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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n 02. 2022

이탈리아에 한국영화제 있는 거 알아?

자코모, 니키 그리고 나 (1)

대나무 숲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옆 어떤 긴 머리 아저씨는 거미줄에 있는 거미를 정성스럽게 찍고 있었다. 궁금해하던 그때,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 - 다른 사람들 전부 대나무를 찍느라 정신없는데 너는 거미를 찍는구나.

긴 머리 - 응. 맞아, 나는 거미가 좋아. 난 이탈리아에서 왔어. 이탈리아에서는 거미가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있거든. 아무튼, 나는 자코모(Giacomo)라고 해. 너 어느 나라에서 왔어?

나 - 난 한국

자코모 - 와! 나 한국영화 엄청 좋아해. 혹시 너 Far East Film Festival이라는 영화제 알아?

나 - 아니, 처음 들어보는데.

자코모 - 나는 베네치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트리에스테라는 도시에 살아. 그리고 베네치아와 트리에스테 사이에 우디네라는 도시가 있는데 그곳에서 매년 Far East Film Festival이라는 영화제를 열어. 영화제 이름 그대로 아시아의 영화들로만 하루 종일 약 열흘 동안 진행되는데, 나도 자주 가.

이탈리아 북부 도시 베니스 - 우디네 - 트리에스테


나 - 기억에 남는 한국영화 있어?

자코모 - 그럼! 지금까지 최고의 영화라고 생각되는 게 있는데 제목은 네가 아는 거랑 좀 다를 거야. 한국의 유명한 성(last name)이 있고 그 사람의 조난(castaway)이야.

나 - 엥? 그게 무슨...

자코모 - 음. 그러니까. 넌 성이 뭐야?

나 - 난 Lee.

자코모 - 그거 말고 한국의 유명한 다른 성 말해봐.

나 - Park, Kim, Choi...

자코모 - 그래! Kim이야. Kim's castaway야.

나 - 김의 조난? 그게 뭐야... 어? 잠깐만. 아! 김 씨 표류기! 혹시 그거 말이야, 한 남자가 다리 위에서 자살한다고 떨어졌는데 섬이잖아?


자코모 - 푸하하하~ (생각만 해도 또 웃긴가 보다) 맞아 맞아, 그 영화. 그게 나한테는 최고의 한국영화였어. 관객상도 받았는걸.

나 - 어, 정말? 그 영화 어땠는데?

자코모 - 메시지가 참 인상적이었어. 현대인 말이야,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많이 외로워하잖아. 영화가 그것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해. 여자 주인공을 히키코모리로 설정한 것도 좋았어.

나 - 이탈리아 사람 입에서 ‘히키코모리’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신기하다.

자코모 - 내가 일본에도 관심이 많거든. 그 영화에는 모든 게 다 담겨있는 것 같아. 슬픔, 고독, 기쁨, 로맨스, 사회이슈... 그런데 말이야. 그동안 정말 궁금한 게 있었는데 영화에 나오는 그 섬 있잖아. 정말 존재하는 섬이야?

나 - 응, 맞아. 정말 있는 섬이야.

자코모 - 이제야 궁금증이 풀렸네. 내가 오늘 너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야. 너 오늘 계획이 뭐야?

나 - 글쎄, 그냥 즉흥여행이라 계획 같은 건 없는데.

자코모 - 그럼, 우리 오늘 같이 여행할래?

나 - 그럴까?

자코모 - 이따 2시쯤에 다른 친구랑 기차역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 그렇게 셋이서 다녀도 되겠지?

나 - 그래. 난 좋아.


그렇게 우리는 자코모의 친구를 만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나 - 그런데 네 친구도 이탈리아 사람이야?

자코모 - 아니, She is from Australia.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음 만났어.

나 - 어? 방금 너 ‘She’라고 했어?

자코모 - 응, 왜?

나 - 여자야?

자코모 - 응.

나 - 아... 너희 둘이 데이트하는데 내가 끼는 거 아니고?

