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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종원 Sep 28. 2020

겨울나비. 54 책상 없는 직장

시작이 절반이다

내게는 직장이 있어도 책상이 없다. 건물 경비원은  책상이 있지만 내게는 없다. 여기저기서 일하러 오라고 불러주니 그것만 해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직장 후배 회사에서 불러 간다. 직장 동료가 창업한 회사에 간다. 학훈 후배가 사장 노릇 하는 곳에서 불러 준다. 

혹은 지금처럼 공 부장이 공무 일로 알게 된 협력회사에 오게 되었다.

여기 회사는 3년째 불러 준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게는 책상이 하나 있었다. 올해는 책상을 달라는 말을 내가 꺼내지 않고 회사에서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나는 11월부터 2월까지 넉 달 일을 해준다. 

출근은 내가 받은 일거리를 처리하면 되는 일이니 1주일에 한 번도 좋고 두 번도 좋다. 출근 시간은 내 마음대로이다. 대개 오후 2시에 나왔다가 5시면 간다. 1~2월이 되면 나는 거의 매일 회사에 간다. 일이 그때 몰리기 때문이다. 

내게는 '부장'이라는 직위와 명함도 있다.  그냥 “황 씨’   거나 ‘ 황 선생’  하기 거북해서이리라.

품질인증 부장이란다. 회사를  ISO 시스템으로 하는 일이다. 해마다 받는 품질인증 심사를 내가 맡아서 해주는 조건으로 있다. 

한시적 직장에서 그나마 대접을 받는 일이다. 

내가 혼자 할 일도 있고 직원들에게 시킬 일도 있다. 내가 하는 품질인증 제도는 사실은 내가 하기보다는 직원들을 시켜서 업무를 배우게 하는 것이 내게는 더 중요한 일이다. 

내가 받을 보수는 일이 끝나고서 받기로 하고 있고 그 금액은 여직원의 급료 수준 이하이다. 하기 싫으면 내가 그만두면 될 일이고,  그만둔다고 붙잡을 사람들도 아니다. 내가 하는 일도 경쟁이 있으니 내가 나가면 금세 다른 사람으로 충원될 일이다. 

나는 노트북  들고 사무실에 드나든다. 내 책상이 딱히 없으니  회의용 탁자에 나는 노트북 열고 필기구 꺼내 놓고,  일하기도 하고 여직원에게 부탁하기도 한다. 여직원이 어쩌다가 

"차 한잔하실래요?" 

하지만 대개 그녀는 내가 오거나 말거나 신경 거의 쓰지 않는다. 

내가 직장 생활할 때 용역 맡은 직원들이 사무실에 드나들곤 하였다. 나는 그들에게 자리 권하고 차 권하곤 했다.  인제 와서 생각하니 누구에게나 성심성의껏 정성 다했는지 새삼 반성한다. 

지금 와서  고마운 것은 한번 시작하였던 인연의 줄을 끊지 않고 불러주는 그 마음이다. 책상이 없으면 내 노트 놓는 곳이 내 책상이고. 차를 권하지 않으면 차실에 가서 내가 먹으면 된다. 

인생은 이렇게 환경에 따라 배역이 바뀌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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