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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May 27. 2020

완성의 수, 50

어린 시절, 나는 계획 세우는 걸 좋아했다. 좋아했다기보다는, '의지했다'는 쪽이 더 솔직한 표현이려나. 스프링 달린 연습장을 가로로 돌려 긴 줄을 긋고, 똑같은 간격으로 점을 찍어 연도를 적어놓고, 각각의 점 아래에  'ㅇㅇ 시작,  ㅇㅇ 완성'이라며 꿈에 불과한 야심 찬 계획들을 채워두며, 스스로 조용히 파이팅을 외쳐주는 그 종이들을 사진 찍듯 눈으로 열심히 보고 또 보더랬다.


'이러이러한 사람과 결혼', '이러이러한 학교 도전', 심지어 '첫 아이 낳기' 같은, 소녀감성이라고 봐주기에도 허무맹랑한 계획들을 적었던 기억도 있다. 첫 번째 점의 계획이 역시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그 계획표의 약발이 떨어지는 그 무수한 순간들마다, 어렸던 나는 지치지도 않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또다시' 빈 종이에 긴 줄을 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다시 힘을 내면 돼.'라는 위로의 주문.


나는 그렇게 나의 주문을 다시 리셋할 때마다, 내 나이 50이 되면 정말 근사해질 거라고 기대했었다. 나의 모습이, 나의 인생이, 불안정한 나의 심리가, 제대로 된 마침표 하나 없는 나의 상황들이, 50이 되면 모두 완성되어 있을 거라고, 그러니 '하늘의 뜻까지 아는 지천명'이라고 인정해주는 걸 거라고, 그렇게 믿었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생생한 경험들로 알았다. 계획이 이루어지는 변수가 노력뿐이 아니더라는 것도, 불공평한 것이 정상이더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는, 나이 50을 앞둔 지금 이 시점에도, '멋지게 완성된 인생'과는 거리가 먼 곳에 서 있다.


그 사이, 나의 마음은 둥글어졌고, 휘둘리는 감정 속에서도 행동과 말의 키를 단단히 쥐며 버틸 줄 알게 되었으며, 진심으로 공감하며 '그럴 수 있지...'를 내뱉을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아니 되어가고 있다. 비록 지금의 내가, 20대의 내가 예상하던 50대를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라떼는 말이야..."를 폼나게 떠벌려도 적잖이 용서가 되는 성공의 화관을 머리에 쓰고 있지 않을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와 별반 다름없는 애정으로 나의 삶을 보듬고 있고, 노력할 예정이며, 완성형 인생이 몇 년, 혹은 몇십 년 미뤄질 지라도 까짓것 별로 기죽지 않을 에너지를 아직 보유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주문을 건다.


쓰다 보니 "저 아직 마음은 청춘입니다!"라고 부르짖는 시위 같은데... 청춘, 그거 별로 부럽지 않고,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혹 다시 되돌아간다 해도 헤맴 없이 능숙하게 살아낼 자신도 없으므로, 시위는 아니라고 애써 강조한다. 그저, 그때보다 아주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50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인생의 계획표를 작성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으로... 이 멋진 공간에, 이게 뭐라고 손가락 끝을 떨며, 영광스러운 첫 글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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