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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앵 Nov 11. 2020

Torres, Torres, Torres

그리 높지 않은 조회대 위에서 나는 열심히 눈을 굴렸다. B군의 정면을 볼 자신은 없으니까 항상 팽이 치는 정수리를 가진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는데 동체시력이 이렇게 좋았나 싶게 그 특이한 뒤통수를 바로 찾아냈다. 등에는 이름이 영어로 적혀있었다. Torres.   

  

뭔진몰라도 축구선수 이름이겠거니 했다. 다른 애들도 저마다 하나씩 흠모하는 축구선수를 등에 지고 뛰는 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토레스만 쫓았으므로 메시나 호날두가 있었어도 거기에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너는 토레스구나.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운 좋게 내 눈이 B군을 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기회가 찾아왔다. 다음날 학교에서 B군과 그의 친구가 내게 어제 축구경기를 보러 왔었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직감적으로 지금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너 토레스였잖아. 물은 것은 B군의 친구였는데 친구 등짝에는 맹구가 있었는지 영구가 있었는지 안중에도 없는, 내가 보내는 최초의 신호였다.     


내 입장에서는 완전 너에게 관심 만땅이다 도장 꽝 찍어주는 거였는데 B군은 눈치를 챘었는지 어쨌는지 알 길이 없지만 한낱 얼굴도 모르는 토레스로 인해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생각보다 마음 표현하는 데에 있어 서스름 없는 편이라는 것을. 조심스럽고 신중하면서도 어느 타이밍에는 막힘없이 내 비출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 부끄러워서 숨길대로 숨기지만 마음이 넘쳐서 넘친 마음을 은근하게 그에게로 흘려보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 작고도 작아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16  좋아했던 사람이 평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나는 청개구리라  말에 동의하고 싶지도 않고 근거 없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미친다는  인정해야   같다. 아련한 추억이래봤자 B군말고는 없어서. 없어서 그렇게 끌어안나보다..하고  자신을 짠하게 바라보는 인생. 그러니 너무 늦지 않게 B군보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나타나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어쩔  없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말아야지. 어느 DJ 내게 해줬던 말처럼 찾아오길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찾아 나서든가.  현실은  모든게 귀찮은 내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고 여전히 내가 아는 축구 선수 이름 메시와 호날두를 제외하고 토레스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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