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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흠 Mar 01. 2022

묵묵히 살아낸다는 것

"꿈이 뭐예요?"

오랜만에 본 사람과 커피를 마시는데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예전 같으면 그럴싸한 걸 주워 담아 지어내기 바빴을 텐데 솔직하게 말을 했다.

"없어요”

“왜요?”

나보다 어린 상대는 의아한 듯 물었다.

“음..잘 모르겠어요. 옛날엔 열정과 목적을 찾기 바빴는데 과연 이게 맞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니까 당연하게 20살 되면 꿈이 있거나 꿈을 찾아 하고 싶은걸 해야 하고 몇 살이 넘어가면 취업을 해야 하고 몇 살엔 뭘 해봐야 하고 이런거요. 그렇다고 이대로 사는 것도 정답이 아닌 거 같은데 저도 잘 모르겠어요.”

“자신만의 길을 시월 씨가 보여줘요.”

“글쎄요. 뭔갈 보여주고 내세우기 위한 건 싫어요. 그냥 대충 살고 싶어요”

“굳이 그거 때문이 아니라 나만의 길을 열심히 살다보면 주위에서 알아줄 거예요”

“아니요. 되레 욕 먹을 걸요. 뭔가 튀거나 다르면 사람들이 싫어해요. 당장 밖에 지나가는 차들을 봐도 다 회색, 검정, 흰색뿐인데 저 중에 휘황찬란한 색의 차가 있으면 관종이라고 욕먹을 거예요.”

“그래도 그런 걸 지금 찾지 않으면 나이 들어서야 잃어버린 걸 찾더라고요”

“그렇기도 하지만 그 사람들도 생활이 궁핍해서, 가난해서 또는 어쩔 수 없이 현실을 택한 거 일 수도 있어요. 젊을 때 분명 하고 싶은게 있었을 텐데 힘들어서 현실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을 거에요.”

“음…갑자기 먹먹해지네요. 얼마 전에 아빠에게 “아빠. 왜 이렇게 현실적이야”라고 나무랐는데 그 생각이 나요. 반성하게 되네요”

“맞아요. 자식 키워야 하니까,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렇게 살다가 나중에 깨닫는 거죠.”

우리 엄마의 꿈은 뭐였을까. 분명 첫사랑과 결혼을 실패하고 중매결혼으로 자식 넷 낳고 식당 일하고 시부모와 남편 뒷바라지하는 게 꿈은 아니었을 거다. 별안간 아빠를 닮았다며 얼굴을 찌푸리던 엄마가 아빠를 닮은 아이를 낳는 것도 꿈이 아니었을거다.

단 한 번도 엄마의 꿈이 뭐였는지 물어본 적이 없다. 엄마는 당연하게 엄마여야 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됐다. 그래서 당연하게 엄마로서 나에게 이걸 해줘야 하고 내가 이걸 받아야 되고가 나를 지배했다. 그걸 해주지 않으면 엄마로서 자격이 없고 낳아놓고 무책임하다고 원망했다. 엄마는 중년이 돼서야 친구들과 어울리기 바빴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땐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미워했다. 엄마의 무관심에 상처받은 언니는 집을 나간 후 한번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서적 안정을 주지 않은 엄마를 사랑하기란 참 어렵기도 하지만 그런 삶에 방치된 엄마의 삶도 변변치 않았을 거다. 우리는 엄마에게 방치되었지만 엄마는 삶에 방치되었던 거다. 그런 삶 속에 아빠를 닮은 우리보단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를 키우기엔 벅찼을 거다.

때론 삶이란 이렇게 잔인해서 사는 건 미궁이고 해결하지 못한 마음속 응어리는 계속해서 안아야만 한다. 일종의 장난같이 커다란 숙제만을 남겨 놓고 대책 없이 내놓은 삶을 원망하다가도 현실에 순응하고 사는 나를 보면 자신만의 길을 가라는 건 어려운 말 같다.

“하고 싶은걸 해라”,”너만의 길을 가라”라는 건 좋은 말이 맞지만 그 길을 가면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좌절과 절망을 안고 고통을 견디라는 말은 쉬운 말같다고 느꼈다.

뭐가 됐던 현실에 순응해도 고통스럽고, 나만의 길을 가도 참 고통스러운 거 같다. 그래서 나에겐 아직도 삶이 어렵다. 그저 묵묵히 살아가는 거 외엔 방도(方道)가 없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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