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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an 31. 2022

어서와~ 한국은 두 번째지?(2)

덴마크 친구를 소개합니다

스노어는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을 떠났고, 우리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스노어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 너, 혹시 원효대사라고 알아?

- 응, 알지. 왜?

– 최근에 우연히 알게 됐는데 흥미가 생겼거든. 네가 아는 대로 설명해줄 수 있어?


막상 원효대사에 대해서 설명하려고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원효대사 이야기라는 게 그저 '목이 말라 물을 마셨는데 알고 보니 해골 안에 있던 썩은 물이더라'라고 하는 그 이야기 딸랑 하나였다. 답장으로 그 이야기를 해 주면서 필요하면 좀 더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스노어는 바로 그 이야기에 꽂혔던 거였다. 게다가 원효대사에 관심을 보인 게 스노어뿐만이 아니었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던가. 스노어는 호주에서 지내는 동안 그곳에서 한국과 불교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울리며 지내고 있었다. 결국, 원효대사의 그 이야기가 발단이 되어 원효대사가 걸었던 그 길. 즉, 경주에서 평택까지의 ‘원효길’을 미국인 친구 사이먼과 남아프리카 공화국 친구 토니와 함께 걸어보기로 했단다. 그리고 얼마 후, 방학을 맞아 그 친구들은 정말로 한국에 왔다. 이왕 걷는 거 자신들의 여정을 다큐멘터리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스노어와 함께 온 일행들은 공항에서 바로 경주로 향했고, 스노어는 나를 포함한 다른 한국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잠시 안국동에 들렀다.

- 스노어! 그런데 말이야, A급 태풍이 내일 여기를 지나간대, 지금 바람도 심상치 않고, 근데 너 숙소는 정했어?

- 아니, 여의치 않으면 그냥 찜질방에서 잘 거야.

- 찜질방에서 잔다고 해도 어차피 태풍 때문에 내일은 아무 데도 못 갈 거야. 오늘은 그냥 우리 집으로 갈래?


그렇게 스노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갔다.

비밀번호 까먹어서 1시간 넘게 저러고 있었음

다음날 결국 일이 터졌다. 태풍이 아파트 유리창을 산산조각 내며 전라도를 집어삼켰다. 뉴스에서는 창문에 테이핑 하기 또는 신문지를 물에 적셔서 붙이기 등 여러 가지 대처법을 알렸다. 태풍의 예상 경로를 보니 충청도를 지나 서울과 인천을 관통할 참이었다. 벌써, 창문 밖 가로수들은 힘없이 휘청이고 있었다. 하지만, 스노어는 무심한 듯 창문에 이마를 딱 붙이고는 바깥 풍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 넌 어째, 이 상황을 좀 신기해하는 것 같다.

- 사실, 좀 그렇긴 해. 처음 경험하는 거거든.

- 태풍을?

- 응.

- 덴마크에는 자연재해 같은 거 없어?

- 음... (잠시 생각하더니) 폭설?

태풍이 지나가는 와중에 명상이라니

- 명상은 왜 하는 거야?

- 좋은 질문이다. 하지만 말해줄 수 없어. 각자 스스로가 이유를 찾는 게 좋겠어.

- 그렇군. 불교와 명상이 서로 관련이 있나?

- 관련이 있지만 꼭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명상은 누구나 할 수 있어.

- 나도 해볼까?

- 하려는 이유는?

- 그냥, 음... 내면의 평화?

- 나도 시작은 그렇게 했는데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해. 그건 네가 명상을 하면서 차차 생각해봐.

- 내면의 평화 말고 세계 평화 정도면 돼?

- 재미있네.

- 넌 명상하는 이유가 뭔데?

- 말해줄 수 없어.

- 쳇!


다음날 태풍은 곳곳에 상처를 남기며 지나갔고 스노어는 긴 여행을 시작하러 경주로 떠났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스노어가 지금까지 자신들이 촬영한 영상으로 다큐멘터리 예고편을 만들었다면서 동영상을 보내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uaIWA3J8rZE

한국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https://www.youtube.com/watch?v=wJR9V_R_80c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그들의 여행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을 때 쯤 연락이 왔다. 카메라에 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고 있다고. 또, 몇몇 사찰의 스님들과 인터뷰를 했으면 하는데 나에게 통역을 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마침, 2~3일 정도 여유가 있었고, 나는 그렇게 서둘러 경주행 KTX를 탔다.

외국인 가이드  명이 나를 데리고 경주 패키지 관광을 시켜주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숙소와 자동차까지 준비해  이들은 촬영 중간중간 경주의 유명한 맛집과 관광지에 나를 데리고 다녔다.    

우리 일행은 스님과의 인터뷰를 하기 위해 어느 절에 방문했고 나는 이 친구들의 질문을 스님께 대신 전했다.


- 스님, 첫 번째 질문드리겠습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집착을 버리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 집착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주시지요.

– 모든 형태의 집착이 다 여기에 포함됩니다. 돈에 대한 집착, 사람에 대한 집착, 음식에 대한 집착 등등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쫓을 때, 또는 더 많이 가지려고 할 때, 많은 문제들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마음을 버릴 때 진정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 그렇다면, 타인이 나의 것을 빼앗으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아무리 그것이 자신의 것이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빼앗으려 한다면 그냥 내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꼭 쥐고 있으려다 보면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다음, 스노어와 친구들은 불교 무술을 연마하는 스님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카메라의 위치를 이리저리 옮기더니 자기들끼리 뭐라 뭐라 귓속말을 주고받았다. 내가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 왜 그래?

– 어느 각도에서 찍어도 저기 벽에 걸려있는 현수막이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독도는 우리 땅! 대마도까지!


그리고 아래에는 아주 ‘친절하게’ 영어로,

Dokdo island is Korea territory라고까지 쓰여 있었다. 우리 일행은 촬영을 접고 절에서 내려오면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하여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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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을 마무리하고 숙소에 돌아오던 길에 스노어가 나에게 물었다.


- 경주는 참 아름다운 도시야. 너도 오늘 봤겠지만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한국의 훌륭한 자연을 경험해. 사실, 나는 서울보다 경주가 더 좋아.

- 그러게, 아까 템플 스테이에는 한국인보다 외국인들이 더 많더라.

- 그래서 저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만들어지는 걸 보면 좀 안타까워.

그랬다. 스노어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가도로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파란 하늘 밑으로 황금색 논밭이 넓게 펼쳐지고 하늘과 땅 사이로 산들이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었다. 그 멋진 풍경을 고가도로가 가로지를 참이었다. 고가도로를 잇는 기둥은 이미 다 올라간 상태였고 저 기둥 위로 도로만 얹으면 절묘하게 하늘과 땅을 싹둑 자를게 될 것이었다.


스노어가 물었다.

- 혹시 저 공사 중인 도로가 무슨 도로인지 알아?

- 잠시만, 지도 보면 나오겠지. 확인해 볼게. (잠시 후) 찾았다. 경주-감포 간 고속도로라는데?

- 뭐! 감포? 설마. 다시 한번 확인해 봐.

- 맞아 경주-감포, 그런데 왜?

- 우리 방금 감포에서 온 거야.

- 이유가 있겠지.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다거나. 한국은 고속도로 같은 건 얼마든지 더 만들어. 도로 확장 공사도 마찬가지고.

- 아...

- 한국은 교통체증 문제를 도로확장과 고속도로 건설로 해결해왔어. 그 방법이 일자리를 늘리고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늘 우세했었어.

- 자연과 풍경은?

- 경제논리 앞에서 자연은 항상 밀려왔어. 인식이 변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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