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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이 맘 Apr 01. 2021

피기도 전에 져버린 꽃

제4화




  지금까지 수술실 간호사로 일하며 수많은 수술들에 참여했다. 신경외과, 정형외과, 일반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 많은 과들의 수술들이  있지만 일분일초를 다투며 급박하게 진행되면서도 가장 보람 있는 수술이 있다. 바로  응급 제왕절개다. 종종 사주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날짜와 시간을 맞춰 수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산모와 아이 둘 다 위해질 수 있어 수술실로 날아오는 수준으로 산모와 의료진이 들어온다.


  우리는 그런 환자가 수술실로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몇 분만에 수술상을 차려야 한다. 아이에게 최대한 마취약을 적게 전달하기 위해 마취함과 동시에 칼이 들어가는데 그래서 다른 수술과 달리 수술상이 빨리 준비가 되어야 한다. 마취과, 수술하는 집도의, 수술실 간호사간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한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다. 태어나는 아이가 저 산소증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정확한 로 빠르게 수술이 진행된다. 그래서 응급 제왕절개의 경우 신규 간호사는 스크럽으로 잘 들어가지 않는다. 숙달된 간호사도 긴장되는데 이제 갓 들어온 신규 간호사는 얼마나 더 긴장되고 거기다 실수까지 한다면 한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귀한 생명이 태어나는 그 순간은 어느 누구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수술할 때 사용하는 베타딘이라는 소독액이 있는데 너무 급하면 코튼볼에 적셔 소독방법에 따라 소독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칼이 들어갈 배 부위에 액체 상태로 들이붓는다. 최소한의 준비과정만 거치고 재빠르게 아이를 꺼내기 위함이다. 이렇게 초응급 수술할 때는 스크럽 상은 그야말로 난리다. 기구, 거즈 카운트만 겨우 한 채로 아이가 나오는 순간까지는 엄청난 스피드로 집도의와 어시스트를 돕는 것이다. 모두 초 집중하며 바쁘게 움직이다가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오는 순간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제정신을 차린다.


  아이를 낳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다른 정규 수술들보다 제왕절개 수술은 거즈도 가장 두껍고 큰 것을 사용하는데 그 대형 거즈가 10장은 기본으로 피흠뻑 젖는다. 가끔 작은 병원에서 출산하다가 너무 많은 출혈로 대학병원에 급하게 오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너무 많은 피가 나와서 수십 장의 거즈로 틀어막으며 수술실에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출산하는 과정에서 출혈은 크나큰 적이다. 옛날에는 의료시설이 아닌 집에서 아이를 낳다가 손도 못써보고 출혈로 사망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많은 제왕절개 수술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수술이 있다. 병원에 입사한 지 갓 1년 정도 되었을까? 당직근무 중 새벽에 급하게 제왕절개 수술을 하겠다고 연락을 받았다. 언제나 제왕절개는 스피드와 긴장을 요하기에 재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이상하게 산모가 실려오는 모습이 다른 때와는 달랐다. 아파하지도 않고 설레는 기색도 없고 산부인과 전공의 또한 급하지 않게 느긋하게 수술방에 들어오는 것이다. 또 다른 때와는 다르게 나의 팔뚝만 한 두꺼운 종이 상자를 들고 오는 것이 아닌가.


  산모가 아직 마취 전이기도 했고 분위기 또한 너무 엄숙해서 그 상자가 무엇인지 짐작만 할 뿐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렇게 수술은 진행되었다. 집도의는 그제야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출산예정일은 일주일 뒤인데 태동이 너무 없어 병원에 왔는데 결국 태동검사상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상태라고 했다. 결국 사산아가 된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아이는 그렇게 울음소리 없이 태어났다. 바깥세상에 나오자마자 집도의는 심장 쪽을 10cc 주사기로 찔러 피를 뽑았다. 아이가 왜 사산아가 되었는지 원인을 알아내고자 검사하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사산아에 대해서 많은 연구들을 하지만 염색체 이상이 원인이지 않을까 짐작만 할 뿐 확실한 원인은 아직 못 찾았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도 온전하게 살아나갈 수 없는 뭔가의 문제 때문에 태어나기 전에 스스로 엄마 뱃속에서 숨을 쉬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갓 태어났음에도 앵두 같은 예쁜 입술을 가진 인형 같은 여자아이였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사산아를 직접 보게 되었다.


  수술이 끝났는데도 수술방 안 공기는 너무나 무거웠고 차가웠다. 부모는 아이를 임신하고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을 텐데. 좋아하는 음식도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가려먹고 좋은 것만 보고 느끼려고 노력했을 텐데. 아이를 품고 있으며 아이의 움직임도 다 느꼈을 텐데. 부모는 얼마나 망연자실할까. 감정이입이 되며 순간 눈물이 나올뻔했다. 주변에서도 6,7개월 때 사산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출산예정일을 일주일 앞두고 사산된 아이를 내가 직접 보게 되다니.


  한 생명이 태어나기까지는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난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그렇게 책으로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간접 경험했지만 실상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나는 세 아이를 모두 건강하게 낳았지만 출산하는 순간까지 혹시나 모를 일들을 생각하며 마음 졸였다. 뱃속에 품고 있는 열 달 동안 아기도  잘 라주나 또한 건강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그때 밖에 나와 제대로  펼쳐보지도 못한 채 지고 만 그 아이는 지금쯤 하늘 어딘가에서 편히 쉬고 있으리라.




수도권의 종합병원, 대학병원에서 수술실 간호사로서 9년을 일했지만 지금은 아이 셋을 둔 주부입니다. 아직도 수술실 관련 꿈을 꿀 정도로 애착이 있고  다시 일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10년 가까이 일을 놓았었고 나이또 한 40대에 접어들었기에 결국 그 욕심은 생각만으로 만 끝이 날 것 같습니다. 그래서 9년 동안의 수술실 간호사로서 경험하고 느낀 소중한 이야기들을 더 잊히기 전에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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