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 교육 후 갈 곳은 여기 뿐
두 달짜리 과정 반이 지날 무렵. 교육생들 얼굴이 서로 낯설지 않다. 명찰이 없이 이제 같은 조에 속하면 이름을 알게 되었다. 한국적인 정서는 함께 숟가락질해야 가까워진다. 며칠 전부터 학과 끝나서 여의도 둔치에 깡통 맥주를 돌리며 담소를 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때맞춰 천둥 번개 북새 치고 소나기가 기세 좋게 내린다.
장소 바꿔서 기계회관 옆 건물 지하 중국 음식점에서 회식했다. 회비는 단돈 5천 원이다. 점심 한 그릇 값이다. 5천 원씩 내면서 "지금까지 5천 원 내고 회식해본 일이 없다" 없으면 없는 데로 살게 마련.
군만두와 탕수육 시키고 소주를 돌렸다. 적당하게 시장기 가실만큼 양이 찼다. 참석 인원 25명이 술잔 돌리며 웃고 30년 전쯤 학창 시절처럼 옹색한 회식이다. 처지가 이쯤 되고만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돌리는 잔마다 더 낯설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하고 쨍하고 잔 부딪치니 생시는 생시인가 보다. 앞으로는 라면 놓고 회식하려나 농 삼아 말하고는 그게 현실로 올까 하여 금세 입 단속한다.
앞으로 계획이란 한 번 더 교육받을 일이 있으면 컴퓨터 교육이나 공인중개사 교육을 받겠다는 등 또는 옛날 거래처를 다니면서 수주를 해보겠다는 등 말하면서 자꾸 작아지는 자기 자신들을 느낀다.
두 달짜리 교육이 끝나는 날이 왔다.
종료식 하고 수료증 받았다. 다음에 만나자는 약속은 기약 없다.
40명이 교육받고 그중 두 명이 여기 교육 기관에 비상근으로 남았다. 매월 급여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주를 하면 일정액을 주겠다는 조건이다. 나머지는 또 다른 실직자 재활 교육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다시 접수하느라 바빴다.
교육 담당 본부장이 교육생 하나하나를 불러서 면담을 이틀 동안 했다. 수주해 와라. 명함을 박아주고 수주해서 받는 수수료의 일정액을 준단다. 퇴출당하였거나 부도난 회사들이 직원들을 위하여 무슨 교육을 하겠단 말인가? 요즘엔 기업에 위탁 교육을 권유하기도 어렵다.
기업 내에서 가령 전화가 어떤 이사에게 와서는
"이번 무슨 무슨 교육을 다녀오시지요."
순간적으로 숨이 탁 넘어간단다.
"내가 드디어 구조 조정에 걸렸구나!"
할 정도니, 기업에서 교육 수주라든지 ISO 인증 지도 수주라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가방을 주섬주섬 싸고 나서 다시 봅시다 하며 작별이다. 기다리는 사람 없고 가득한 기대감 없이 자석에 끌리듯 사람들은 어디로 인가 바쁘게 사라져 갔다.
한 집 가장이라면 아내에게 교육 수료증을 보일 테지.
“이것 있으면 없는 것보다 낫다.”
허풍 받아줄 아내에게 가자.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