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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랑 Aug 06. 2020

뮤지컬 <드라큘라>, 빈틈 있는 서사, 빈틈없는 연기

<드라큘라(Dracula : The Musical)>



-해당 포스팅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고 신을 저주해 고통으로 가득 찬 영생을 얻게 된 드라큘라. 드라큘라는 자신의 연인과 다시 영원한 삶을 함께 하기 위해 살아간다.      



 오디컴퍼니가 제작한 뮤지컬 <드라큘라>가 2월 11일부터 6월 7일까지 샤롯데시어터에서 훌륭한 공연을 무사히 마쳤다. 2020년에 막을 올린 <드라큘라>는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세 번째 <드라큘라 > 공연이다.      



 모든 공연은 배우와 연출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매일의 공연이 다른 공연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초연의 드라큘라와 재연의 드라큘라, 그리고 삼연의 드라큘라 또한 ‘똑같은’ 공연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본적인 서사는 달라지지 않기 때문에, 출연진과 공연의 순서를 뒤로한 채, 극의 서사와 연출에 집중해 드라큘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사실은 조금 늦은 <드라큘라> 후기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극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이유는 극에 대한 아쉬움과, 극에 대한 애정이 공존하기 때문에 이후에 찾아 올 드라큘라가 더 나아진 방향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드라큘라의 사랑을 메인 서사로 두고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극은 빅토리아 시대가 끝나갈 무렵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트란실바니아의 영주 드라큘라가 영국으로 이주하기 위해 토지 매입을 맡아줄 변호사 조나단과 그의 약혼녀 미나를 성으로 초대하며 시작된다. 드라큘라는 미나를 처음 본 순간 그녀가 자신이 찾아왔던 연인 ‘엘리자베사’의 환생임을 직감하고 그녀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미나는 그런 드라큘라에게 두려움과 거부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를 항한 강한 끌림을 느낀다. 결국 미나는 드라큘라와 사랑에 빠지지만, 드라큘라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미나를 자신과 같은 어둠 속에 빠트린 것을 깨닫고 죽음으로써 그녀에게 자유를 주며 극이 마무리된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이라는 테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사랑받는 테마다. 그에 따라 <드라큘라> 또한 ‘브로드웨이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입맞춤’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드라큘라>를 단 한 번만 보고서 그렇게나 강조하는 극 속의 매혹적이고 애절한 사랑을 다 느끼기에는 빈약한 서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뮤지컬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 한 번의 관극은 부족한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뮤지컬의 비싼 관람료를 생각해봤을 때, 뮤지컬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여러 번 같은 뮤지컬, 심지어 대극장에서 공연을 올린 대형 뮤지컬을 여러 번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막에서 미나 만을 바라보던 드라큘라가 갑작스럽게 루시를 유혹하는 장면은 조금 뜬금없게 느껴지며, 아무리 운명적 사랑이라 하더라도, 1막의 기차역에서, 드라큘라의 넘버 ‘She’, ‘At last’만을 듣고 미나가 자신이 드라큘라의 영원한 사랑임을 깨달은 장면 또한 갑작스럽게 느껴진다. 실제로 처음 <드라큘라>를 본 후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도대체 왜 미나가 드라큘라에게 빠진 거야?’라는 생각이었다. 드라큘라는 미나의 약혼자를 위협하고 친구의 목숨까지 읽게 만들었는데, 단순히 전생의 사랑이었다는 점이 미나의 마음을 돌렸다기엔 너무 말이 안 되는 설정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심지어 한국에서 올린 공연 외에는 드라큘라의 과거를 설명하는 넘버인 ‘She’가 등장하지도 않는다! 물론 이러한 의문점들은 뮤지컬을 여러 번 관극 할수록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다양하게 해석하게 되는 재미를 주지만 개연성의 부족이라는 점은 <드라큘라>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그러나 그러한 뮤지컬의 단점은 극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매혹적인 장점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드라큘라>는 매번 볼 때마다 등장인물의 심리가 다르게 해석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2020년에 막을 올린 <드라큘라>는 세명의 드라큘라(류정한 배우, 김준수 배우, 전동석 배우)와 세명의 미나(조정은 배우, 임혜영 배우, 린지 배우)와 함께했는데, 각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마다 미나와 드라큘라의 감정선이 다르게 해석되며, 같은 캐스트의 공연을 본다고 할지라도 관객 입장에서 해석되는 드라큘라와 미나의 감정이 달라진다. 어느 날은 미나가 드라큘라를 너무나도 사랑했다면, 어느 날은 미나가 자신의 현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어느 날은 드라큘라에게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어느 날은 미나의 약혼자 조나단에게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같은 극이 다르게 해석되는 점은 똑같은 극을 보더라도 계속해서 다른 극을 보는듯한 인상을 남긴다.      




