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 바리스타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민 온 지 7년 차.
7년 전, 나는 한국에서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던 찰나에 남편을 만났다. 남편과 나는 짧은 만남에 결혼을 약속하게 된 사이가 됐다.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논문 심사 준비와 결혼식 준비를 동시에 진행했다. 남편은 미국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한 회사에서 근무 중이었고 한국에서 결혼식을 하게 됐으니 모든 준비는 내가 도맡아 했다.
뿐만 아니라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쉼 없이 달려왔는데 갑자기 미국에서 살아야 한다니. 10년간 이 순간을 위해 공부해 왔는데 나는 그곳에서 뭘 해야 할까?
아- 그러지 말고 일단 쉬자.
나는 정말 쉬는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여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국제미술전시 기획일에 참여하게 됐고 그 일을 통해 미술과 관광학을 접목시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대학원 공부를 하게 됐다.
이렇게 쉬는 걸 모르고 살았던 나는 미국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차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내가 유일하게 갈 수 있는 곳은 스타벅스뿐이었다. 친구도 가족도 없고 내가 하던 일도 할 수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것 같은 이곳에서 스타벅스는 나에게 큰 힘이 됐다. 친숙한 브랜드였고 직원들은 늘 친절했고 분위기는 활기찼다. 모든 것이 나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아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언젠가 미국에서 바리스타로 일해보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위로받은 것을 다시 커뮤니티에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서 리모트로 계속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그 경력을 살려 미국에 위치한 한국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국에서 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어 참 감사했다. 하지만 뭔가 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지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게 힘들어했던 내 모습을 보고 남편이 UX 디자인을 공부해 보면 어떠냐고 물었다.
"지금 내 나이가 30살 중반을 향해가고 있는데 뭘 다시 시작해.."라는 마음과 "그래, 이곳에서 잘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도 큰 축복이야"라는 두 마음이 충돌하며 두려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면 큰 성취감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갔다.
디자인을 배우니 자신감도 생기고 활기가 돋았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됐다. 디자인을 공부하며 파트타임으로 일해보고 싶다!
처음엔 UX 디자인 인턴십을 잡아 3개월간 UX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뭔가 자신감이 생겼다. 다른 일들도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리스타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생각만 해오던 바리스타! 오랫동안 리모트로 일하면서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늘 그리웠다.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지원해 보자. 그리고 되면 그때 그 뒤에 일을 생각하자.
나는 내가 지원하면 바로 연락올 줄 알았다. 그래서 막상 지원을 못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생각보다 지원한 곳에서 연락이 없었다. 아무래도 바리스타와 관련된 경험이 없어서일까? 다른 매장에서 근무를 해봐야 하나?
시간이 흘러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연락이 왔다. 이메일로 몇 가지 질문을 보내고 내가 답변하는 식이었다. 그리고 인터뷰날짜가 잡혔다.
두둥! 두근두근 마음을 붙잡고 매장에 방문했다. 이 매장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매장이었기 때문에 꼭 되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내 첫 번째 면접을 맡아준 슈퍼바이저 스테파니도 참 밝고 친절했다. 내가 미국에 온 지 7년 차라 영어도 네이티브들보다 부족하다, 면접 답변이 충분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니 스테파니는 자신도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왔다며 잘하고 있다고 위로해 줬다. 고마워 스테파니.
인터뷰 질문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고객 서비스에 대한 질문, 팀워크에 대한 질문, 지원 동기 등 지난 경험들을 예로 들어 대답해야 했다. 스타벅스를 첫 직장으로 잡기엔 어려움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함께 일하는 파트너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스타벅스가 첫 직장은 아니었다. 다들 미국에서 관련 업종에서 근무 경력을 갖고 있었다.
면접이 끝났고 속이 후련했다. 어떤 결과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그런데 다음에 온 메일은 합격/불합격 통보가 아니었다. 다음 면접을 진행한다고 안내하는 메일이었다. 지원자가 많아 2차 면접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오 마이갓. 또 면접이라니.
2차 면접은 매니저와 화상면접으로 진행됐다. 1차 면접 때보다 가능한 근무 시간, 스케줄, 얼마나 일을 하게 될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주로 많이 했다. 나는 석사 수업이 목요일에 있어 목요일엔 일을 할 수 없지만 주말 오전에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편이 애기는 자신이 케어할 테니 주말에 편하게 일하고 오라고 했다. 오예. 땡큐! 그리고 평일 5시간 이상 일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스타벅스는 시프트 업무다 보니 이렇게 스케줄 조건이 많은 지원자는 뽑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짓말할 순 없으니 최대한 솔직하게 말했다.
결국 나는 최종 면접에 합격했고 본격적인 트레이닝을 시작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