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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Mar 07. 2021

장폐색 환자는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제2화


  수도권의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수술실 간호사로서 9년을 일했지만 지금은 아이 셋을 둔 주부입니다. 아직도 수술실 관련 꿈을 꿀 정도로 애착이 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10년 가까이 일을 놓았었고 나이또 한 40대에 접어들었기에 결국 그 욕심은 생각만으로 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의 수술실 간호사로서 경험하고 느낀 소중한 이야기들을 더 잊히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선생님~밖에 수술 중이라고 1건 떠있던데                       응급수술인가 봐요?"

  나는 오늘 당직근무이기에 자연스레 출근할 때 바깥 전광판에 떠있었던 <일반외과 수술 중>이라는 문구를 떠올리며 인사하자마자 물었다. 그런데 분명 수술이 있다고 했는데 한 명을 뺀 데이(Day) 근무 모든 간호사들이 준비실(보통 수술실 간호사들이 근무 인계시나 수술 없을 때 앉아서 쉬는 곳. 대부분 수술실 내부 중간쯤에 위치해 있다.)에 앉아있는 게 아닌가.


  아직 인계받기 전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수술 중인 수술방으로 가려는데

  "서 선생! 마스크 두 개 끼고 가. 콧구멍도 휴지로 막고 가던가."

  "왜요?"

  "ileus(장폐색) 환자야. 지금 똥 잔치하고 있어."


  장폐색이라고 무조건 수술을 하는 것은 아니나 오랫동안 꼬여있 장이 괴사가 되어 얼른 수술로 제거하지 않으면 패혈증(sepsis)에 빠져서 생명에 위협을 받기 때문에 응급수술을 하는 것이다. 보통 소장(small intestine)보다는 대장(large intestine) 수술이 많다. 평소 정규 수술에서는 대장 수술을 할 경우 장을 다 비워내고 깨끗한 상태에서 하는데 이 환자의 경우는 응급수술이라서 그럴 수도 없거니와 막혀서 썩어있는 장을 잘라내고 다시 문 합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누웠기에 수술실이 온통 대변냄새로 가득했던 것이다.


  그 수술에 스크럽이었던 나의 직속 선배 간호사는 데이 근무였기에 퇴근을 했고 당직근무자인 내가 손을 바꿔 스크럽 간호사로 들어갔다. 나는 정말 마스크 2개를 꼈다. 혹시 몰라 수술 장갑도 두 겹으로 꼈다. 유난 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이지 내가 지금까지 맡아본 똥 냄새 중에 최고였기에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다. 일반 똥도 먹은 음식에 따라 냄새가 천차만별인데 그 똥이 막혀서 장 안에서 며칠을 썩어있었다니.


  정말 그 환자는 심한 상태였다. 장이 꼬여 막혀있었는데 가스까지 더해져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최대한 분변들이 복강 내로 들어가지 않게 장에 있는 내용물들을 트레이에 받았는데 그 순간 폭발하고 말았다. 장이 풍선처럼 부푼 상태에서 분비물을 빼려고 구멍을 내니 그 압력을 못 이기고 수술실 천장으로 솓아오른것이다.


  그 수술에 참여했던 집도의, 전공의, 인턴, 나까지 분비물이 다 튄 초유의 사태. 정말 말로만 듣던 똥물을 뒤집어쓴 것이다. 모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 하필 그 내용물에 참외 씨가 가득했다. 나는 지금도 참외만 보면 그 수술 당시가 떠오른다. 집도의는 자신은 마스크만 갈아 끼면 된다며 나머지 사람들에게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번갈아가며 튄 분비물들을 처리하고 다시 수술시작되었다. 


  갑자기 어느 의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자기는 어렸을 적 똥 푸러 다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결국 똥 만지는 외과 의사가 되었다고 말이다. '이게 정말일까?' 하고 믿기지 않아서 그 의사 눈빛을 봤는데 너무 진지한 것이 아닌가. 세상에 이럴 수가.


  지금에야 시대가 변해 수세식 화장실이 거의 전부여서 정화조 시설이 잘 되어있지만 예전에 특히 시골은 주기적으로 각 집에 있는 일명 똥통을 비워줘야 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정말 있었다. 이 직업도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 되었지만 말이다.


   환자 복강 안은 온통 분비물로 가득해서 감염의 우려가 있었다. 1리터 생리식염수  100개 가까이를 대야(정말 수술용 대야가 있다)로 계속 퍼부어댔다. 밖에 있는 순환 간호사(circurating nurse)는 1리터 10개짜리 생리식염수 여러 박스를 카트로 끌고 와 열심히 수술 상 대야에 부어주었다. 데이 근무 때라면 여러 간호사가 몰려와  도와줬을 텐데 모두 퇴근하고 난 뒤라서 경력 간호사와 나는 힘에 버거웠다. irrigation 양을 못 따라가는 suction 때문에 수술방 바닥은 온통 물난리가 났고 분비물까지 같이 뒤섞여 너무 심각했다.


  환자는 며칠간 얼마나 고통 속에서 힘들었을까? 만약 내 가족이었다면 일분일초가 급하게 수술을 해달라고 했겠지? 어느새 장폐색으로 고통을 호소했던 그 환자는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편안한 모습으로 마취를 깨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뒤처리할 생각에 마음이 후련하지는 않았다. 청소해주는 분이 따로 있지만 너무 심각하게 난리가 난 상황이라 나도 같이 도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9년간 수술실 간호사로 일하며 내가 경험한 외과 수술 중 가장 참기 힘든 수술이 아니었나 싶다.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보겠나. 에게 똥물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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