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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Sep 22. 2022

생명의 본질에 어둠이 있다면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김준녕, 동아시아 서포터즈 서평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김준녕, 허블(2022).

한국과학문학상 제5회 대상 수상작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은 제목 그대로 우주 너머의 '신'을 찾아 떠나는 내용의 SF소설이다. 첨단 과학 기술에 대한 엄밀한 지식과 이성적인 상상력만을 요구할 것 같은 SF장르에서, 김준녕 작가는 신을 호명하는 제목처럼 예상 밖의 지점을 몇 번이나 건드리며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


김준녕이 그리는 미래는 식량난 이후의 한국을 배경으로 한다. 전지구적인 식량난 속에서 식량 자급율이 낮은 한국은 대기근을 겪으며 빠르게 무너진다. 사람이 죽고 문명이 무너진 기근 이후의 삶은 미래라기보다는 차라리 과거에 가까워보인다. 주인공은 산길을 걸어 등교하고 가족들은 밭에서 호박과 고구마를 서리해오며, 배급받은 밀가루로 수제비를 끓여먹는다. 강압적이며 인권을 무시하는 학교와 정부의 분위기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G는 "위대한 황제"라고 불리며 신적인 존재로 떠받들여지기까지 한다. 


신인 SF작가의 소설 속에서 인물들은 신의 존재를 부르짖고, 생활상과 인간의 양심, 문명, 그리고 폭력성까지도 과거로 완전히 회귀한다. 언뜻 SF라는 장르와 거리가 멀어보이는 이러한 특성들은 김준녕 작가가 이 작품을 통해 그려내고자 하는 본질적인 주제와 맞닿아있다. 작가는 우주를 배경으로 가장 원초적인 주제, '생명'을 그려낸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은 생명의 신비하고 고귀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생명의 본질, 무언가를 죽여 먹고 씹고 삼켜야만 가능한 생존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작가는 살해와 섭식이라는 행위를 집요하게 묘사하며 그 어떤 은유도 우회도 없이 과감하고 직설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대기근 이후의 한국에서 우주를 둘러싼 '막'을 탐사하기 위해 우주선 무궁화호에 탑승하게 된 '1대 비행사'들의 이야기가 실린 <막>, 그리고 그 이후 무궁화에서 태어나고 생활해온 후손들이 주인공이 되는 <바버샵>이다. 


지구의 가난과 기근, 폭력을 견딜 수 없어 우주로 도망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막>은 핏빛의 간절함으로 얼룩져있다. 그러나 간신히 도망친 우주에도 애타게 찾던 평화와 풍요는 없었다. 오히려 한정된 공간과 자원 속에서 권력과 계급에 의한 폭력은 더 견고하고 끔찍해진다. 지구의 삶에서 한계를 느꼈던 1대 비행사들처럼, 무궁화호에서 생존하는 데에 한계를 느낀 사람들은 무궁화호 바깥의 공간을 강렬하게 꿈꾼다. 강렬한 규범과 통제가 자리한 불합리한 공간 속에서, 시스템의 약자가 탈출을 꾀하는 플롯은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한다. 스릴러와 추격전이 교차하며 이야기에는 빠른 속도감과 강렬한 박진감이 더해진다.


이야기의 스케일이 크고 무거운 주제인데도 불구하고 김준녕은 신인 작가 답지 않은 솜씨로 큰 부족함 없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결말과 강렬한 여운을 남기며, 늦은 새벽까지 밤새워 책을 읽게 할 정도로 흡입력도 뛰어난 작품이었다.


다만 평소 자극적이고 잔인한 것을 즐기지 않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폭력적인 서술이 상당했다. 또 여자아이들의 신체를 몰래 엿보고 싶어하는 인물을 '영락없는 사춘기 남자아이'답다며 경쾌하게 언급하는 대목은, 최근 불거진 여러 사건들을 떠올렸을 때 그리 유쾌하게 넘길 수만은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김준녕 작가의 강렬한 흡입력과 독창적인 개성에 보다 섬세한 감각이 더해진다면 앞으로 더 풍성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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