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 네가 머물던 교토는 어떤 곳이야?
스노어 -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야. 한국에 경주라고나 할까. 기회 되면 꼭 한 번 가봐. 분명 너도 좋아할 거야. 궁금하다 너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나 - 너 혹시 교토에 아는 사람 있어? 혹시 있으면 나한테 소개해 줄래? 너의 친구라면 좋은 사람일 것 같아. 좋은 일본인 만나보고 싶어.
스노어 - 정말 좋은 생각이다. 그곳에 사는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연락해 놓을게.
얼마 후, 스노어의 일본인 친구에게서 메일이 왔다.
그녀 - 안녕. 나는 마유미야. 스노어가 너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어. 교토 여행 계획 중이라고 그러던데? 그럼 우리 함께 만나서 차 한 잔 하면 좋겠다. 자세한 여행 일정 알려줘
나 - 안녕, 마유미. 연락 줘서 고마워. 난 8월 21일부터 24일까지 교토에 있을 예정이야.
그녀 - 그래 알겠어. 그럼 22일 저녁 6시에 Gion Shijo역에서 만나는 게 어때? 내가 괜찮은 식당 알아볼게. 혹시 너도 채식주의자니? 현재 교토는 아주 습하고 뜨거워.
나 - 사람들이 그러더라 여름 교토 여행은 사우나에서 걷기라고. 그리고 나도 채식주의자야. 하지만 스노어처럼 비건이 아니라서 생선과 유제품은 먹을 수 있어.
이렇게 나의 첫 교토 자전거 여행(2015년 8월 21일 ~ 24일)이 시작되었다.
파스타를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옆 테이블의 커플과 간단히 인사를 나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영국에서 살고 있고 학술세미나 참석차 도쿄에 왔다가 교토로 넘어와서 여행 중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나 - 여기 음식 어때?
그들 - 응. 이곳은 채식 햄버거가 아주 인기 있어. 우리도 지금 그거 먹었어.
나 - 이런, 나는 이미 파스타를 시켰는데. 햄버거 먹으러 한 번 더 와야겠네. 너희들은 채식주의자니?
그들 - 응, 너도?
나 - 응, 너희들 혹시 Happy Cow 사이트 보고 온 거야?
그들 - 어, 맞아. 너도?
나 - 응, 친구가 채식 식당 찾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알려줬어. 그 검색 사이트에서는 여기가 평점이 제일 높더라.
그들 - 맞아. 아마도 여기에 오는 외국인들은 전부 그거 보고 찾아서 오는 것 같아.
나 - 와! 신기하다.
그들 - 일본에서 채식 식당 찾는 거 참 힘든 거 같아. 여기는 그나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식당이 조금은 있는 것 같아. 한국은 어때?
나 - 나는 채식한 지 5년 정도 됐는데 그때에 비하면 한국도 굉장히 많이 변했어. 채식에 대해서 관심도 많아졌고, 예전에는 식당에서 주문할 때 고기를 빼 달라고 하면 왜 그러냐고 물어봤었는데 이제는 그냥 아무 말 없이 빼주더라. 영국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 건 괜찮지?
그들 - 꼭 그렇지도 않아. 아직까지 왜 고기를 안 먹는지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
나 - 가끔씩 부모님 댁에 가게 되면 우리 엄마는 꼭 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하셔. 아들이 채식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서 내가 채식을 하니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말씀을 하셔.
그들 - 채식주의자이니까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그런데 무슨 의미인지 충분히 알 것 같아. 전 세계 엄마들은 다 똑같은 거 같아. 그건 그렇고 저건 자전거니?
- 응, 내 자전거야. 한국에서 가지고 왔어. 교토에서 자전거 여행하려고.
- 자전거 굉장히 신기하게 생겼다.
- 그래? 이거 Brompton이라고 해. made in England인데? 처음 봐?
- 응, 난 자전거 잘 몰라. 영국 사람들은 자전거 잘 안타. 얼마 전에 영국에서 자전거를 빌려주는 서비스를 시작했어. 이용자가 자전거를 빌려서 타다가 목적지 근처에다가 반납하는 거.
