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의 엄마가 향년 86세의 나이로 한 줌의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가셨다.
월요일 날 뇌출혈로 쓰러져 화요일 저녁에 86년 동안 거칠고 숨 가쁘게 내쉬었던 숨을 거두셨다.
엄마는 늘 혼자 말로 읍조리셨다.
“난, 살려구 애쓴 죄밖에 없다”고...
살려구 애쓴 죄!
엄마는 살려고 애쓴 것을 왜 죄라고 했을까?
일제 강점기 산마을에서 태어나 산과 들로 다니며 머루 다래 뜯고 캐던 소녀
두 갈래로 땋은 머리 결이 고왔던 소녀
얼음을 지치며 떠났던 험난했던 전쟁 피난길이 마냥 신기했던 소녀
땅 한 짝 없는 가난한 시골 농부와 혼인하여 삼시 세끼가 사치일 수밖에 없었던 새 각시는
줄줄이 낳은 4남매 자식새끼를 배곯지 않게 하려
각국이 보내준 밀가루며 설탕이며 가루 분유를 억척스럽게 받아 내어
자식새끼 입에 먹을 것 들어가는 걸 행복으로 여겼던
나의 엄마!
낮에는 남의 밭일, 밤이면 다듬이질로
곱디 곱던 얼굴이 세파에 그을려 가는 지도 모르게
그렇게 세월을 삼키며 살던 "엄마!"
그런 엄마의 소원은
“내 가난은 절대로 자식한테 물려주지 않을 거야!
이 유전은 내 대에서 끝나야 해!”였다.
엄마의 입버릇 같은 소원대로 가난은 자식에게 대물림되지 않았다.
재산을 물려줘서가 아니다.
엄마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의 유전이 자식을 그리 살도록 만들어 주었다.
나는 ‘엄마’라는 호칭을 다정하게 살갑게 불러 보지 못했다.
그저 엄마를 다그칠 때, 원망할 때, 서러울 때, 온갖 불평을 늘어놓을 때,
나는 엄마를 “엄마!”라 불렀다.
60이 넘어서야
요양원에 계신 엄마에게
다정스럽게
살갑게
“엄마~!”라고 불러 보려 했다.
그런데
너무 늦어버렸다.
이제라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다.
엄마!
사랑해요!
고마워요!
“살려고 애쓴 죄”에서 벗어났으니
편히 잠드세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