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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색햇살 Aug 15. 2023

연꽃2

무더위가 시작될 무렵 듣게 된 아라홍련의 나들이 소식에 난 일찍부터 마음이 설레었다. 모처럼 갔는데 꽃이 없으면 안되기에 일주일에 두세번씩 꽃이 피었는지 세종수목원의 소식을 검색했고 이맘때 꽃이 필 때가 되었는데 싶어 퇴근길 가까운 연밭에 들러 꽃이 한창인 것을 확인까지 했다. 오픈때가 꽃이 더 많이 필까, 야간 개장시간이 더 많이 필까 생각하며 시간은 언제쯤 가는게 좋을지 고심했다. 그런데 어째 주말마다 일이 생기는 건지!! 애들 방학이라 놀러가고 친지 결혼식도 있고 거절하지 못한 초대까지... 순간 순간 즐겁고 감사했지만 내심 마음이 급해졌다. 이거 이거 이러다가 못보는거 아니야? 함안에서 지역특화사업으로 키울 참인지 이번 전시 끝나도 씨 한 톨 안 남기고 갖고 간다는데...그렇게 8월에 접어들고 난 이번 주말에야 말로! 하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 와중에 들린 태풍소식이라니... 모처럼 한반도로 직접 상륙한다는 뉴스에 어디든 긴장감이 감돌고 평소처럼 덥고 습하지만 미묘하게 스산한 바람이 부는 듯 했다. 


사실 꽃을 보러 꼭 주말에 가야만 하는 이유는 출근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그건 내가 아직 고속도로를 혼자 타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방 읍내에 살면서 동네에서 경차 하나 끌고 출퇴근하는 나는 굳이 혼자 고속도로를 나갈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서울 친정이나 다른 지역에 갈 일이 있을 때는 남편과 함께 다니니 내가 운전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긴급사태였다. 퇴근길에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일, 난 혼자서 고속도로를 탈수도 있겠는데?’ 하고 말이다. 휴가를 받았다. 아이들에겐 그저 어딜 다녀오겠다고만 했다. 애들까지 태우면 너무 긴장할 것 같아서 혼자 다녀오기로 했다. 네비게이션을 켜고 목적지를 입력한다. ‘국립세종수목원’ 정확히 한 시간 거리, 20분이 더해진 무료도로 안내도 있었지만 눈을 질끈 감고 대전당진고속도로로 들어가는 추천 경로를 선택했다. 톨게이트로 진입하는 급커브 구간을 돌면서 ‘아직 늦지 않았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참았다. 톨게이트를 지나며 눈에 스친 전광판을 보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패스입구로 들어온 것이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다 목에 콱! 막히는 느낌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 예전에 남편이 혹시 티켓을 못 뽑거나 잘못나와서 차를 돌리거나 하게되면 나갈 때 문의하면 된다했던 기억이 났다. 목구멍에 아직 걸려있는 심장을 꿀떡 삼키며 운전에 집중했다. 주행차로로 착하게 잘 따라가며 서세종IC에 다다랗다. 천천히 제일 가장자리 게이트로 진입했는데 이게 웬걸, 옛날처럼 직원분이 계신 부스는 사라진지 이미 오래인 것 같았다. 버튼과 투입구가 여러 개 달린 초록 기계 앞에서 나는 마치 키오스크를 처음 본 구순의 어르신처럼 잠시 넋을 놓았다. 그때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친절한 안내에 따라 진입한 곳을 알려드리고 버튼을 누르니 통행료 고지서가 나왔다. 왠지 뿌듯한 마음으로 고지서를 받고 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해냈다는 생각에 흥분되는 마음을 아직 방심하면 안된다고 꾸욱 참고 달래며 수목원에 도착해 주차까지 하고나니 마치 꿈만 같았다. 식물을 좋아해서 이미 여러번 와 본 곳이었는데도 마치 이국의 공항에 내린 기분이었다. 


 나는 바로 아라홍련이 왔다는 궁궐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기와를 엊은 흙담을 돌아 들어서니 연못이 보였다. 한 모다기 한 모다기 군데 모여 핀 연잎사이로 고개를 곧추세운 연꽃이 보였다. 한 눈에도 그동안 보아왔던 연꽃과는 달랐다. 만개한 연꽃이 하늘을 향해 꽃잎을 펼쳐보이고 있다면 아라홍련은 더 날씬한 꽃잎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흰색으로  보일 정도의 연분홍 고운 색은 꽃잎끝에 진하게 맺혔고 그 진한 홍색은 다시 꽃잎의 맥을 타고 하얗게 꽃잎이 시작된 곳으로 뻗어내렸다. 만개한 아라홍련은 그 한송이 만으로 흐드러지다라는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렸다. 익히 보아온 연꽃과는 다른 날씬한 꽃잎이 사방으로 피어났는데 그 꽃잎 한 장 한 장이  너무 고왔다. 연못 가장자리까지 가득 핀 것이 아니어서 핸드폰으로 줌을 당기는데 연못에서 긴 장화를 신고 시든 잎을 모아 갈무리하던 직원분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연꽃보러 오신 거예요?” 

”예, 안녕하세요~”

”너무 예쁘죠?”

”그러네요. 이 아라홍련 보고싶어서 굉장히 별렀는데 내일 태풍이 온다고 해서요.” 

”잘 오셨네요. 안그래도 저도 내일 태풍지나면 꽃 다 떨어질 것 같아서 사진 많이 찍어뒀거든요. 혹시 괜찮으시면 사진 찍어드릴까요?” 

”예? 어떻게요?” 

 ”제가 핸드폰 받아서 가까이 찍어드릴께요.” 

 뜻하지 않은 친절에 기쁜 마음으로 핸드폰을 건내드렸다. 한 두컷만 찍어주셔도 감사한 일인데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의 이곳 저곳의 연꽃을 찍어서 건내주시며 아라홍련과 함께 법수홍련도 같이 찍었으니 잘 보고 가시라고 인사해주신다. 핸드폰을 받고도 연꽃의 자태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줌을 아무리 당겨도 그 선명한 화려함을 담을 수가 없었으니… 직원분의 친절이 너무나 멋진 선물이 되어주셨다.  9시에 입장해 한시간 반 가량을 연꽃사진을 찍고, 정자에 올라 아침바람에 흔들리는 모양을 감상하기도 하고, 그 바람에 실려온 그윽한 향기에 놀라기도 하며 보냈다. 잠시 돌아갈 길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정자의 들창 너머로 보이는 딴 세상같은 풍경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든 되겠지 하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 편안한 마음으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에 오고나니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 몸이 피곤했다. 소파에 늘어져있다가 오늘 아침부터의 일이 모두 꿈인듯해 핸드폰의 앨범을 열어보았다. 꿈결같던 그 아름다움이 다시 펼쳐졌다. 700년을 넘어왔다는 그림속의 연꽃과 그 꽃을 보기 위한 나의 작은 용기, 그리고 선물과 같던 낯선 분들의 친절 그 모두가 다시 내 마음속에 한 송이로 피었다. 티없이 맑고 고운 연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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