- 그거 유럽에 많은 나라들이 하는 것 같던데.
- 맞아. 영국도 그거 시작했는데, 아무도 이용하지 않아. 왜냐면 위험하거든. 자전거만 빌려주면 뭐하냐고 자전거와 관련된 기반시설이 없는걸. 자전거 전용도로도 아직 형편없고. 한국은 어때?
- 자전거 도로가 많이 있긴 하지만 아직 일상생활에서 타기에는 많이 불편하고 위험해.
사장 - 맛있게 드셨나요?
나- 네, 아주 잘 먹었습니다. 혹시 사장님이세요?
사장 - 네
나 - 이 식당 이름 어떻게 발음해요?
사장 - 마츠온토코 입니다. 마츠는 제 이름이고요. 토고는 place 또는 house라는 뜻입니다.
나 - 아저씨네 가게 정도 되겠네요.
사장 - 네, 그렇습니다.
나 - 저기 진열대 위에 Organic beer라고 적힌 맥주는 여기서 판매하는 건가요?
사장 - 네, 메뉴판에 있습니다.
나 - 한국에 가기 전에 다시 와서 먹어봐야겠네요.
교토에서의 심야 라이딩 중, 강가 풍경이 멋져서 찍은 건데 이 사진을 본 친구는 계급사회인 일본의 모습을 담았냐고 물었다. 이 사진을 스노어한테 보여주니 스노어도 웃으면서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며 본인도 항상 (돈이 없으니) 저 강변 바닥에 앉아 친구들과 술을 마신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와 홍콩, 마카오, 이탈리아에서 온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눴다.
나 - 이런 말이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마카오 - 내가 중국사람처럼 생기지 않아서 그런 거지?
나 - 응. 넌 유럽 쪽인 것 같은데.
마카오 - 맞아. 내 부모님들은 포르투갈 출신이고 마카오로 이민 오셨어. 나는 마카오에서 태어났고.
나 - 그렇구나. 잠깐만, 그럼 혹시 마카오가 포르투갈의...
마카오 - 응, 맞아. 식민지였어.
나 - 난 몰랐어. 홍콩이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마카오 - 아마도 마카오 관련한 뉴스를 많이 못 봐서 그럴 거야.
나 - 그러네, 홍콩은 우산 시위 때문에 시끌시끌했잖아. 그런데 마카오는 조용해?
마카오 - 응, 마카오의 여론은 중국에 반환된 것을 환영하는 분위기야.
나 - 왜?
마카오 - 마카오는 중국 반환 이후로 엄청 좋아졌거든. 스탠리 호라는 사람 한 명에게 독점이 되어있던 카지노 사업에 중국 정부가 통제하면서 거기서 나온 많은 돈을 인프라 사업에 투자했어. 그래서 마카오 사람들의 삶의 질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어.
나 - 그럼 홍콩 사람들이 걱정하는 걸 마카오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아?
마카오 - 뭐,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이중국적이거든. 마카오가 안 좋아지면 나는 포르투갈로 가면 그만이야.
(홍콩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홍콩 - 하지만 나 같은 홍콩 사람들은 입장이 다르지.
나 - 작년에 홍콩 여행 계획 중이었는데 '우산 시위' 때문에 포기했었어.
홍콩 - 안 오길 잘했어. 그때 모든 도로가 봉쇄되어서 여행하기 힘들었을 거야.
나 - 그 시위에 대해 그리고 홍콩과 중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
홍콩 - 언제든 환영해.
나 - 진심이야? 지금도 가능해?
홍콩 - 응, 난 괜찮아.
나 - 그럼 시작해보자.
마카오 때문인지 홍콩은 자리를 옮기자고 제안했고 우리는 아래층 라운지로 가서 대화를 이어갔다.
홍콩 - 우선 시작하기 전에, 너는 그 시위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어?
나 - 중국이 홍콩 선거에 개입하려고 했다는 거. 후보자를 중국이 정하려고 했고.
홍콩 - 맞아. 그게 핵심이야.
