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오만함'이다. 오만함은 소중한 것을 빼앗는다. 나는 그동안 이 진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해왔다.
오만함은 소중한 것을 잃게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문제의 원인을 찾지 못하게 만든다. 즉, 자기가 잘못해놓고선 뭐때문에 일이 어그러졌는지 모르는게 오만함이다.
오만함에 대한 소회와 다짐을 털어놓는다.
1.'오만함'의 정의
·개인으로서의 오만함
-자기 자신을 설명할 때, '쉽게 잃어버릴 수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이 길어지면 오만해진거다.
이를 테면, 자신의 학교나 직장, 재산,가족, 인기, 지위 등에 대한 소개 비중이 높아지면 마치 그것이 나 자신인 줄 알고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학교나 직장 등 소속된 단체에서는 내가 내일 당장 쫓겨날 수 있고, 돈은 사기 당하면 그만, 인기나 지위는 논란 하나 생기면 물거품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쉽게 잊어버리고, 나를 둘러싼 것들에 의존하게 될수록 오만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소설 쓰는 김영하입니다.", "멜로망스에서 건반치는 정동환입니다." 처럼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풀어서 설명하는 자기 소개를 좋아한다. 혹은 "안녕하세요. 김연아입니다." , "아이유입니다." 처럼 이름만 달랑 소개하고 박수 받는 상황을 동경한다. 이미 자신을 증명한 사례가 많으니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는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한다.
·대인관계에서의 오만함
-내가 상대를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그걸 드러내는게 오만함이다.
"너 내가 이러면 ~할거잖아." 혹은 "내가 널 잘 아는데~ 너는.." 이런 화법을 구사하는 순간, '앗,내가 오만해졌구나' 알아채야한다. 물론, 내 예언이 적중할 수도 있지만, 나의 어쭙잖은 확신이 반복되다보면 상대가 '아닌데? 니가 뭔데?' 하며 냉소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몇년지기 친구라도 관계에 금이 가지 않으려면, 그 사람을 확신하는 태도에 매번 주의가 필요하다.
-금방 또 볼 수 있을 거라는 착각도 오만함이다.
나는 빈말을 자주 했다. 어색한 상황에서 마무리 인사는 화사하게 하고싶으면, 시간 될 때 밥 한번 먹자는 말로 떼웠다. 사실 지금도 이 버릇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그래도 요즘은 진짜로 만나서 밥을 먹도록 하고, 누군가가 문득 생각나면 연락을 오랫동안 안 했더라도 내가 먼저 연락해서 얼굴을 보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작년 8월에 우연히 만나 "우리 조만간 만나서 밥 먹자!"하며 헤어졌던 지인 J를 10월에 잃게 되면서 스스로 다짐한 부분이다. 금방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마음 역시 나의 오만함 아니었을까.
·사랑에서의 오만함
-이 사랑은 당연하고,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이 오만함이다.
오만한 생각은 말과 태도가 되어 반드시 드러난다.
'날 사랑한다면, 이건 해주겠지.' → 오만함
'설마 이런다고 내가 싫어지겠어?'→ 오만함
'이거 가지고 뭘 그래?'→ 오만함
2. '오만함'의 반의어는 '겸손'일까, '자격지심'일까?
나는 '겸손'이라고 답을 내렸다.
우선, 반의어 조건이 성립하려면 비교 대상이 서로 공통된 요소를 갖고 있어야한다. 오만함과 겸손함은 모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공통 요소가 있다. 오만함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너무 과해서 변질된 것이고, 겸손함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나은 모습이 되기 위해 수련하는 태도라는 의견이다.
하지만 자격지심의 경우,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 자존감을 갉아먹는 마음이기에 오만함과 상반되는 단어는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올해의 소원을 빌 때마다 오만해지지 않게 해달라는 말을 꼭 넣는다. 행여 소중한 기회를 놓칠까봐, 사소한 성과에 눈이 멀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꼰대가 될까봐, 건강에 대한 자만심이 생길까봐, 소중한 인연들을 너무 느슨하게 냅둘까봐.. 등등의 걱정을 한다. 하지만 내가 오만해지지만 않는다면 이 걱정이 무색해질 것만 같아서 자꾸 이 기도에 의지하게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을 가장 멋 없게 만드는건 오만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