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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롬 4:18-22)

믿음없는 신앙을 쌓아올리고 있진 않습니까?

by Sue Park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며 하늘에 올라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우리에게 의로 여기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 주셨습니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후에서야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에 집중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부터 하나님은 그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 고향을 떠나야 했고, 백세가 되어 자식을 낳으리라는 약속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로 드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믿음을 요구하셨다는 것은, 믿음이 단지 구원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방법임을 보여줍니다.


믿음은 구원의 통로이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주는 다리입니다.



우리는 교회 이름에서 ‘믿음’보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더 자주 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에서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이라 말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기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천국에서도 영원히 남는 우리의 성품이며, 율법을 완성하는 실천적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보여주신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타난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믿음과 분리될 수 없고, 믿음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사랑은 믿음에서 피어난 열매이며, 믿음은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예수님 이전에도 믿음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향기로운 제사였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보면, 하나님은 형식이 아니라 중심, 즉 믿음을 보셨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고 가인은 그렇지 않았기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만 받으셨습니다. 후에 유대인들이 번제를 드릴 때에도 그 안에 믿음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수많은 율법과 규례를 지키며 겉으론 경건했지만, 그들의 행위 속엔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을 보지 않으시며, 오직 믿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2023년 인천의 한 아파트 주차장 슬래브 붕괴 사건은 철근을 빼먹은 부실 공사 때문이었습니다. 겉보기엔 멋지고 완벽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이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의 모양이 있으나, 속에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께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믿음 없는 신앙은 뼈대 없는 건물과 같아 결국 무너집니다.


반대로 행위가 부족하고 자랑할 것이 없어도 겨자씨만 한 믿음이 있다면 그것은 구원의 불씨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시지만, 우리는 그 시험을 고난이 아니라 믿음의 성장을 위한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사랑의 크기를 시험하는 방법은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세리와 이방인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오히려 큰 사랑을 증거할 기회입니다.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믿기 쉬운 상황의 믿음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백세에 자식을 주겠다는 약속, 물로 세상을 멸하겠다는 말씀, 어린 소년으로 골리앗을 이기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랑이 어려울 때 참된 사랑이 드러나듯, 믿기 어려울 때 참된 믿음이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는 약속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그것을 확신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습니다. 믿음의 길은 좁고 때로 고난이 따르지만, 우리는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과정보다 중요한 것은 약속 그 자체입니다.

믿기 어렵지만 믿으며 약속의 돗대를 삼아 나아가십시오.

히브리서 11장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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