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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무는바람 Dec 14. 2022

12월의 주문

2202.12.03

매달 첫번째 토요일은 '동화'모임이 있는 날이다.

동화 모임이 무엇인고 하니 큰아이가 동화초에 입학한 1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엄마들의 모임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13년이 된 장수 모임이구나.

아이들은 벌써 커서 대학생이 되었고 특히 남자애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군복무 중이다.

아이들 때문에 만들어진 모임이나 아이들이 고등학교에 가면서는 아이들을 떼어내고 엄마들만의 모임으로 재편성되는 과정을 겪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누구 엄마로 부르던 호칭이 본인들 이름으로 바뀌는 작지 않은 변화도 생겼다.


2022년 마지막 모임인 오늘은 망년회다. 이 모임은 늘 이른 망년회를 하기 마련이다.

살 오른 길다란 몸을 가지런히 갈라 과하지 않은 양념을 두른 장어가 대망의 마지막 메뉴로 선정이 되었다.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은근하게 구워진 장어를 깻잎에 싸 먹으니 그리 나쁘지 않다.

망년회이니 그래도 뭔가 한 해를 돌아보는 의식도 치뤄본다.

새로 리모델링해 들어간 단독 주택을 멋들어지게 가꾸는 재미와 다육이들을 위한 비닐하우스 설치를 이야기하며 내년 다육이 농사의 의지를 불태우는 갑장 친구.

5층 빌라의 건물주가 되었으나 대출금 이자가 생각지도 못한 봉변이 된 한 해였다는, 빠른 대출금 상환이 내년 목표가 되었다는 멋쟁이 언니.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시댁 형님의 일로 조금은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우리 오래오래 보자는 말을 전하는 언니 같은 동생.


나는 어땠던가.

작년보다는 조금 더 많은 수업을 했고 코로나에 걸려 그 아픔을 실감했다.

큰아들을 군대에 보냈으며 작은아들의 입시가 마무리 되면서 공식적인 학부모의 타이틀을 곧 내려놓을 예정이다.

아주 열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예년에 비해 조금 더 글쓰기에 집중이라는 걸 해봤고 글에 대한 나의 태도에 대해 나름 진지함을 생각했던 한 해였다.

내년 한 해를 어찌 보내야 할까 설계 중인데 딱히 정해진 게 없다.

그래서 12월은 참 생각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 12월 한 달이 남았으니 잘 정리해 보기로.


올 한 해 안 좋았던 기억은 잊어버리자며 망년을 외치다가 문득 다시 생각한다.

잊는다는 것보다 안 좋았던 것들을 내 마음에서 그대로 보내버리는 행위가 좀더 강력해 보이지 않을까?

그럼 망년 말고 송년으로 다시 고쳐 외쳐보자.


다음 해를 준비하는 나만의 주문이 필요한 12월.

강력하고도 깔끔한 주문 하나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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