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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an 22. 2022

덴마크에서 휘게(hygee)하기

거실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키며 스노어가 물었다.

"이 그림 어때?"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추운 어느 겨울날 어머니가 막내를 품에 안고 다른 두 아이와 거친 칼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다. 덴마크의 혹독한 겨울이 이 그림 속에서 그대로 느껴졌다. 그러던 중 책에서 읽었던 hygee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춥고 어둡고 긴 겨울 날씨 탓에 바깥 활동보다는 가족과 친구들끼리 실내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덴마크의 문화.


- hygee라는 단어 있잖아. 나 그거 좀 궁금해. 그게 정확히 뭐야? 함께 대화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거야? 아님 그 행위를 하는 시간을 의미하는 거야?

- 전부 다야. 그냥 여러 가지 표현이 가능해.

- hygee가 덴마크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가 된 이유가 뭘까?

- 덴마크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찾다가 나온 게 아닐까?

- hygee가 행복이랑 관련이 있어?

- 행복이란, ‘얼마나 많은 돈과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가’ 보다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과 얼마나 자주 시간을 보내는가’와 관련이 있다는 게 알려지면서 덴마크 문화 속에 있는 hygee가 주목받은 게 아닐까 해.

-  설명 들으니까 더 궁금해진다.

- 그럼, 우리 hygee 해볼래?

- 그래, 좋아!

- 준비 다 됐어. 어때? 이제 hygee 하자.

- 오! 좋다 좋아. 조명과 촛불로 집안을 아늑하게 만드는 거구나. 덴마크 사람들은 이렇게 겨울을 보내는 거야?

- 잠깐, 기다려봐. 여기에다 따뜻한 차 한 잔 해야지.  

https://youtu.be/r9Iz3cxwcwI


우린 Jose Gonzalez 앨범 In Our Nature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덴마크에서 돌아온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가끔 노란 간접 조명을 켜고 차를 마시며 Jose Gonzalez 음악을 듣는다. 그렇게 눈을 감으면 나는 언제든 스노어네  소파에 있게 된다.


- 네가 우리 집에 오면 같이 보려고 도서관에서 덴마크 영화 DVD 빌렸는데 볼래? 영어자막 있어.

- 그래. 나 덴마크 영화 보고 싶었어.


영화 제목이 'Oldboys'였다.

내용인즉슨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덴마크 축구팀이 스웨덴으로 원정경기를 떠나는데, 주인공 할아버지가 휴게소에서 낙오되며 겪는 로드무비이다. 영화 중간쯤, 멤버 한 명이 없는 것을 알게 된 다른 팀원들이 버스 안에서 왁자지껄 토론을 벌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스노어가 웃으면서 저것이 바로 전형적인 덴마크 사람들이라고 했다. 주인공을 데리러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사람, 혼자서도 올 수 있을테니 괜찮을 거라고 하는 사람,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는 사람, 괜히 문제 만들지 말자는 사람, 코치한테 전화가 올 거니까 여기서 기다려보자는 사람, 자기는 부인 전화번호도 모르는데 어떻게 전화를 하겠냐며 반박하는 사람. 결국 투표로 결정하자는데 그럼, 거수로 할 건지 비밀투표로 할 건지로 한바탕 시끌시끌한 토론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영화가 끝나고, 그 장면에 대해서 좀 더 얘기해 달라고 했더니, 어렸을 때부터 학교교육은 비판적 사고와 토론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 장면에서와 같은 그런 토론이 일상이 되었다고.


"한국은 어때?" 스노어가 물었다.


한국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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