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과 기생충

영화일기 <기생충>

by 지혜


티브이 소리에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슬그머니 소파에 앉으려는데 <나 혼자 산다>에 구구단 세정이 나온다. 방에 들어가야겠다. 아직 그녀가 잠에서 깬 장면만 보여줬을 뿐이지만 뒤에 나올 장면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똑 부러진 이미지의 그녀는 자수성가한 데다 효녀다. 그런 그녀의 하루는 안 봐도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엄마는 그녀가 통장 9개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부모님 용돈 주는 통장이라는 것을 크게 강조하셨다.) 엄마, 아빠가 텔레비전을 보다 내 존재를 인식하게 되고 무의식 중에 그녀와 나를 비교하지 않도록 나는 슬그머니 몸을 옮긴다.


티브이 프로그램이 끝나고 엄마가 방에 들어온다. 저번에 말했던 그 회사의 서류 통과 여부를 물어본다.

“메일 확인해봤어?”

“아니. 엄마. 서류 통과하면 면접 보라고 문자가 와. 안 왔으니까 떨어진 거야.”

가르치는듯한 딸의 말투에 샐쭉해진 엄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한다.

“친구들한테 기도해달라고 했는데.”

딸은 화가 나서 대꾸한다.

“엄마. 제발 엄마 친구들한테 내 얘기 좀 하지 마. 그리고 기도는 혼자 하면 안 돼?”

서류 떨어진 것도 짜증 나는 데…나는 다짐한다. 다음에는 절대 엄마에게 얘기하지 않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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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을 한 기념으로 엄마와 나는 IPTV로 <기생충>을 재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엄마는 (먹고살 만한 대다수의 중산층이 그러하듯) 동익에게 이입한 반면 나는 자꾸만 기택 가족에게 이입이 된다. 부모님의 지원이 끊긴다면 기택 가족이랑 같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아, 열심히 살아야 하는데…. 왜 자꾸 주저앉게 될까.


영화에서 제일 아픈 장면은 폭우 때문에 저지대 마을이 침수된 채 둥둥 떠내려가는 부감 숏이다. 기택은 체육관에 누워 동익에게 받은 모멸감과 또다시 실패했다는 무력감에 자신의 아들에게 “무계획이 계획이다”라는 말을 한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그는 얼마나 무기력을 체화했을까.


기택은 자본주의 사회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가난하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노력하지도 않으니까.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노동에 참여할 능력이 없는 사람을 인간쓰레기라 여긴다. 사회가 버린 사람들, 그들의 정동을 공유한다는 건 나에게 있어 어떤 의미인가. 처지도 입장도 다르니 공감이라기엔 모자라고 나는 그들이 불쌍하지 않으니 동정, 연민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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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써둔지 3개월이 지난 지금, 가장 가능성 있다 생각한 곳에서 최종 불합격을 통보했고, 엄마는 또 친구들에게 내 기도를 부탁했으며, 나는 또다시 모멸과 불안의 과정 속으로 내던져졌다. 하. 이 지겨운 취준 레이스는 언제쯤 끝나려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일정한 월급이 나오고, 맘 놓고 소비할 수 있는 속물들의 세계에 입성하고 싶은데 그럴 때마다 기택과 침수된 저지대 마을이 자꾸 생각난다.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눈물이 차오르다가도 눈물이 나올 때쯤이면 이상하게 차가워진다. 도무지 말로써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미지 자체로 달라붙어 버린 그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