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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Sep 01. 2020

겨울나비. 51 동업 또는 창업

퇴사 동료가 손을 내밀어 주었다

사원 때, 명함을 내 돈으로 파야 했다. 주임 때, 형편 좋아진 회사는 그때도 파주지 않았다. 3년 만에 된 주임 된 기쁨으로 회사의 처분이 섭섭하지 않았다. 과장이 되니 내 돈 안 내고 명함을 만들어 주었다. 회사 바꾸고 명함 바뀌고 말이 없어도 총무부에서 차장 누구누구 하는 명함을 만들어 내 책상 위에 올려주었다.

부장 때, 갈 곳도 많고 줄 곳도 많고. "김 양, 명함 두 통."

하면 며칠 뒤 명함은 내게 와 있었다. 수많은 명함을 주었고, 수많은 명함을 받았다.

그런 시절은 다 지나갔다.

나는 명함을 파러 강남역에 갔다. 이왕이면 젊은 분위기가 거긴 있겠지 하는 기대를 하고 간 명함을 컴퓨터로 찍는 턱밑에 가득 수염 기른 명함집 청년은 이런 일을 많이 한 듯했다.

"대표님하고요, 손님은 수석위원님이시고요."

두 시간이나 기다리다 나온 명함에는 인사명령 없이 내린 내 직위와 이름자에 아직 서먹한 사무실 이름이 찍혀 있다.

나는 돋보기를 끼고 명함의 자잘한 글씨에 오타는 행여 없는가 하면서 살핀다. 설명도 말도 많은 명함 뒷면 자잘한 내 경력이 낡은 훈장 같았다.

인생은 언제나 오르막 뒤에 내리막임을 알고 있지만, 내 위에 대표 하나 있고 그 아래 나 하나뿐. 필시 커피 끓이고 복사하고 워드 찍고 현장 나가는 매일매일을 군대 신병처럼 살아야 날이 갑자기 아득하다. 나는 돋보기 쓴 노병이다.

손이 천장에 닿는다. 가로 네 걸음, 세로 여덟 걸음의 공간. 남의 사무실 남은 방 하나를 다시 임대해서 우리 사무실로 했다. 같은 회사 공부 부장 공 부장은 ISO를 먼저 시작해서 자리 잡고서

"황형, 사무실 차릴 테니 함께 일합시다."

했던 그 공간이 사업 첫 시작일 수 있고, 사업 막차일 수도 있다.

동업자가 다 돈 대고 나는 내가 공부한 지식과 지금 워드를 찍는 노트북을 들고 갔다. 그리고 돈 벌어줄 전문 서적들. 책상을 놓을 공간은 없고 큰 대자로 눕기에 알맞은 좁은 터에 4인용 회의용 책상과 우리 두 사람의 의자만 놓기로 했다. 오 마하던 책꽂이는 안 오고 나는 우리 방을 나오면 남의 사무실의 한쪽 다탁에서 시간의 꽁무니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드디어 창업주며 사장이며 동업자가 된 공 부장 내게 말하기를,

"수주해서 들고 오면 반반씩 나누고요. 형님이 수주하면 3대 7로 가져가십시오. 사무실 비용의 일체를 제가 내겠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어떤 일이 있어서 떠날 때는 자유롭게 떠납시다. 어떻습니까? “

" 돈이 들어오면 나누고 없으면 없는 데로…."

나는 마음속으로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했다.

그는 내게

"형님의 노트북이나 놓고 서류 만들면 되고요. 프린터는 내가 빠른 놈으로 사지요."

하면서 그는 진지하고 낙서처럼 메모했던 방금 그 조건이 날아갈 듯 쓰인 쪽지에 사인해서 나를 주었다. 그의 태도가 우습기도 하고 진지하기도 했다.

한 푼이 생길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나는 함께 일하자고 내게 다가온 손길에 조건의 짐을 매달 생각이 전혀 없다.

일은 작은 회사의 ISO를 지도하는 일. 심사원 자격을 딴 그는 아주 바쁘다. 한 달 내내 서울로 지방으로 몹시 바쁘다. 그러나 세상은 때가 있는 것. 아직은 따뜻한 밥 먹고 네 발짝, 여덟 발짝의 방이 생겼다.

동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 6시쯤 도착할게요."

밤일이 시작될 모양이다.

창업은 새롭고 긴장되는 일이다. 망해 보았자 늘어 터진 시간뿐, 빼앗길 젊음도 없다. 그리고 오십보백보처럼 커 보이는 이 방에서 나는 카프카의 '변신'이 되어도 삶의 기복에 변신하여야 한다. 작은방을 광장처럼 느끼는 착각이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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