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들어 온 돌이 회계법인에서 살아남는 법
벌써 회계법인에 들어온 지도 4개월 정도 되어간다. 공무원이었던 시절과는 다르게 편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이 생활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가는 듯하다. 회계법인 생활에 적응이 되어간다고 생각한 지점 중 하나는 실무를 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줄었다는 데에 있다.
내가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실무자로 일하는 비중이 훨씬 높았다. 보통 다른 곳에서 어떤 요청사항이 오면 내가 초안을 작성해서 팀장님 또는 과장님까지 보고를 드리고 보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데 여기 회계법인에 와서는 어떤 요청사항이 오면 방향을 잡은 후 스태프분들에게 뿌리는 것이 일이다. 가끔 직접 할 때도 있지만 비중이 많이 줄었고, 대부분은 스태프분들이 열심히 해오신 부분들을 같이 점검하는 게 대부분의 일이다.
회계법인에서 일을 관리해 가는 포지션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에게 총괄로 주어진 일이 너무 다양하면서도 동시다발적이기 때문이다. 공무원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공무원은 30년 정도 근무하므로 관리자가 되는 시기가 길지만, 회계법인은 관리자가 되는 시기가 짧다. 회계법인은 처음 입사하면 스탭 2년을 거치고, 그 뒤에 시니어 또는 시니어 스탭을 3년 거쳐 매니저가 된다.
회계법인의 직급 체계 : 스탭 2년 - 시니어 3년 - 매니저 3년 - 시니어매니저 3년 - 이사 3년 - 상무 - 전무
참고로 회계법인에서는 매니저 직급을 기준으로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물론 스탭 시절에 비해 급여가 많이 뛰는 것은 물론이고, 매니저부터는 각종 행정 업무도 직접 다루게 되니 업무상으로도 달라지는 게 많은 것 같다. 물론 속된 말로 지금부터 뭐같이 갈린다는 얘기도 종종 들리는 직급이다.
내가 회계법인에 입사할 때 매니저 직급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어차피 매니저보다 높은 직급으로 일하고 있어 매니저 업무의 결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똑같으니 느꼈던 후기를 적어놓고자 한다.
일단 간략하게 말하자면 실제로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실무자로 있을 때보다도 머리는 더 아프다.
실제로 일을 덜하는데 왜 머리가 아프냐는 생각을 할 수 있으나, 실제로 일을 덜할 뿐이지 어떻게 일을 진행해나가야 할지도 구상해야 하고, 최종 책임자는 내가 되기 때문에 스태프분들이 해온 일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키보드로 손가락만 덜 쓸 뿐 머리가 팽글팽글 굴러가는 양은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결국 일적인 측면에서는 다양하게 일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사람을 관리하는 측면도 그리 녹록지는 않다. 결국 스태프분들에게 일을 나누어주어야 하는데 어떤 일을 누구에게 나누어주어야 할지 고려해 보는 것도 매니저가 할 일이다. 스태프분들이 나의 일만 하는 대기조가 아니기에 현재 어떤 상황인지를 물어보고 조심스럽게 제 일도 해주십사 하고 일을 드려야 한다. 스태프분들이 일에 과부하가 걸려서 처리 속도가 늦어지면 초조해지거나 작업을 다시 해야 되는 것은 나다.
이렇게 고려해야 될게 많은 사람이 매니저라는 직급임을 매일 조금씩 느끼면서 아직 완전히 적응은 안 되었지만 차츰 익숙해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