자코모 - 아니야. 아니야. 그런 사이 아니야. 걔도 너랑 같이 여행하면 즐거울 거야.


잠시 후, 우리는 학생인데 모델일도 한다는 니키를 만났고, 우리는 자코모의 제안으로 근처에 있는 원숭이 공원에 가기로 했다.



생수를 사려고 들른 편의점에서,


자코모 - 우리 1L짜리 하나 사서 나눠 마실래? 내가 들고 다닐게.

나 - 무거울 텐데 괜찮겠어?

자코모 - 우리가 열심히 마시면 금방 가벼워질 거야.

나 - 그래. 그럼 돈은 내가 낼게.

자코모 - 좋아. 생수를 내 가방에 넣을 테니 대신 내 헤드폰은 잠시 네 가방에 좀 넣어줄래?

 

그렇게 자코모의 헤드폰이 내 가방으로 들어가고... 그것을 까맣게 잊고 우리는 원숭이 공원을 향해 출발했다.



나 - 니키, 교토에는 여행하러 온 거야?

니키 - 아니, 일본어 배우러 왔어. 대학에서 어학 코스 밟으려고. 일본에 대해서 공부도 좀 하고 싶고.

나 - 아, 일본에 관심이 많은가 보구나.

니키 - 응, 엄마가 일본인이셔. 아빠는 영국인이고.

나 - 일본인 엄마와 영국인 아빠 그리고 너의 국적은 호주?

니키 - 응.

나 - 그래서 엄마의 고향이 궁금한 거구나?

니키 - 그런 셈이지.

나 - 너 혹시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봤어?

니키 - 응. 울룰루 얘기하려는 거지?



나 - 응. 너 거기 가봤어?

니키 - 아니, 아직.

나 - 그런데, 거긴 왜 유명한 거야?

니키 - 지구에서 몇 안 되는 굉장히 신비로운 에너지가 나오는 곳 이래.


우리의 대화를 듣던 자코모가 말을 이었다.


자코모 : 거기서 명상하면 참 좋겠네.

나 : 너 명상해?

자코모 : 응

나 : 혹시, 너 채식주의자야?

자코모 : 응, 너도?

나 - 응, 명상도 하고.

자코모 - 와! 정말 신기하다. 대나무 숲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이 명상하는 채식주의자라니.

니키 - 너희 둘. 정말 신기하다.



- 자코모 : 너 아까 즉흥 여행한다고 했잖아. 그럼 우리 안 만났으면 뭐 했을까?

- 나 : 아마도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겠지. 배고프면 식당에서 밥 먹고, 힘들면 카페에서 쉬다가...

- 니키 : 그런 여행 재미있을 것 같아.

- 자코모 : 여행 준비하는 게 가끔씩은 스트레스받는 일이기도 해.

- 나 : 맞아. 예전에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생각으로 여행을 준비했거든 이왕 가는 거 최대한 많이 보고 경험하려고 하다 보니 가이드북에서 시키는 대로 여행을 하고 있더라고. 그마저도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겨서 꼭 계획대로 되지도 않아.

- 니키 : 맞아. 특히 게스트 하우스에서 지내면 이렇게 새로운 친구들 만나서 같이 여행 다니는 일도 생기고 하니까.

- 나 : 나중에 꼭 해보고 싶은 여행이 있는데. 그냥 공항에 가는 거야. 목적지도 숙소도 정하지 않고. 공항에서 바로 출발할 수 있는 티켓을 사는 거지. 모든 것을 그냥 운에 맡기는 거야.

- 자코모 : 오! 재미있겠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와 근처에 있는 호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가오나시 허수아비

 

누워있는 자코모를 찍었는데 그도 나를 찍고 있었다

호수에 도착하니 다들 아무 말 없이 주저앉아 각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나 보다. 재미있었지만 너무 피곤했다. 앉으니 눕고 싶었고 누워보니 곧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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