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부족한 엄마들에게
아이에게 책 읽어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퇴근 후 길어야 3시간, 보통 1~2시간 정도밖에 아이들을 볼 수밖에 없었다. 퇴근 후 씻고,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정작 책 읽어줄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였다. ‘정말 이 시간으로 아이에게 독서습관을 키워줄 수 있는 걸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도 의심, 불안, 초조, 걱정되는 마음이 올라왔다. 하루 종일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수시로 책을 읽어주는 엄마들의 삶이 부러웠고, 각종 독후활동을 하고 있는 엄마들의 에너지에 초라해지기도 했다. 독서의 중요성을 알아버렸기에 직장 다닌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독서습관 키워주기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워킹맘 자녀도 독서습관을 키워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만 했다.
우선 조급함과 불안감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리고 꾸준함을 선택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콩나물시루에 콩이 자라듯이 하루 한 권의 책이 아이의 독서습관을 만들어 줄 것이라 믿었다. 아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워킹맘인 나는 그런 옛말들을 굳이 찾아내 믿을 수밖에 없었고, 믿고 싶었다. '꾸준함이 답이다'를 되뇌며 조급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많이 읽혀 빨리 독서습관을 잡히길 바라기보단 하루에 한 권이라도 읽어주면 언젠가는 내 아이의 속도에 맞게 독서습관이 잡히겠지 확신하려 노력했다.
사실 내가 조급해하고 불안해한다고 해서 아이가 갑자기 “어머니, 지금까지 수고 많으셨습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알아서 책을 읽도록 하겠습니다.”며 말해줄 리 만무했다. 솔직히 나도 가랑비가 아니라 소나기를 퍼부어 아이가 빨리 독서습관을 갖길 욕심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이에게 소나기를 퍼부어줄 충분한 양의 물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기보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모든 독후활동들을 다 내려놓고, 그냥 읽어주기만 했다. 솔직히 직장 다니면서 그냥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하루는 꽉 찼다. 뭔가를 더 시도하다가 아이보다 내가 먼저 지쳐버려 다 떼려 치우고 그냥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뻔했다.
아이의 독서습관을 키우기 위해 짬나는 시간마다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내게 그 누구도(남편 포함) ‘으쌰 으쌰, 잘한다, 애쓴다.’며 응원해 주지 않았다. 도리어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냐? 고만 좀 해라. 그만하면 됐다.’며 호의적이지 않았다. 몇 년 후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며 스스로 읽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의 노고를 알아주었다.
절대적으로 아이에게 책 읽어줄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엄마들이 자녀에게 독서습관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은 꾸준히 읽어주는 것밖에 없다. 읽어주는 양은 우선 마음 한편에 고이 접어두고 '하루에 한 권'이라도 꾸준히 읽어주자 마음먹고 하루에 한 권은 꼭 책을 읽어줘야 한다.
꾸준히 책을 읽어주기 위해서는 내 의지를 믿기보다 읽어줄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나 또한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다고, 남편이 속을 긁어놨다고, 오늘은 생리로 인해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다며 책을 읽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오만가지 핑계들을 갖다 붙여댔다. 오늘은 편히 그냥 쓰러져 잘까 싶은 의지박약한 나의 속마음이 수시로 올라왔다.
그런 불순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하루에 한 권인데, 이 한 권이 내 아이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게 해 줄 건데, 지루한 논문도 아니고 몇 줄 되지 않는 동화책 한 권 그까짓 것 한 권도 못 읽어주고 자냐' 속으로 되뇌며 내 손을 뻗어 잡히는 동화책 아무거나 한 권을 집어 들어 아이에게 읽어줬다. 얇디얇은 동화책 한 권이 거대한 바위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딱 한권만, 딱 한권만 읽어주자는 마음으로 바위만큼 무거운 동화책을 들어 올렸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이 있다. 내가 지금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그 자리에서 손을 뻗어 책이 잡힐 수 있는 곳에 책이 놓여져 있어야 한다. 가뜩이나 바위만큼 무겁게 느껴지는 동화책 한 권을 가지러 거실 책장까지, 아이방 책장까지 일어나 빼오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바위만큼 무거운 동화책을 집어 들어 올리려면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손을 뻗어 잡히는 자리에 책이 놓여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침대 가장자리에 바구니를 놓고 그 안에 종류별로 동화책을 꽂아두었다. 아이들과 같이 앉아 대화를 많이 하던 소파 바로 옆에도 책꽂이를 놓았다. 소파 옆으로 책장이 있어도 소파에서 엉덩이조차 떼기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차라리 일어나 동화책을 빼오느니 편안히 눕기를 선택했다. 그래서 소파에 누워서도 손만 뻗으면 동화책이 잡히는 곳에 책꽂이를 두었다.
아이에게 책 읽어줄 시간이 부족하고 느끼는 엄마들이 자녀의 독서습관을 키워주는 방법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꾸준함과 읽어줄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거대한 바위 같은 얇디얇은 동화책을 내 아이를 위해 손수 집어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