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연기를 대할 때, 뜨거워야 할 것만 같았다. 한국인 특성인 건지 개인의 추구인 건지 열심히와 최선이라는 최면에 빠져, 연기를 빨리 잘 해내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좋아했고, 잘하고 싶은 일이었으니까.
21살 연극영화과를 복수 전공하기 시작할 즈음, 아빠는 급하면 뜨거워서 데인다고 우선 적당히 하라고 하셨다. 실제로 당시의 학기에 주 5일 수업을 들으며(서울, 수원캠퍼스를 오가며), 알바를 2개(평일, 주말), 무용학원에서 입시반 수업까지 듣던 시기였다. 그때는 새로운 배움의 즐거움과 늘고 싶은 성장욕구 때문에 ‘그게 무슨 말이지. 왜 열심히 하려는 사람을 주저시키지’ 하고 크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살면서 한 번씩 이 순간이 떠오른다.
졸업하고도 한 동안은 연기하는 즐거움에 빠져 열심히 작품하고 살았다. 이 상태에서의 좋은 점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이 상태가 굴러간다는 것. 다만 근 몇 년간의 마음이 건강했을까.
그냥 어떤 일을 대할 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자세가 무얼까 하고 돌아본다. 여러 분야의 도움을 받아 요즘의 드는 생각을 정리해 본다면, 동양철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중도’라는 것과, 요가에서 몸은 상수값이라서 앞으로 잘 안 숙여진다면 뒤로는 잘 젖혀진다라는 것. 한 번씩 뜨거워졌던 나는, 한 번씩 차갑게 식었다. 그럼에도 나의 중간의 상태를 잘 못 찾고, 계속 뜨거워지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찾아올 수도 있는 차가워짐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이제는 매일의 안녕을 가장 크게 바란다.
최근 친구들과 성공의 정의가 무엇일까에 대해 얘기했다. 예전에는 직업적인 성공만을 말했던 것 같다. 그것도 제1성공, 제2성공, 제3성공하며 나누어서. 하지만 이번에 성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때, ‘무언가에 몰입하는 한 순간을 보낸 하루’라고 정의하고 싶었다.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산책을 해도, 밥을 먹어도. 그 순간만을 집중해서 사는 하루. 한 가지만이라도 제대로 해내는 하루.
이게 내가 연기를 해야지하는 마음을 먹고살았을 때, 가장 큰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막 연기를 시작하려는 친구들이 현장에서 얘기를 걸어주며 how to에 대한 질문을 물어봐줄 때, 우선 해줄 수 있는 말은 ‘지금 연기를 좋아하고 연기가 하고 싶은 그 예쁜 마음을 잘 지켜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을 더 예뻐해 주고, 더 칭찬해 주었으면.
연기에 인생이 잡아먹히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 자신의 마음이나 목소리가 무얼 원하는지 잘 알고 살았으면 한다는 것. 이는 나에게도 하는 말이기도 하다. 타인의 취향이 아닌, 나의 취향으로 선택하고 살아가기.
자신을 지킬 힘을 기르고, 안온한 마음을 어떻게 하면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고.
그랬을 때 또 만나게 될 뜨거운 순간을 열렬히 보내고 끝이 났을 때, 다시 마이너스인 차가움으로 가는 게 아니라, 미지근한 중간점으로 돌아올 수 있는 노하우를 터득하고 싶다.
너무 아픈 20대 중반, 후반, 30대 초반을 보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