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외과 수술방에배정받은 나는 걱정이 태산만 했다. 워낙 조립 같은 것을 잘 못하는 나인데, 뼈가 부러지면 판(plate)이나 나사(screw) 같은 것을 잘 맞춰서 대어준다. 또한 이런저런 이름도 어려운 기구들이 머리를 제외한(머리 쪽은 신경외과가 책임 짐) 우리 몸의 뼈들을 고정시키고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기구들의 이름을 모조리 외우고 의사가 달라고 하면 손에 전달해야 하는 상황에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음 날 수술 스케줄을 미리 보고 새로 들어오는 기구들이 있으면 동영상, 책자, 선배들의 조언까지 총 동원해 외우고 시물레이션 했다. 그럴 때면 문득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거 하려고 간호사가 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에 레고조립 같은 것도 싫어하고 조립가구들도 겨우겨우 조립하는 나인데 이렇게 부담을 느끼며 조립 순서까지 외우는 게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이럴 거면 어렸을 때 레고블록이라도 열심히 가지고 놀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일 수술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한데 선배 간호사들은 퇴근하면 뭘 그리 밥 먹고 차 마시며 수다 떠는 일에 집중하는지. 막내라서 먼저 가겠다는 말도 못 하고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다.
드디어 수술하는 날! 어제저녁 열심히 수술상 위에 펼쳐놓고 외우고 시물레이션 했던 것을 다시 상기시키며 슬관절치환술에 들어갔다. 귓속 귀지가 나올까 귀까지 수술모자를 뒤집어쓰고 수술하는 나는 의사의 말도 조그맣게 들리고, 수술장갑도 혹시나 날카로운 기구 때문에 찢어질까 두 장을 꼈더니 귀도 어둡고 손도 둔하고 죽을 맛이었다. 여기에 어깨를 짓누르는 납복(방사선 차폐 방어복 : 수술 중 C-arm이라는 것을 계속 보는데 무거운 프로텍터로 내 몸을 보호해야 함)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사는 계속 뭔가를 달라고 재촉했다. 어시스트하는 전공의가 센스가 있다면, 나를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교수가 큰 소리 나지 않게 하기 위한다면, 내게 그다음과정(procedure)을 미리 알려주고 기구를 내 손에 쥐어줄 것이다. 아싸! 오! 신이시여! 저를 배신하지 않으셨네요.찡긋 나를 보고 웃으며 4년 차의 내공으로 내편이 되어주는 전공의!
어떻게 끝났는지도 모르게 어느덧 끝이 난 수술!
고생했다는 선배간호사와 전공의의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리고 말았다. 등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고 나의 눈은 초점이 없는 듯하다. 이제 겨우 수술 하나를 끝냈을 뿐인데 얼른 퇴근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뭐든 시작이 어려울 뿐이겠지 어렵게 느끼는 이 일도 자꾸 하다 보면 괜찮아지겠지. 나를 다독였다. 사회에 나와 병원에 취직을 하고 맡은 바 일을 성실히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난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의 돈 받기 참 힘든 세상. 하지만 이 순간들을 견디면 곧 나도 선배 간호사들처럼 여유를 부릴 시간들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수도권의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수술실 간호사로서 9년을 일했지만 지금은 아이 셋을 둔 주부입니다. 아직도 수술실 관련 꿈을 꿀 정도로 애착이 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10년 가까이 일을 놓았었고 나이또 한 40대에 접어들었기에 결국 그 욕심은 생각만으로 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의 수술실 간호사로서 경험하고 느낀 소중한 이야기들을 더 잊히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