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도 한 때는 상우였겠지

영화일기 <봄날은 간다>

by 지혜

벚꽃이 절정일 때, 항상 폭우가 내린다.

비바람에 꽃잎이 다 떨어지면 벚나무는 지난 시절이 무색할 만큼 초라해진다. 그러니 봄은 화려하면서도 초라한 법인데 생각해보면 첫사랑도 그렇지 않나. 인생에 한 번뿐인 진귀한 경험이지만 도려낼 수 있다면 도려내고 싶은 상처이기도 하다. 사랑에 빠졌다 빠져나오는 상우의 시간은 벚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닮았다. 참 아름답고도 추하다.


은수의 집에 갔을 때, 상우가 아무 짓(?)도 하지 않고 바닥에 쭈그려 잤기 때문에 그가 그녀와 연애라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우의 순수함은 은수에게 이미 지나버린 자신의 봄을 떠오르게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모습에 덩달아 지난날이 떠오르고 ‘어쩌면... 다시 봄이 오려나’ 싶지 않았을까. 그런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겪어본 사람은 봄이 지나치게 짧은 주제에 꽤나 깊숙이 생채기를 내고 간다는 걸 안다. 은수는 꽃잎은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상우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둘은 나란히 걸을 수 없다.


다들 상우로 시작해서 은수로 끝난다.

나를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대차게 까이고 나서 내가 한 건 고백이 아니고 감정 통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창피했다. 나는 평소 짝사랑은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지독한 짝사랑 반대론자인데 처음 겪는 사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죄송하다. (상우도 은수의 차를 긁은 것을 죽을 때까지 후회하며 살겠지...) 여하튼 첫사랑을 끝내고 나는 조금 은수가 됐다. 그 사람도 한 때는 상우였을 것이다. 점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상우의 대사보다 그 말을 들은 은수의 표정에 공감하는 사람이 된다.


지나 보면 안다. 벚꽃은 매년 피지만 절정의 순간은 찰나라는 사실을. 왜 지나 봐야 알까. 인생에 영원한 건 없다는 진리를 계절이 매년 알려주는데도 기어이 아파야 깨닫는 우리는 얼마나 멍청한 존재인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싯다르타>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고행 도중 완전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발적으로 속세에 빠진다. 그는 속세의 사람들을 경멸하면서도 부러워하는데 그들은 사소한 것에 애를 쓰고 괴로워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이지만,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싯다르타는 지나치게 영리해 아무도 사랑하지 못한다. 어쩌면 인간은 멍청해서 사랑스럽고 봄은 찰나여서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겠다. 날이 제법 더워졌다. 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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