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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도 Sep 14. 2020

<연필로 쓰기>-김훈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도 프롤로그의 잔상이 계속 남아있는 책은 처음이었다.


알림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나의 편견과 편애, 소망과 분노, 슬픔과 기쁨에 당당하려 한다. 나의 이야기가 헐겁고 어수선해도 무방하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나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책의 출간으로, 나의 적막이 훼손된다면 그것은 전혀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다.


2019년 봄

일산에서 미세먼지(fine dust) 마시며



'알림'이라니. 

'들어가며..'와 같은 프롤로그 제목이 아니라, 알림.이다. 

책을 읽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 독자들에게 고함.


뒤에 이어지는 문장 문장들은 당당함과 동시에 겸손함이 느껴진다.

그 당당함과 겸손함은, 참으로 사실적이고 담백해서 와닿는다.

김훈 작가의 당당함은 '잘한 것'에 대한 당당함이 아니라 '솔직함'에 대한 당당함이다.

김훈 작가의 겸손함은 예의를 차리기 위한 겸손함이 아니라, 사소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겸손함이다.

그래서 여론도, 독자들의 칭찬도 기다리지 않는다. 글은 글일 뿐이다.

참으로 글쓰는 사람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문체들로 독자를 압도하지만 사실 알맹이는 없는 글들을 가끔 읽으면 헛배만 부르고 영양가는 없는 인스턴트 식품을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읽을 때는 감동적이고 마음을 치는 것 같지만, 여러번 다시 곱씹어 읽어보고싶은 마음이나, 글의 잔상이 오래도록 남지는 않는 글들이 있다. 

작가의 글은 참으로 담백하고, 담담해서 슬프고, 그 슬픔이 짙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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