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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킹맘다해 Feb 03. 2021

나는 포켓몬 대신 치약을 잡으러 다녔다.

동네 할머니가 알려주신 공짜로 치약 두 개 가져오는 신박한 방법

미국에 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동네 할머니께서 저렴하게 혹은 공짜로 생활용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신박한 방법을 알게 주셨다. 그건 바로 '쿠폰'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쿠폰딜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연구와 통찰, 스피드가 필요한 일이었다. 미국 일요일 신문은 평상시 신문보다 엄청 두툼하다. 다음날인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각 스토어별 세일 정보와 일요 쿠폰이 잔뜩 들어있다. 그래서 평일 신문보다 가격도 비싸다. 쿠폰딜을 하시는 할머니들은 일요일 신문만 따로 배달 구독을 하기도 하셨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마법 공식이야?

쿠폰딜은 주로 drugstore들(Walgreens, CVS, Rite aid 등)에서 대박이 많이 나왔다. drugstore에는 우리나라 편의점처럼 작은 단위로 포장된 상품이 많았고, 가끔 더블쿠폰을 적용하면 쿠폰만 내고 공짜로 물건을 집어올 수 있는 경우도 심심치 않았다. 예를 들면 작은 사이즈 치약 하나에 2불이라고 하자. 그런데 2개 사면 1불 깎아주는 행사와 추가 extra bucks1불 증정을 CVS에서 하면 일요신문에서 해당 제품 2불 할인 쿠폰과 CVS Extra bucks 1불을 받아오면 2불짜리 치약 2병을 공짜로 가져올 수 있는 식이다.

아마 이게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국 땅은 넓고 사람은 많다. 정말 여러 사람들이 그 주(week)의 쿠폰과 각 매장의 할인정보를 연구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공짜 딜 0.5불 딜, 1불 딜을 만들어냈다. 'Krazy coupon lady'라는 웹사이트가 있는데 그곳에 가면 정말 온갖 방법으로 물건을 공짜 또는 1달러 이하로 사 오는 방법과 성공 후기가 매일 업데이트가 되었다. 운영진은 다음 주에 쿠폰딜 할 수 있는 물건들을 스토어 별로 쭉 나열해 미리 정리해 올려주기도 했다.



어지간한 속도론 노련한 그녀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미국 처음 갔을 때는 신기하기도 하고 시간도 많아서(애도 없었으니..) 일요신문을 옆에 끼고 각종 쿠폰 사이트들을 섭렵하며 쇼핑 계획을 짜서 게임하듯이 생활용품 사냥을 하러 다녔다. 내가 살던 곳은 정말 시골 깡촌이었고, 이미 쿠폰딜에 평생을 바쳐오신 할머니들께서 많이 사시는 동네라 어지간한 속도로는 그녀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쿠폰딜을 하던 2010년에는 일요신문 쿠폰과 coupons.com의 온라인 쿠폰 두 가지를 이용해 정말 재밌는 딜이 많을 때였다. 한 동안 나도 꽤 많은 생필품들을 차곡차곡 쌓아 놀 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은 샴푸, 가글, 4개 들이 화장지, 립스틱 등등 종류도 다양했다. 그러나 상점에 쿠폰이 적용되는 물건의 수는 한정되어 있고, 어떤 물건들은 내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고, 여행용 사이즈는 안 됨 등등의 제한이 있어 내가 계획을 세운대로 쿠폰을 다 잘 사용하기란 쉽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네

인터넷에 공짜 딜 정보가 많이 돌기 시작하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딜을 이용해서였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판매자 또는 기업들이 사람들에게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더블쿠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거나 어느 정도 사이즈 이하 제품에는 쿠폰을 사용할 수 없게 했다. 제약이 많아진 만큼 이전만큼 획기적인 쿠폰+세일 조합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쿠폰딜을 그만두게 된 계기는 첫째의 출산이었다. 껌딱지가 하나 생기고 나니 기동성이 떨어져 사냥(?)을 다니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렇게 나의 쿠폰 생활은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에 가면 흥정하는 재미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쿠폰딜도 그런 재미가 있었다. 포켓몬 헌팅하러 동네를 떠돌듯 쿠폰이 적용되는 상품을 찾겠다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었다. 남편은 기름값 쓰고 돌아다니느니 그냥 사서 쓰는 게 낫겠다고 했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런 핑계로라도 집에 가만히 안 있고 어떻게든 돌아다녀 보려는 게 내 마음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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