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거친 물살에 흔들리지 않고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의 제자 중 한 명이 자신을 팔아넘기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의 길을 걸어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함께 있는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모두 도망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지만, 단 한 분,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기도에서 제자들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탓하지 않고, 마치 변호사가 죄인의 정당함을 대변하는 것처럼, 제자들의 정체성을 강조하며 하나님께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예수님의 기도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이 이루어 가는 제자의 삶에 대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14절,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는 제자의 삶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인해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습니다. 여기서 미움을 받는다는 의미에 대해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전 한국의 사이비 종교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취재한 프로그램인 '나는 신이다'에서 한 교주가 여러 명의 성도를 성폭행한 혐의로 실형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형기를 채우는 일이 예수님이 당한 고난과 같다는 편지를 써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상당히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 합니다. 종종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세상으로부터 받는 미움과 질책, 혹은 고난이 있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는 믿음의 시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만약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 인한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미움을 받는 제자의 삶에 속하는 경우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먼저 우리의 행위를 돌아봐야 합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는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지 못했는지, 혹은 나의 부주의함, 혹은 불성실로 인해 누군가에게 짐을 지우진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만약 아무리 나 자신을 돌아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나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다면, 그제야 우리는 우리가 받는 미움이 우리의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이라는 의심을 해볼 여지가 생기는 것입니다. 마치 동화 속 미운오리새끼가 다른 오리들에게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정체성으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는 것처럼, 우리가 겪는 고난이 오롯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것이어야 비로소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실로 미워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모여서 선한 일을 이루는 것을 방해합니다. 느헤미야가 성전을 재건축하기 위해 기적처럼 힘을 모았을 때, 주변 민족들이 협력을 하겠다며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협력을 가장했지만, 실상은 모함과 낙심, 협박으로 건축을 중단시키려 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가짜 소문과 왜곡된 정보를 통해 정치적 모함을 시도하며 그를 흔들려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교회와 선한 일에 대한 가짜 뉴스와 조작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조차도 모함을 당하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거짓 증거를 찾으매"(마 26:57). 누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아는 자들과 누구보다 법에 대해 잘 아는 자들이 마음을 모아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거짓 증거를 찾아다닌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일을 훼방하는 것은 결국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막는 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후 승천한 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도들이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어떠한 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통용하여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을 뿐 아니라, 고아와 과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며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일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핍박을 받았습니다. 요한을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전하는 일로 순교했다는 것을 볼 때, 그 당시 아무런 죄가 없는 교인과 교회를 향한 핍박이 얼마나 거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순교하는 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미움, 즉 선한 일을 훼방함으로 영혼 구원 사역을 가로막는 일은 여전히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로 매를 맞고 옥에 갇혔을 때, 그 일을 그만둘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는 순간까지 그 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마귀의 악한 계략과 훼방이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실망과 좌절로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걸어가는 참 제자의 모습을 갖추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5절,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빠지지 않는 제자의 삶
예수님은 기도를 하며 세상에 있는 제자들을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세상, 즉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에 빠지지 않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음식을 먹지만 배를 위하지 않고, 돈을 벌지만 물질을 위하지 않는 삶. 인생을 계획하지만 인생을 통제하지 않고, 고통을 꺼리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이것이 바로 그리스인의 삶입니다. 그러나 악은 우리의 이러한 삶을 뒤집으려 합니다. 음식을 먹으며 배를 위하게 하고, 돈을 벌며 물질을 위하게 합니다. 인생을 계획하며 스스로 통제하게 하며, 고통을 꺼리며 죽음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가져야 할 것을 바라보며 걱정과 불만을 갖습니다. 현재 가진 것이 풍족하지만, 10년 뒤, 20년 뒤, 심지어 30년이 지났을 때,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걱정하며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창고를 계속해서 늘려가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몇십 년을 써도 모자라지 않을 풍성한 창고를 만드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이처럼 큰돈을 모으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돈 버는 방법을 찾아다닙니다. 이제 세상에는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처럼, 혹은 복권이나 도박처럼 돈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작에는 명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이것은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우리의 우상이 되어 마음을 사로잡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이 있다는 마태복음 말씀처럼, 내 눈에 오래 담아 두는 것은 결국 내 마음에 담기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죄로 인한 고통을 더했습니다. 하와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그리고 아담에게는 평생 동안 수고하여 땅에서 나는 소산물을 먹는 고통을 더했습니다. 혹자는 우리가 농사를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이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농업 사회가 시작되고, 단일 작물 재배가 극적으로 발달하자, 농업에는 많은 노동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자신이 잘하는 일을 찾아 직업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쟁을 해결하는 법적인 일을, 어떤 사람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어떤 사람은 집을 짓고 물건을 수리하는 일을, 또 어떤 사람은 다른 부족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부족을 안전하게 지키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전문성이 점점 세분화되어 오늘날 우리는 비록 농업을 하진 않지만, 우리가 가진 전문성을 활용하여 그 대가로 농업의 소산물을 얻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는 어떠한 형태의 노동이든, 이것은 결국 땅에서 나는 소산물을 수고하여 얻는 과정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노동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돈을 벌고 소산물을 얻는 지나가는 단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해 우리의 삶에 할당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을 하며 수고하고 고됨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육신에게 이것이 우리의 죄로 인한 결과임을 상기시키며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고귀한 성찰의 과정인 것입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은 말합니다. 사실 이러한 가치관은 오랜 시간에 걸쳐 전반적인 모든 문화에서 통용되는 말이었습니다. 게으른 자를 칭찬하고, 일하지 않는 자를 지혜롭다 말하는 것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발전함에 따라 이제 이러한 말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하고 돈 버는 것은 어리 석인 짓이다." 이 말에 담긴 의미가 무엇입니까? 돈만 된다면, 노동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가치를 빠르게 흡수했고, 이제 이 한 단어가 모든 가치를 집어삼키게 되었습니다. 돈만 된다면 거짓말도 할 수 있어. 돈만 된다면 이 사람하고 결혼할 수 있어. 돈만 된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고 돈만 된다면 종교도 바꿀 수 있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은 여러분을 죽일 듯 찾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은 여러분을 살릴 듯 찾아옵니다. 세상에서 살면, 세상에 빠지는 것이 너무 쉽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도한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이 있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며, 언제나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보혜사 성령님이 있고, 마지막으로 교회가 있습니다. 물질을 우상으로 삼도록 유혹하는 세상의 거친 물살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이 서서 세상에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드러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