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 씨 남편 이 석기 씨와 작은 인연
중앙종합 금융 중역 회의실은 마치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각 부서 장관들에게 보고를 받는 그런 분위기이었다. 신발 신고 밟고 있기에 겁나게 값나가 보이는 카펫이다. 푹신한 의자에 앉은 중역들은 사업 담당 부장이 안내하여 들어서는 나를 보고 있다.
나는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사한다.
마치 재건축 재개발 수주할 때 주민 아무에게나 인사하듯이.
한동안 뉴스에 무관심했던 나도 사장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연극배우 윤석화 남편이며 금융계 돌풍을 일으킨 김석기 사장임을 금세 알아보았다.
무슨 인연으로 내가 여기까지 왔는가? 무대 안 배우가 자기가 선 이유가 분명히 있음에도 갑자기 제 역할을 잊은 듯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웠다.
아침 8시 20분에 중앙종합 금융의 중역 회의가 열린다. 특정 사업에 대하여 건설회사 사업부장 판단으로 브리핑해달라고 중앙종합 금융 최 상무가 말했을 때 나는 당황했다.
함께 일하자며 특정 지역 사업설명을 나더라 하라니. 내가 어떤 위인으로 이 회사에서 알려질 걸까. 실제로 전략 영업부 이 부장이 보고하여야 할 사항이었다.
사업 이 부장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었다.
"황 선생님, . 업무에 대한 브리핑일 뿐 아니라 황 선생님을 중역들에게 소개하는 면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앙종합 금융의 최 상무에게서 브리핑 말이 나왔을 때부터 나는 전 직장, 다른 건설사, 설계사무실, 신문 자료, 현지답사를 거쳐 자료를 빼곡히 챙겼었다.
그들이 내게 원하는 사항은 그들에게는 낯설지만 내게는 20여 년간 건설회사에서 늘 만나던 일이었다. 숙제를 받았으나 내가 누굴 시킬 직원이 없다. 이 부장이 알려준 주위 상권을 살폈다.
누가 이런 지역에 사업하자고 들고 왔기에?
개발 이익 보려면 한참 걸릴 지역이다. 내 발로 뛰고 사진 찍고 자료 정리하고 워드 작업하고 사실 만만치 않았다.
ㅅㅅ
자정을 넘겨 워드 작업을 하면서 나는 벼락공부하는 수험생처럼 시간에 쫓겨 절망적이기도 하고 낙심하기도 했다. 브리핑을 받는 중앙 종합 금융의 중역들은 뭔가 확실한 상황 판단을 요구할 것이나 나는 방향 설정을 하기가 괴로웠다.
다만, 이 사업에서 자금 지출은 최대한 억제하여 사업 추진 방향을 결론으로 정했다. 보고서는 단 2쪽으로 정했다. 일 많은 때 책 한 권짜리 보고서는 보는 사람에게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 뿐.
문서작성 작업도 문제였다. 늘 회사에서 하듯 단순한 포맷은 싫었으나 표 그리기가 자신이 없었다. MS 오피스 새 파일 만들기에 들어가서 있는 양식을 이용해 그야말로 짜깁기로 만들었다.
이 부장은 내게 당부를 했다.
"자료 준비해 주세요. 아침 8시 20분까지 오십시오."
내가 준비한 두 쪽짜리 보고서를 중역들에게 배부하여야 할 것이었다.
내가 회사에 가서 복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아침 그 시간에 복사기는 아직 켜기 전이니 열을 받을 때까지 대기 시간이 있어야 할 것이며, 튜너가 떨어졌다든지 종이가 없다든지 출력물의 상태가 안 좋다든지 하는 일이 생길 것이 염려스러웠다. 미리 집에서 레이저 프린터로 칼날같이 선명한 복사물을 10부를 뽑아놨다.
중앙종합 금융에 시간을 대어 가는 차 속에서 나는 중역들이 내게 물어볼 말에 대한 답변과 내가 준비한 말에 대한 순서 정하기와 내가 난 체해서 행여 실무자인 이 부장을 다치게 하지 못하도록 스스로 자제하라고 몇 번 다짐을 두었다.
일자리 얻을 사람처럼 쭈뼛거리지 말자. 회사에서나 재건축 조합에서 해왔듯 그때처럼 하자.
회의실에서 나는 준비한 유인물을 설명하기 앞서서 사업 부지에 대한 설명을 먼저 했다. 30분 동안 혼자 설명하고 20분을 질문받았다. 그러한 질문을 내가 숱하게 겪었던 세월 속에 실패와 성공의 점철은 점 하나에 불과했다.
중역들의 굳은 표정을 때로는 풀어주고 웃기며 브리핑을 끝냈다. 내가 일어서자 김석기 사장이 내게 다가와서 악수를 청했다.
회의실에 나와서 이 부장은 내게 격려를 했다.
"잘하셨어요. 그러나 끝에 가서 윤석화 남편 김석기 하니 사장이 놀라더라고요."
"내 말은 배우 아니라 김석기 사장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투자에 대한 의욕이 강하다는 강조였습니다."
말을 하고도 나는 찜찜했다.
다음 주부터 함께 근무하자 하던 최 상무에게나 이 부장에게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걸면 피하는 눈치다. 나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필시 잘 끝난 회의 막바지에 입방정으로 한 말이 김석기 사장에게는
"김석기 사장, 연극배우 윤석화 씨 남편 맞나요. 잘해나갈 수 있겠어요"
하고 들렸는지 모르고 그것이 내가 그 회사에 일자리 얻을 기회에 치명적인 입방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 토지를 사서 한창 끗발 부리는 삼성이 아파트 청약 매진을 일으킬 때 부동산 상품을 개발할 때였다.
중앙종합 금융에는 토지 관계 전문가를 찾을 때였고 실전 경험이 있는 건설사의 사업부 직원이 아주 급하게 필요할 때였다. 사람이 필요할 때와 쓰고 싶은 사람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뽑을 사람이 피한다면 하고 나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그 뒤 세월이 흐르고 중앙종합 금융은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김석기 씨는 사장 자리에서 퇴출됐다.그 후 신문 보도에 기사가 실렸다.
'연극 중단하고 투병 중인 남편 김석기 씨 간호하러 홍콩으로 떠난 윤 석화'
그리고 기타 등등
나는 김석기 씨가 중앙종합 금융에 사장으로 영입 당시, 긴장과 도전의 분위기가 가득하던 분위기를 반추한다. 더욱이 중역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석기 씨 뒤에 후광이 느껴질 정도로 당당했던 분위기까지.
나는 그동안 잃을 것도 얻은 것도 없었으나, 김석기 씨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와 함께 건강까지 잃었구나.
어쩌랴. 인생은 새옹지마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