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쿠나 마타타 Oct 21. 2024

브런치 먹으려고 연차 내는 남편

-남편이랑 브런치 먹어요

남편이 연차를 냈다.

남편이 연차까지 내고 해야 할 일은 나와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일이다.

맞다. 나는 남편과 브런치 먹는 여자다.

아니, 남편 외에는 브런치를 같이 먹을 사람이 없는 여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학교 다닐 때는 반장을 놓친 적이 없었다.

친구가 엄마보다 좋았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항상 주변에는 친구가 많았다.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도 사람이 좋아서 항상 약속이 잡고 사람을 만났다.

그런 내가 변했다.

이제는 브런치 먹을 사람도 없어 남편이 연차까지 낸다.


인간관계로 인한 에너지 소모가 많아서 의도적으로 잘라냈다.

전에는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걸 알면서도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좋아서

주변인들과 얼굴 보면서 교류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차츰 횟수를 줄이고, 연락마저 뜸하게 했더니 상대방 쪽도 연락을 멈췄다.

딱 거기까지였던 사람이라 생각하니 속상하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험담을 듣지 않아도 좋고,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좋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집 근처에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나 맛 좋은 브런치 집이 생겼다고 하면

함께 갈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냥 톡으로

'잘 지내? 분위기 좋은 커피숍이 생겼다는데 같이 가보자.'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맛보는 대신 또다시 나의 감정은 힘들어진다.

그래서 아예 하지 않는다.  

   


분위기 좋고, 커피 맛도 좋은 브런치 가게가 새로 생겼다.

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갈등이 된다.

오며 가며 인사하는 아이 친구 엄마인 동갑 친구에게 연락을 해볼까라는 고민에 카톡을 열어본다.

그러나 채팅창에 글씨를 찍지 않고 핸드폰을 닫았다.

이 친구와 만나면 내가 얼굴도 모르는 친구의 시댁식구들의 험담을 들어야 하고,

들으면서 공감이 되지 않지만

“아이고, 왜 그러실까?”라는 맘에도 없는 말을 하면서 연기를 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커피는 식을 테고, 핫케이크와 함께 나온 생크림은 서서히 주저앉을 것이다.     

그게 싫다.

온전히 브런치를 즐기고 싶은데 알고 싶지 않은 남의 시댁 얘기를 들어야 하고,

내 아이는 지금 아무 걱정 없이 잘 크고 있는데 남의 아이의 걱정을 들어주면서

어설픈 위로나 조언을 하게 된다면 말실수로 이어질 수 있기에 답답한 마음으로 묵묵히 들어줘야 한다.

“그래도 OO 이는 착하잖아.”라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면서.     


이런 걸 하고 싶지 않아서

과감히 남편에게 브런치 먹으러 가자고 했다.

어지간히 큰일이 아니면 연차를 내지 않는 남편이기에 연차는 많이 남아있다.

남편이 연차를 냈다.

나와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일이 연차를 낼 만큼 큰일이기에.          

남편과 가면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커피의 향과 맛, 그리고 음식에 집중하면서 즐길 수 있다.

맛 평가도 남 눈치를 보면서 하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 주관적으로 해도 남편은 묵묵히 듣고 동조를 할 것이다.

내 말이 다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래서 남편과 브런치를 먹는 게 편하다.     

연차를 내고 아내와 브런치를 먹는 남편은

오늘도 웃으면서

“브런치는 다 좋은데 양이 너무 적어.”라는 말 한마디를 하면

연차의 목적을 다 한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전방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