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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pr 25. 2023

혼자 사는 삶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에이징 솔로', 김희경, 동아시아 서포터즈 서평

<에이징 솔로>, 김희경, 동아시아(2023)

LG 유플러스는 올해부터 비혼 임직원에게 비혼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임직원이 결혼을 하면 복지 차원에서 지급하던 경조사비를 비혼 임직원에게도 동일하게 지급하기로 한 것이다. LG 유플러스는 비혼을 선언한 만 38세 이상의 임직원에게 비혼 지원금을 지급할 방침이다. LG 유플러스 외에도 몇몇 기업에서 비혼 임직원에게 경조사비를 지급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비혼이 더 이상 '저런 애들이 가장 빨리 결혼한다'며 미성숙한 헛소리로 치부되지도,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지'하는 비아냥의 대상이 되지도 않고 개인의 오롯한 신념이자 선택으로서 존중받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수가 정상가족으로 구성된 가구 수를 뛰어남고, 비혼 지원금이 진지하게 고려되기 시작한 지금도 비혼 1인 가구를 향한 사회적 편견은 상당수 남아있다. 비혼 지원금을 지급하는 회사들 중 대다수는 만 40세 안팎의 나이 제한을 두고 있다. 이는 제도의 안정적인 도입을 위한 방침이기도 하지만, 결혼적령기 청년의 비혼은 결혼해 가정을 이루기 전의 임시적인 상태로 여기는 사회적 시선이 반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비혼 1인 가구들이 곧잘 '아이를 낳아 길러보지 않았으면 진정한 어른이 아니다'라는 훈계를 듣는 것 또한 비혼을 미성숙한 삶의 형태로 취급하는 편견 때문이다.


또 회사에서 비혼 임직원에게 비혼 선언을 요구하는 것은 비혼 1인 가구의 다양성을 무시한 결과로도 보인다. 비혼 1인 가구 중에서는 가부장제나 제도로서의 결혼을 거부하는 수단으로써 적극적으로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결혼을 선택하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비혼 상태로 남게 된 사람도, 결혼을 했었으나 이혼 등의 사유로 혼자 살게 된 사람들도 많다.


저자 김희경은 다양한 비혼 1인 가구들 가운데 '에이징 솔로'에 주목한다. 에이징 솔로란 홀로 나이 들어가고 있는 중년 1인 가구를 뜻한다. '비혼 중년'이라는 표현에서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일부러 새로운 단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에이징 솔로는 혼자만의 소득으로 혼자만의 삶을 꾸려나가는 방법을 어느정도 터득한, 젊은 1인 가구의 선배이다. 또 오롯한 개인으로서 중년을 넘어 노년기를 맞이하고 있는 첫 번째 세대이기도 하다.


노화와 병환, 고독사는 1인 가구가 갖고 있는 대표적인 두려움이다. 인터넷에는 혼자 살다가 화장실에 갇혀 큰 사고가 날 수 있으니 화장실에 반드시 핸드폰을 들고 들어가야 한다는 조언이나, 반려동물에 의해 고독사한 시체가 훼손될 수 있다는 식의 괴담을 손쉽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사고는 언제나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법이고 미리 준비해두면 불상사를 막을 수는 있겠으나, 김희경은 1인 가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은 대부분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죽음의 격차는 비혼이나 기혼이냐가 아니라, 고립을 방지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시스템의 부재로 만들어진다. 1인 가구의 병환이 두려운 것은 가족 없이는 입원하거나 수술하기 어려운 현재 의료 시스템의 관행 때문이고, 노화와 고독사가 두려운 것은 방문 의료 서비스나 위탁 서비스가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못한 까닭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비혼 여성들은 대다수가 친구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서 고독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현재의 부적절한 관행이 바뀌고 주위 사람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1인 가구의 두려움도 한결 덜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있지 않은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까? 또 친구가 가까운 곳에 거주하지 않거나, 많은 친구들과 관계맺는 걸 선호하지 않는 성향의 1인 가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친구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살며 주기적으로 모임을 개최하는 인터뷰이 김다임의 이야기와, 비혼 여성들의 느슨한 커뮤니티인 전라북도 전주의 1인 가구 네트워크 생활공동체 '비비(비혼의비행)', 친분과 상관없이 누구나 참여하여 돌봄을 주고받는 해외의 돌봄 그룹 '루시의 천사들' 등의 사례를 소개한다. 서로 다른 친밀도로 구성되어 있는 이 공동체들은 모두 타인의 도움 없이는 1인 가구의 삶도 불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도움을 청하고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비혼과 1인 가구를 둘러싼 또 하나의 편견을 바꿔놓는다. 1인 가구는 세상과 단절되어 이기적이고 편협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사회 속 한 가지 모습일 뿐이다. <에이징 솔로> 속 인터뷰이인 남지원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세계에 소속돼 있어요. 필요한 만큼.
그리고 분리돼 있어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1인 가구는 적당한 소속감도, 적당한 분리도 필요하다. 1인 가구가 적당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주변인들과 맺는 관계 속일 것이다. 또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안정감을 주는 것은 사회 시스템의 역할일 것이다.


책 곳곳에 인용되는 치밀한 수치와 통계는 혼자를 선택한 사람이 나 혼자뿐만은 아니라는 안도감을 준다. 또 19명의 인터뷰이들의 구체적인 경험담은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불필요한 두려움을 떨쳐버리는 데에 큰 도움이 되며, 국내외 1인 가구 생활 공동체의 풍부한 사례는 혼자 나이 들어가는 1인 가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용기를 불어넣는다. 비혼 1인 가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현재와 아직 가보지 않은 초고령 사회 가운데,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깊게 패인 절벽 사이에 <에이징 솔로>는 이렇게 든든하고 따스한 다리를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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