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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떡갈나무 Sep 17. 2023

아이고, 좋은 일 있으셨나 보다!

마음만큼 보이는 것

일찍 입학했던 나는 늘 몸도 머리도 마음도 한 뼘은 앞선 친구들 틈에 있었던 까닭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었는지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일단 웃고 보는 습관이 있었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제대로 세워놓지 못한 탓에 불쾌한 상황도 웃음으로 때우며 살았었다.

그럴듯한 이유도 없이, 친절병 중증 환자마냥.


나는 내가 늘 그럴 줄 알았다.

워낙 거울을 보는 일이 별로 없고,

zoom이나 영상통화할 때마다 보이는 내 표정은 역시나 누군가를 향해 실실 웃고 있으니,

평상시에도 늘 그러려니.. 했었다.


어머나.

그날 그 시간에 어쩌다 거울처럼 깨끗한 그 유리 속 내 눈과 마주하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그 강직된 낯선 얼굴에 너무 놀라서 한참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저게 나라고?

무슨 마녀 한 분 등장하신 줄.


내가 힘든 일이 많지.. 마음이 복닥복닥 난리도 아니지...

그래 그래

근데 정말 저만큼 지친 거였어?

숨 쉬는 모든 것에 불만인 듯 보이던 거리의 그 수많은 ‘다 덤벼!’ 아줌마가

나... 였네?

나는 내 얼굴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억울함, 멋들어진 변명이라도 꿰어보고 싶은 조급한 마음으로,

그 사나운 얼굴을 기억에서 지워보려 휘적휘적 며칠을 보내던 중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한 무더기 버리러 나온 내게

"아이고... 엄청 좋은 일이 있으셨나 보다!"

땀범벅이 된 채로 청소를 하시던 경비 아저씨가 인사를 건넨다.

"네? 아니... 왜요?"

"좋은 일 있어서 잔치를 하셨나벼... 음식물 쓰레기가 그리 많은 걸 보니 말여유!"


냄새나는, 그것도 역한 해산물 썩은 물이 출렁대는 음식물 쓰레기를,

일회용 장갑 낀 손으로도 덥석 잡지 않은 그 쓰레기를 보고

잔치를 떠올릴 수도 있는 사람이 있구나.


소속 없이 날만 선 감정으로 가득하던 머릿속 현들이

데데뎅 끊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마음만큼 보이는 거였다.

마음을 꼭꼭 숨기고 웃으면 뭐 해.

문제를 제대로 보겠다며, 현명하고 지혜로운 법을 찾겠다며

신경 곤두세우면 뭐 해.

저런 화사한 축복의 시선 하나 가꿀 줄 모르는데.


자... 자...

지천명은 너무 고급 레벨이니, 마음이라도 좀 정리해 보자.

강퍅한 내 마음판 또 새어 나와 길 한복판에서 충격받는 일은 좀 막아보자.

누군가의 쓰레기에도 덕담을 건넬 수준은 아니더라도

갱년기가 사춘기보다 더 무섭다는 말의 대표 예시는 되지 말자...

(라고 쓰면서도 다스려지지 않는 내 마음에 또 성이 난다.)


다시 다짐해 본다.

쉰 내 나는 쉰이 되지 않기 위해 최소한 노력은 해 보기로.

완성과는 거리가 먼 이 민낯을 그럴듯한 변명이나 어쭙잖은 흉내로 포장하지 않고,

교만함을 숨긴 겸손이 아닌, 조건에 따라 변하지 않는 품위를 갖춘 어른으로 익어가기로.

안 되더라도 시도는 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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