 <드라큘라>의 또 다른 큰 장점 중 하나는 매혹적인 넘버이다. 유명한 넘버인 ‘Fresh Blood’, ‘Loving you keeps me alive’, ‘It’s over’를 제외하고도 <드라큘라>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넘버들이 존재한다. 뮤지컬의 특성상 특정 넘버의 멜로디가 반복되고 변주되며 극의 의미를 이루는데, 특히 드라큘라와 미나의 사랑이 뮤지컬의 메인 테마인 만큼 드라큘라와 미나의 듀엣은 계속해서 변주를 이루며 두 사람의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음악이 중요시되는 뮤지컬인 만큼, 매혹적인 선율은 <드라큘라>의 커다란 강점이 된다. 클래식한 오케스트라의 선율과 극 속의 기괴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전자기타 소리는 뮤지컬 <드라큘라>를 더욱더 특별한 뮤지컬로 만들었다.      



 매혹적인 선율과 더불어 <드라큘라> 속 넘버의 가사 역시 아름다워 시선을 끈다. 뮤지컬 속 넘버들은 일반적인 가요들과 달리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평범한 노래 가사와는 차별점을 가지고 있지만 <드라큘라> 속 넘버들은 특히나 아름다운 가사들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가장 유명하고, 드라큘라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넘버 ‘Loving you keeps me alive’는 ‘그대 이름만 속삭여도 내 세상은 떨려’처럼 마치 시 같은 가사들로 가득 차 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분명히 들어봤을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서정적인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의 조합엔 누구라도 매혹될 수밖에 없다.       



사진 출처 오디컴퍼니



 이처럼 <드라큘라>는 매력적인 연기, 매혹적인 선율, 아름다운 가사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물론 나 역시도 이러한 매력 덕에 드라큘라를 10번이나 회전문을 돌며 관람했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드라큘라>에는 배우의 완벽한 연기가 없다면 커버되지 못할 서사를 제외하고도 아쉬운 부분이 몇 있다.      



 극은 전반적으로 드라큘라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미나, 조나단, 루시, 반헬싱과 같은 캐릭터들도 서사에 참여하곤 하지만 결국 극을 이끌어가고 우리가 가장 마음을 주게 되는 것은 주인공인 드라큘라다. 관객들은 이미 드라큘라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해 알고 있고 결국은 드라큘라가 사랑하는 미나 또한 사랑에 굴복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뮤지컬 속 운명적 사랑은 모두 그런 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드라큘라가 좌절할 때 함께 좌절하며 드라큘라가 미나의 거절 속에 마음 아파할 때 함께 마음 아파한다. 하지만 극을 보다 보면, 드라큘라의 사랑은 조금 폭력적이다.      



 미나가 엘리자베사의 환생임을 알아본 후 그녀를 따라간 드라큘라는 미나에게 당신의 사랑이 자신임을 주장한다. 하지만 미나는 이미 약혼자 조나단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관객들이야 드라큘라의 과거를 알고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드라큘라는 미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심지어 드라큘라는 미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루시를 이용하고 루시를 죽음에 이르게 한 후, 자신을 원망하는 미나에게 당신도 날 사랑하는 것이라며 외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드라큘라는 정말 자기 멋대로다.      



 결국 드라큘라는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 죽음으로써 미나에게 자유를 찾아주지만 그 과정 또한 자신을 선택한 미나에게 직접 자신을 죽이게 함으로써 이루어진다. 후회는 비극을 만들고 그 비극은 관객에게 아름답게 비치지만, 그렇다고 모든 드라큘라의 행동이 사랑만을 위한 행동이라고 옹호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운명적 사랑과 후회가 뮤지컬의 메인 서사임은 분명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하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는 폭력들이 아무렇지 않게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은 문화콘텐츠 시장 전반의 가치관에 대해 의문을 던져볼 여지가 생긴다. 드라큘라는 라이센스 뮤지컬이고, 이미 극을 올렸기 때문에 이러한 아쉬움들이 수정될 수는 없겠지만, 극을 관람하고 저 부분에 대해 인지하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쉬운 점 몇몇을 포함하더라도 <드라큘라>는 보고 나서 절대 후회하지 않을 뮤지컬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아름답다. 2020년의 <드라큘라>는 이미 끝을 냈지만, 이후에 찾아올 <드라큘라>는 더욱더 아름다운 뮤지컬로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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