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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Aug 19. 2020

겨울나비. 47 이 만년필은 자네 것일세

몽블랑 만년필 

1970년 봄입니다. 학교 졸업하고 취직하기가 그때도 지금 대학생처럼 엄청 어려웠으나 나는 ROTC 소위로 임관했지요.

봉급 실수령액이 돈 만 원 겨우 넘을 때 파카 75가 만 삼천 원 하여 얼마나 벼루기를 했던가요.

내 손에 올 때까지요.

육군 중앙경리단 근무 때 같은 과 군무원 아가씨가 총각 소위 만년필을 위해서 수실로 꼼꼼히 집을 떠 줄 만큼 만년필은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값나가고 아끼는 물건입니다.

어느 날 파카는 나를 떠났고 아가씨의 젊음과 내 청춘이 아득합니다.

직원 중 하나가 아주 드물게 몽블랑 만년필을 사서 쓰는 이가 있었지요.

흔히 보는 몽블랑이 아니었답니다.

어딘가 고고하고 깔끔한 금장의 원통형에다가 세로줄 태깔 곱고 쪽 빠졌지요.

"이게. 몽블랑이구나!"

감탄이 절로 납니다.

몇 줄의 글을 쓰니 글씨가 써지는 느낌이 뭔지 다르다 달라.

봉급에서 몇 달 용돈을 모아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고 보니. 더 귀합니다.

나중에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막역한 직원에게 돈을 보내 기어이 그 물건이 내게 오자 늘 와이셔츠 주머니에 꽂고 지냈습니다.

긴 세월 만에 드디어 본 때 나는 만년필을 가졌습니다.

나는 무지개를 가슴에 꽂고 다닙니다.

와이셔츠가 축축 늘어지도록 무게가 나갑니다.

나는 일상을 회사 수첩에 적어갑니다.

세월이 갈수록 수첩에 가는 세월이 가득 담깁니다.

나는 이따금 햇빛 쏟아지던 개울가에서 아버지와 함께 고기 잡던 시절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개울물을 첨벙 담그며 쓰던 나뭇가지와 돌멩이가 떠오르며 “아들아 어른 함자를 발로 지우면 안 된다.” 하시며 개울 바닥에 쓰인 먼 할아버님들의 이름을 발로 문지르는 나를 꾸짖던 서른 살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만년필 뚜껑을 열고 글을 쓸 때마다 개울가 나뭇가지와 돌멩이가 안게 되어안개 되어 피어오릅니다.

직장생활 30여 년 만에 내 필통에는 연필이 꽂히듯 만년필이 꽂힙니다.

혼불 작가 최명희의 서가에도 필통이 있었습니다. 필통 속에 만년필이 가득 꽂힌 사진을 보고 나는 웃었습니다. 같은 또래가 만년필에 연연하였던 마음에 공감합니다.

필통에는 이런 만년필들이 꽂힙니다. 어린 시절의 꿈이었던 파카 21입니다. 거기다가 파카의 형제들인 51, 61과 45와 75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골목길에서 가슴을 콩다콩 했던 혀가 날름 나오는 셔퍼 용용하고 있고요. 몽블랑 마스터피스 대, 중, 소가 뽐냅니다. 펠리컨 형제들이 키재기를 하고, 뒤퐁과 카르티에가 신바람 납니다. 이렇게 모인 만년필 식구들이 20여 자루 됩니다.

그러다가 문득 필통을 보니 열 자루가 채 안 됩니다. 나는 인터넷이 활발하기 전인 8년 전, 천리안 동아리 직장인 방에서 젊은 직장인들하고 글을 주고받고 했습니다. 만년필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 어떤 이도 만년필 이야기를 하고, 없어진 펠리컨 뚜껑 이야기를 합니다. 한 번쯤 만년필을 갖고 싶다는 글도 올라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만년필이 품고 싶었던 어린 날의 내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들을 만나서 주고, 우편으로 보내주면서 내 필통 속의 만년필은 줄어듭니다.

군대 제대하고 극동건설 개발 사업부 바로 위 상관 권오흡 차장이 어느 날

" 황 대리, 몽블랑 아나?"

"몽블랑요? 빵 가게인가요?"

나는 거리 어느 구석에서 빵 가게 이름으로 "몽블랑"을 본 듯합니다.

"...알았어."

잠시 뜸을 들이더니 K 차장은,

"쓰던 것이기는 하지마는 몽블랑을 가져다주지."

(웬 빵을 가져다준다니…….)