나 - 아참! 그전에 너는 중국 사람이야? 홍콩 사람이야? 이런 질문 무식한 건가? 무례한 거라면 미안.
홍콩 - 아니야. 괜찮아. 물론, 나는 중국인이야.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중국인이야(I'm Chinese). 그리고 홍콩 출신이야 (and I'm from Hong Kong).
나 - 오! 신기하다.
홍콩 - 홍콩은 1997년에 중국에 반환되었어.
나 - 맞아. 기억나. 그다음 해에 홍콩에 여행 갔었는데, 반환 1주년 기념하는 광고들이 길거리 여기저기에 있었어. 그때 생각했었어. 반환 전후로 홍콩 시민들은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홍콩이 갑자기 사회주의 도시가 되는 게 아닌가 하고...
홍콩 - 그래, 그런 불안감이 있었어. 그래서 영국과 중국 사이에 합의가 있었어. 홍콩은 반환 뒤에도 50년간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는.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체제(one nation two system)' 우리는 이렇게 표현해.
나 - 아하! 그럼... 음... 계산해보면 2047년쯤 되는 건가?
홍콩 - 응,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아. 중국이 그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러한 시도 중의 하나가 지난번 선거 관련 이슈였어.
나 - 그런데 중국도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기는 힘들지 않아? 개혁개방 있잖아?
홍콩 - 맞아, 하지만 우리가 걱정하는 건 재산손실 같은 게 아니야. 표현의 자유가 사라지는 것, 언론이 통제되는 것, 개인의 기본권이 무시되는 것, 유튜브, 트위터를 사용하지 못하게 되는 것, 인터넷이 막히는 것. 우리는 그런 것들을 걱정해. 민주주의가 공격받을까 봐 걱정하는 거야.
나 - 와! 정말 걱정되겠다. 그럼 그 전까지 홍콩에서는 자유로웠어?
홍콩 - 물론이지
나 - OK! 그럼 다시 우산 시위로 넘어와서... 지난번 그 시위는 성공했어?
홍콩 - 아직, 시위는 진행 중이야. 다만 규모가 작아졌을 뿐. 다들 일해서 돈 벌어야 하고, 삶을 살아야 하니까.
나 - 시위 초기에 엄청난 사람들을 보고 놀랐어. 그 시위대가 국회 의사당인가를 점거했을 때에는 한국 사람들 중에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어. 무력진압이 있을까 봐
홍콩 - 에이! 그럴 리가...
나 - 우리는 그런 경험이 있거든.
홍콩 - 그래? 아! 내전 때?
나 - 아니, 전쟁 끝나고 독재정권 때
홍콩 - 사람들이 죽었어?
나 - 응. 엄청.
홍콩 - 총을 사용했어?
나 - 응
홍콩 - 아... 이런...
나 - 이번에 문제가 됐던 그 선거는 언제 해?
홍콩 - 아마 2017년쯤
나 - 그 선거 어떻게 될 것 같아?
홍콩 - 중국이 원하는 대로 되겠지. 우리 모두 알아.
나 - 많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잖아?
홍콩 - 그래, 하지만 젊은 사람들. 직장인들, 학생들 즉, 교육받은 사람들은 중국의 방식에 우려하고 반대해. 하지만 나이 많은 사람들은 중국을 지지해. 그들은 아직도 예전의 향수를 그리워해. 마오쩌둥을 마치 신처럼 생각해.
나 - 너는 아니야?
홍콩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나 - 세대 간의 벽이 어마어마하겠네.
홍콩 - 응
나 - 한국도 그래
우린 홍콩과 한국이 많은 부분 닮아있다는 것을 신기해하며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2022년 현재까지 모든 것이 그 친구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동안 몇 차례 크고 작은 시위가 더 있었고 사람들이 체포됐다. 당연히 중국 정부가 그린 큰 그림이겠지만 홍콩을 바로 접하고 있는 중국 선전 시는 2018년에 홍콩의 GDP를 넘어섰다. 상황은 반전되어 홍콩은 이제 중국 본토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