않다. 파워풀한 퍼포먼스는 기본이다. 게다가 실력까지 뛰어나면 금상첨화다. 보컬, 댄스, 랩, 여기에 프로듀싱 능력까지 더해지면 넘사벽이 된다. 한마디로 ‘멋져요, 언니!’라고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수많은 아이돌들 사이에서 넘사벽 팬덤을 구축한 여자 아이돌들의 공통점이다.

 

이것이 왜 여성이 같은 여성의 팬이 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닮고 싶은 나,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 투영돼야만 같은 여성의 팬이 될 수 있다. 내가 성공하고 성장하듯, 내가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도 성공하고 성장하길 응원하게 된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 팀 버튼과 조니 뎁. 거장 반열에 오른 영화감독들에게는 대개 자신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배우들이 있다. 이들을 두고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거장 영화감독들이 자신의 페르소나를 결정하는 것처럼, 대중들도 자신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연예인을 결정한다. 그리고 팬이 된다. 팬과 연예인의 관계, 그 비밀은 페르소나다.


브랜드는 사람을 닮아야 한다


나는 샤넬보다 몽블랑을 좋아한다.  365일 몽블랑 백팩을 매고 다닌다. 내가 지금까지 구매했던 자동차 브랜드들도 맥락이 비슷하다. 내 첫차는 아토즈였다. 나와 비슷한 연령의 여성들이 깜찍한 마티즈를 선택할 때, 조금은 밋밋한 아토즈를 선택했다. 그게 나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기자기 깜찍함은 전혀 나 답지 않았다.


감독이 자신의 세계관을 상징하는 배우를 선택하듯, 대중은 자신이 닮고 싶은 브랜드를 선택한다. 그래서 브랜드는 뚜렷하고 명징한 페르소나가 되야 한다. 그 페르소나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더 인간적이어야 한다. 브랜드는 더 인간을 닮아가야 한다.


기존 체제에 반항하는 젊은이들의 페르소나 슈프림,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꾸려가고 싶은 여성들의 페르소나 룰루레몬, 지금 이 시대 신데렐라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제품 그 자체가 아닌 페르소나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들을 대표하는가? 나는 어떤 사람들의 페르소나인가? 이것이 명확치 않다면 브랜드 팬덤을 모을 수 없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페르소나는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가?


첫째,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엣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과 브랜드 페르소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보면 답답함을 느낄 때가 많다. 좋다는 가치는 다 갖다 붙일 때다. ‘세련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정직하고, 포용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머리속에 그 이미지를 그릴 수 없다면 이미 페르소나가 아니다. 내 고객을 아주 좁게 규정하라. 그 안에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좁게 규정하라. 작다는 것은 곧 특별하다는 것, 소속감과 자부심은 특별함에서 나온다.


둘째, 시대와 타겟의 감성을 반영해야 한다. 밀레니엄 세대의 페르소나가 되고 싶다면 밀레니엄 세대의 감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섹시한 율동으로 여성팬을 공략하는 여자 아이돌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한 때 여성 이너웨어의 상징이었던 빅토리아시크릿은 왜 매출이 줄어들고 있는가? 지금 여성들은 관능적으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빅토리아시크릿의 페르소나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넓고 깊은 세계관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야 브랜드가 진짜 살아 있는 인물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살아 있는 인물이 갖는 특유의 생생함이 필요하다. 사람이 성장하며 조금씩 바뀌어 가듯, 브랜드 역시 성장해야 하고 가끔은 변화도 필요하다. ‘변했구나’가 아닌 ‘성장했구나’로 느껴 지기 위해서는 단단한 세계관이 꼭 필요하다.


“몽블랑 고객을 모던카우보이(modern cowboy)라고들 해요. 카우보이는 일어나 일하러 가기 전에 부츠를 신고, 총을 차고, 모자를 쓰죠. 모던한 몽블랑 고객은 옷을 입고 몽블랑 벨트와 시계를 차고, 몽블랑 펜을 챙기고, 몽블랑 케이스를 씌운 스마트폰을 챙깁니다. Nicolas Baretzki (CEO Montblanc International)”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듯, 사람이 사람을 응원하듯,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으면 우선 자신의 페르소나를 분명히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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