(쓰던 것이기는 하지마는…….쓰던 것?= 먹다 남은 것?)

그다음 날, K 차장은 틀림없이 몽블랑을 내게 주었습니다.

“이제부터 이 몽블랑은 자네 것일세.”

중고이기는 하지만 몽블랑 만년필입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언가 줄 때 무슨 까닭이 따로 있을 리가 없이 그냥 상대방이 좋아서 줄 따름.

아래 직원이 윗사람 맘에 들 때 가끔 있는 일지요.

윗사람에게 받아 보기도 처음이었으니 나중에 ‘몽블랑’이라는 만년필이 대단한 물건일 줄이야. 그때는 몰랐지요.

만년필 제작사 중에서 세계의 5걸 중 하나라지만 촉은 굵지 맵시는 투박하지 몽블랑이 유명한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어. 내 취향에는 맞지를 않습니다.

그것을 준 이의 마음을 따뜻하게 느끼며 이따금 만져볼 밖에요. 얼핏 보면 일제 파일럿 같은 디자인이라 나는 몽블랑이 좋은지 실감을 못 합니다. 그 만년필은 요즘 흔히 보는 기종이 아니라 보급기종이었습니다.

1978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할 때, 외제 물건이 그곳 알 코 파 상가에는 넘쳤습니다.

휴일 한때 하릴없이 시장 거리를 오가다가 문방구를 들여다보면 ‘몽블랑’ 금장이 번쩍번쩍합니다.

엄청난 값으로 감히 바라다보기만 하니 진열장 안 사치지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취업을 마치고 귀국을 했답니다.

내게서 만년필을 받은 이들은 한참 뒤에도 만년필의 소식을 내기 전합니다. 마치 시집간 딸의 소식을 듣는 듯합니다.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평생 일하던 시절이 지나갔습니다.

한동안 구직 교실에서 나는 만년필 하나 만의 잉크로는 부족합니다.

만년필 두 개를 쓰는 일이 흔하지요.

함께 공부하는 젊은 수강생 중에 만년필을 알아보는 친구가 하나 있네요.

내가 잠시 만년필을 노트에 놓는 동안에 그는 마치 제 만년필처럼 가져다 가 만집니다.

결혼할 때 처에게 만년필을 하나 사 와라 했더니 파카를 사 와 기분 나빴다며 내 아가사 크리스티 몽블랑 만년필에 홀딱 빠졌습니다.

깜박 그가 잘못 다뤄서 만년필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순간에 나는 아찔합니다.

촉이 나갔다 치자. 그는 미안하다는 말로 끝날 것이지요. 고친다고 한 들 원래만 할 수 없고, 원래의 촉이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정품이니 어디 쉬운가요.

코브라의 머리통이 각인되어있고 다른 촉으로 바꿀 수 없고 몽블랑 본사까지 왕복해도 될까 말까 합니다. 망가트린 이는 쩔쩔매지만 내 일거리와 생돈만 까질 판입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압니다.

그는 내 만년필을 본 뒤로 길을 가다가 외제 파는 가게에서 몽블랑을 파는 것 을 보면 만년필 값을 물어보고 아, 하고 입만 딱 벌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내게 합니다.

그는 그 나이 삼십 대 답지 않게 글씨를 잘 씁니다.

그 나이며 는 만년필 하나 제대로 된 것을 가져볼 만한 나이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나를 주어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몽블랑을 처음 갖게 된 기회를 얻게 된 내가 대리였을 때 부장에게 받은 몽블랑을 그에게 주기로 합니다.

몽블랑 블르불랙 잉크 한 병을 챙깁니다.

줄 때는 확실하게 주어야지요.

그에게 아침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만년필과 잉크를 주면서 나는 생색을 냅니다.

" 이 만년필을 거의 20년 이상 이 된 것이네. 몽블랑의 역사를 내게 만들어 주었다네. 내가 선배에게 받았고 나는 다시 만년필을 좋아하는 후배에게 물려주네. 잘 쓰게. 잘 쓰다가 다시 후배에게 물려주게."

만년필을 좋아한다는 한 가지만으로 내게 있던 만년필이 그에게 갑니다.

내가 만년필을 계속 가지고 있을 시간보다는 그가 더 오래 가지고 있을 것이고 사랑하는 자에게 가는 것이 만년필의 행복이고 가진 자의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진정으로 고마워하고 기뻐합니다.

만년필을 강의 시간 내내 만지며 고무 지우개로 만년필 도장 부분을 광나게 닦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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