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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도 Sep 21. 2020

<뉴스의 시대>-알랭 드 보통

뉴스로부터 깊은 상심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평일 저녁 뉴스를 보다 홧김에 꺼버린 적이 있다. 공사 현장의 번복되는 안전사고, 정치인들의 비리와 침묵하는 당사자, 아동 폭행, 성추행, 격리 기간 중 이탈했다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나는 깊은 상심을 느꼈다. 사회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원인이겠지만, '그랬다더라-'하고 사건을 툭 던져주는 뉴스에 대해서도 짜증이 났다. 며칠 후면 지루해진 시청자들을 위해 새롭고 더 자극적인 뉴스거리를 들고 찾아오겠지. 오늘 본 뉴스는 다음 주면 조용히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뉴스를 일주일 정도 보지 않고 있을 때, 문득 예전에 서점에서 봤던 책, <뉴스의 시대>가 떠올랐다. 알랭 드 보통을 워낙 좋아해서 언젠가는 이 책을 보리라고 생각했던 터여서, 곧바로 서점에 가서 책을 구매해 서점에 딸린 카페에 자리를 잡고 읽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책은, 내가 뉴스를 보며 느꼈던 복합적인 감정의 원인들을 밝혀 답답함을 해소시켜준, 소화제 같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뉴스가 실제 우리의 인식 과정에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한다. 뉴스가 보도할 사건들을 어떻게 선별하고, 어떻게 서술하며,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끼치는 영향은 어떠한지.


우리가 민주사회의 한 주체로써 뉴스를 소비할 때 함정에 빠지지 않고 뉴스를 이해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언론이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언론의 역할과 지향해야 할 목적을 알려준다. 뉴스는 우리가 세상을 알고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써의 거의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인터넷 보급 이후 언론사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기사 클릭 수를 늘리고 있는 실태이다. 언론은 국내외 정치와 얼마나 깊게 연계되어 있나. 간단히 소비자 정보 뉴스만 생각해도 건강과 관련된 보도를 낼 때 제약회사 등 기업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므로 언론이 그저 영양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소비자 중심의 보도를 고집할 수가 없다. 이러한 현실에 비해 이 책이 언론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실천적이고 구체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아주 유토피아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문제를 지적하고 앞으로 언론이 지향해야 할 바를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가치 있는 책이다. '지향해야 할 바'란 방향성을 알려주기 위한 개념이지, 성취 가능성을 논하기 위한 개념은 아니다. 유토피아는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더 나음을 추구하도록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듯이 말이다.


뉴스로 인해 상심한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위로가 될 것이다.



밑줄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그 밖의 놀랍고 주목할 만하거나 부패하고 충격적인 일들은 무엇이든 드러내려고 안달하면서 말이다. p 11


뉴스는 공적인 삶의 풍조를 조성하고 우리 각자의 테두리 너머에 있는 공동체에 대한 인상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유일한 힘이다. p13


시간이 흐르면 이 모든 뉴스들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 예를 들어 중국이 부상중이고 중앙아프리카는 부패했으며 교육은 개혁되어야 한다는 등의 막연하면서도 놀랄 것 하나 없는 결론들의 퇴적물을 넘어서 우리의 지혜를 늘리는 데 얼마만큼 기여하는가? p16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p32


편향은 현실 위를 미끄러져들어감으로써 더 명확하게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한 쌍의 렌즈다. 편향은 사건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하려 분투하고 개념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는 가치의 척도를 제시한다.... 오히려 우리의 임무는 편향된 시간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p33


뉴스가 좀처럼 언급하길 꺼리는 것은 왜 세상이 그다지 크게 바뀌질 않느냐, 왜 거대한 권력과 자원이 우리의 어려움을 한 방에 해결하지 못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뉴스는 무척이나 절묘하게도, 어떤 결정을 '어렵다'고 일컫게 되는 진짜 이유로는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p65


부정한 인물을 체포하는 것이 일정 기간 깊은 만족감을 줄 수는 있어도, 이것이 고취하는 희망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보다 구조적이고 비인격적이면서, 악당들의 위법행위 못지않게 유해한 수많은 잘못들... 눈에는 띄지 않지만 훨씬 큰 제도적 실패에도 주의를 돌리도록 (뉴스는) 우리를 이끌어야 한다... p73-75


경제뉴스는 덜 불안하고 덜 파괴적이면서 더 안전하고 의미 있는 노동이 가능한 세상을 향한 큰 꿈에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160-161


우리는 뉴스가 늘 우리 앞에 갖다놓고자 애쓰는 슬픔과 고통을 명확히 인식하는 한편, 거기에 고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p236


단언컨대 우리는 현대, 즉 방향 상실과 무작위성의 시대에 존재한다. p287


뉴스가 더이상 우리에게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 p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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